이순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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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난중일기를 통해본 임진왜란과 이순신-잘못 알고 있는 진실 파악
2.난중잡록에서의 이순신
3.선조실록
4.선조수정실록-다시 쓰여진 이순신
이식의「시장(諡狀)」
5.이충무공전서-영웅이된 이순신
6.박정희 정권 시대의 이순신-성웅화된 이순신

맺음말

본문내용

모아 올렸다.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한 목적은 이순신의 '忠義' '高揚' '功勞' '報答' '武勇' '宣揚' '功績' '表彰'이었다. 전서 발간 목적 중 공로, 보답은 후손들에게 관직과 녹봉을 증액시켜 주는 것을 말하며, 공적 표창은 좌의정에서 영의정으로 증직시키는 것으로 이는 충무공 가문에 한정된 특혜였다.
정조가 지행했던 정치적 목표는 유교적 양반문화의 부흥이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충의와 무용을 국민정신의 지표로 삼는 것이었다. 정조는 충의와 무용의 상징적 인물로 이순신이 적임자라고 판단하였다. 그가 허다한 영웅 중에서 이순신을 선택한 것은 선대왕인 영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영조 때 통영의 민폐를 조사 하던 중 원균의 패전과 이순신의 승전 사실이 보고 되었고, 박문수가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보고 하는 과정에서 "원균이 장수가 되자 군 전체가 패망하고, 이순신이 장수가 되었을 때 그를 대적할 적이 없었다"고 보고를 한 바 있었다. 또한 정조가 즉위한 이후 국조보감을 진강할 때 이순신의 한산 대첩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으며, 대화가 유현 문제를 다룰 때 정조는 "이순신은 무인이지만 先正이라 할 수 있다"고하여 무인이었던 이순신이 유현으로 격상되었다. 이는 선례가 없는 조치였다.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기 전, 정조는 이순신의 행적을 기리는 비문에 원균과 이순신을 다음과 같이 비교 평가 하였다.
원균에 관한 평가
이때 원균은 (이순신의)지휘를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주 헛소문을 퍼트리고, 대간을 꾀어 '이순신은 적을 치지 않고 머뭇거렸다'는 죄목으로 옥에 갇히게 하고, 원균이 이순신을 대신하더니 두어 달 만에 우리 군사는 패하고 원균은 달아나다 죽었다.
이순신에 관한 평가
명나라 화제의 명을 받아 날랜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러 왔던 장수들도 모두 다 한때의 영웅인데 왜적이 쳐들 어와 고기와 새우가 뛰듯 바닷물이 뒤집힐 때 백리 멀러 물러서서 진격할까 후퇴할까 두 생각을 품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이순신은) 8년 동안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수비하면 반드시 보전하여 나라의 운명이 공의 동작에 따 라 강해지고 약해졌다고 한다...(왜적들이)침략하자 국세가 약해지고 적들은 여러 곳에 소굴을 짓고 날뛰게 되 니 (이순신은) 간교한 왜놈들을 바다에서 무찔러 왜놈들이 위를 돌아보느라 북진하지 못하게 만들어 우리 장하 신 선조계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를 세우는데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 분의 힘이었다.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정조의 평가는 유가국가를 지향했던 국가 목표와 오랑캐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는 문화적 우월의식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과 원균을 평가하는 기준서가 되었다. 여기에서도 보이듯 『이충무공전서』에서 또한 이순신의 평가는 지나치게 높아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 충분하였으며 원균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낮아 그를 졸군으로 여기기에 충분하였다고 생각한다.
6.박정희 정권시대의 이순신
박정희 정권은 경제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독재로 인해 나빴던 자신의 이미지 개선과 대중들이 정치로 관심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나갈 지도 이념을 조국 근대화를 통한 민족중흥이라 하였다. 이러한 명목 하에 이순신을 성웅화 하기에 이르고 엄청난 예산과 관심으로 현충사를 성역화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서 정부에 아첨하는 관리나 지방단체들은 이 사업에 집중적인 관심으로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어 나가면서 온 국민의 관심을 성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역사 속에서 이끌려나온 이순신에게 돌린다. 또한 어용학자와 문인을 동원해 그를 '민족의 태양'으로까지 우상화 한다. 이순신은 당시 군사정권의 비정통성을 합리화시키려는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현상은 무엇보다도 김지하의 『구리이순신』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세종로 한 가운데 청동으로 만들어진 위압적인 이순신 동상은 당시 이순신 선양사업의 상징이었는데, 김지하는 이 동상을 당시 독재체제의 허구적 껍질 속에 살과 피를 가진 참 이순신, 곧 진실이 갇혀 있는 것으로 표현 하였다. 당시 이 작품의 공연이 정부에 의하여 금지되고 작가 김지하가 탄압을 받았던 것은 이순신의 문제가 얼마나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던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이처럼 체제 유지를 위하여 이순신이 과도하게 비인간적으로 성웅시 된 것이다.
맺음말
이순신과 원균은 나라를 위해 싸운 훌륭한 장군이다. 나는 결코 본 과제를 통해 이순신의 업적을 깎아 내리려는 것도 그를 욕되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의 업적은 충분히 칭송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이면에 있는 이순신장군의 비 영웅성을 확인해보고 그것을 되짚어 보면서 각 시대별로 정치적 이익과 맞물려서 이루어진 이순신의 영웅화 작업을 재검토 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그리고 이순신과는 대조적으로 인정사정없이 폄하된 원균에 대한 고찰을 다시 한번 해보고자 함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100%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려 다시 쓰여 진 역사로서의 역사인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각 시대별로 점점 더 높게 평가 되었고 심지어 그를 신격화까지 하는 현상에 까지 도달 하였다. 이러한 역사의 곡류 속에서 우리의 눈은 점점 흐려져만 간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큰 잘못 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교육은 수동적인 자세로 이루어 졌다. 이는 우리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였다. 그렇다고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합리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방적인 시각을 벗고 역사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이해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순신著 최두환번역 『새번역 난중일기』학민사
이재범 『원균을 위한 변명』학민사
남천우 『이순신 왜란,선조,그리고 죽음의 의문』역사비평사
정두희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제3장 이순신」 일조각
김태훈 『'평범'에서 '비범'으로 나아간 진정한 영웅 이순신의 두얼굴』창해
⊙참고논문
장학근 〈이순신, 원균의 시대별 여론 추이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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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7.21
  • 저작시기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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