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역사와 경기방법및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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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Ⅰ.골프의 역사
1.골프의 역사
2.한국 골프의 역사
-초창기
-전환기
-발전기
Ⅱ.골프의 경기방법과 규칙 및 구성요소
1.경기방법
2.기본규칙과 라운드
3.구성요소 (코스의 구성요소)
4.기본기술
5.용구의 특징과 선택방법
6.용어정리
Ⅲ.국제경기와 명선수
1.국제경기
2.명선수
3.한국의 골퍼 최경주

본문내용

때인 1914년까지 20년 동안 영국 오픈선수권대회를 거의 장악하였다. 특히, 바든은 근대 골프의 아버지라는 말을 들었고 오버래핑 그립을 창안하여 스윙폼에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20세기에 미국 골프계는 영국에 육박하여, 월터 트래비스가 영국에 원정하여 1904년 영국 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제패하였고, 13년 US오픈선수권대회에서는 무명의 젊은 아마추어인 F.위멧이 영국의 제1인자 바든을 물리쳐 우승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한 공백기에 미국의 골프계는 현저한 성장을 보였으며, 월터 헤이건(Walter Hagen)이 영국 타이틀을 쟁취함으로써 사실상 영국의 황금시대는 지나고 미국은 제1기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선수가 월터 헤이건, 진 사라젠, 보비 존스(Bobby Jones)의 세 사람이다. 특히 보비 존스는 1930년 당시 28세의 젊은 나이에 아마추어이면서도 세계의 메이저 경기, 즉 미국과 영국의 2개 오픈대회와 2개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의 우승을 1년간에 따내는 불멸의 위업 그랜드슬램을 이룩하였다. 1923∼1930년에도 이들 4대 주요대회에서 13번 패권을 차지하였는데, 이는 잭 니클라우스가 미국 및 영국의 오픈선수권 및 미국의 PGA대회와 마스터스대회 등을 석권하며 총우승 횟수를 앞지른 1973년까지 누구도 필적할 수 없었던 대기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독무대로, 바이런 넬슨(Byron Nelson), 샘 스니드(Samuel Snead), 벤 호건(Ben Hogan)의 세 사람이 이를 뒷받침하였고, 1970년대에는 ‘빅 스리’라는 호칭이 미국의 아놀드 파머(Arnold Palmer),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 및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 등에게 주어졌다.
이들을 추격하는 골퍼로는 리 트레비노, 톰 왓슨(Tom Watson), 조니 밀러 등이 있었고, 199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그 노먼, 영국의 닉 팔도, 독일의 베른하르트 랑거, 짐바브웨의 닉 프라이스 등이 미국의 기수인 프레드 커플스, 데이비스 러브 3세, 톰 카이트는 물론 일본의 아오키 이사오[靑木功], 오자키 마사시[尾崎將司] 등을 크게 앞질렀다.
1996년 PGA 신인상을 받은 타이거 우즈(Tiger Woods)는 그뒤 여러 대회를 휘쓸어, 그의 등장은 프로골프사의 대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2000년 8월 17일 미국 켄터키주(Kentucky) 루이빌(Louisville)의 밸핼러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2회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US오픈과 영국 오픈선수권을 차례로 제패하여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그는 한해 동안 벌어지는 4차례 메이저대회 가운데 3개를 석권한 1953년의 벤 호건에 이어 트리플 크라운(3관왕)을 석권한 두번째 선수가 되었다.
3. 한국의 골퍼 최경주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남자 골퍼, 최경주 그는 일찍부터 스포츠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 씨름, 투창 등의 운동을 하며 선수로 발탁되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역도선수로 활약했다.
골프는 완도 수산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체육교사의 권유로 시작했다.
이후 전남 도대표로 발탁됐으나 전국체전 등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연습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 서울 한서고 재단이사장 김재천씨의 눈에 들어 서울로 전학, 피나는 트레이닝을 받으며 본격적인 골프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자신과 체형이 비슷한 톰 왓슨, 이안 우스남 등의 스윙을 비디오를 통해 연구하며 실력을 키웠다.
이윽고 1993년 프로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해 본격적인 직업 골퍼의 세계에 뛰어든 그는 1995년 팬텀오픈에서 첫승을 거두었으며 1996, 1997년에는 2년연속 상금 1위에 올랐다. 이어 1999년에는 일본프로골프(JPGA)에 진출해 기린오픈과 우베고산오픈을 제패했으며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에서 컷오프를 통과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경주는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35위로 통과해 국내 남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프로무대에 진출했다, 하지만 데뷔 첫해, 그는 골프 기량보다는 언어와 문화 장벽에 부딪혀 컷오프 탈락이 계속됐고 결국 상금랭킹 134위로 시즌을 마쳐 다시 Q스쿨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는 2000 시즌의 경험과 프로 2년차라는 자신감으로 2001년을 위한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31위에 오르면서 다시 시드권을 획득했다.
이후 더욱 정교해진 샷과 퍼트를 앞세워 상승세를 타던 최경주는 마침내 2002년 5월 6일, 미국프로골프(PGA) 컴팩클래식에서 한국 남자선수로는 처음으로 PGA 투어대회 우승(합계 17언더파 271타)을 달성했다.
동양인으로서는 아오키 이사오(83년 하와이오픈)와 마루야마 시게키(2001년 밀워키오픈)에 이어 세번째 PGA 무대 정복이다.
-수상경력
2004년 BMW 아시안오픈 4위
2004년 마스터스 골프 대회 3위
2002년 5월 미국 PGA투어 컴팩클래식 우승
2002년 벨사우스 클래식 공동 8위
2002년 소니오픈 공동 7위
2001년 서펀 팡뷰로 클래식 공동 6위
2001년 벨 캐나디언 오픈 공동 8위
2001년 그레이터 밀워커 오픈 공동 5위
2001년 그레이터 그린스보로 크라이슬러 클래식 공동 4위
2001년 美PGA Tour 투산오픈 공동 5위
2000시즌 PGA 상금-134위(305,745달러)
2000년 美PGA Tour 에어캔나다 챔피언쉽 8위
1999년 PGA컵 골프토너먼트 우승 2000년 슈페리어 오픈 우승
1999년 호주 PGA투어 8위 99년 한국오픈 골프선수권 우승
1999년 기린오픈 1위 99년 우베고산 오픈 1위
1998년 APGA투어 볼보매스터스 공동 6위
1998년 APGA투어 사바매스터스 5위
1998년 아시안투어 클래식인디언 오픈 3위
1997년 월드컵 예선 2위
1997년 APGA투어 볼보차이나오픈 공동 6위
1997년 일간스포츠 포카리오픈 우승
1997년 팬텀오픈 우승
1996년 APGA투어 필라오픈 2위
1996년 APGA투어 두바이크릭 오픈 4위
1996년 한국오픈 우승
1995년 팬텀오픈 우승
1993년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원
1998년 프로골프 입문
  • 가격2,0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5.09.26
  • 저작시기2005.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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