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음악의 당면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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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 절 복음주의와 음악목회
1.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2. 모든 인간은 미적 존재: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

3. 복음가는 부정한 것인가?

4. 교회음악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

5. 교회의 음악과 학교의 음악간의 갈등관계
(1) 시편은 성전음악이면서 세속음악
(2) 기독교 찬송의 시작은 대중음악
(3) 종교개혁 당시의 코랄과 시편가도 대중음악
(4) 복음찬송가(gospel hymns) 와 복음가 (gospel songs)

7. 교회음악은 기능음악인가? 예술음악인가?

8. 문화가 음악을 생산해 냄

9. 음악목회를 해야 한다.

10. 교인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음악목회

본문내용

트를 이상적인 찬송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에 Bach의 {수난곡}을 흔하게 연주하지 못하지만, 독일, 영국, 불란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수난절만 되면 여기 저기에서 쉽게 {수난곡}을 들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독일과 영국의 교회에는 대부분 찬양대가 없이 오르가니스트 혼자서 음악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수난곡}을 연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단지 예술 활동에만 사용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것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복음 찬송과 같은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은 교인들의 심령에 불을 지르는 역할을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교인들의 심령의 불을 오히려 꺼서 교회를 냉각화하는 것이라면 지나친 생각일지? 이상적인 예술음악을 연주하는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없고, 팝송을 부르는 곳에는 왜 많이 모여들까? 교회음악을 하는 우리들이 서양교회의 클래식 음악만을 따라 가다가 혹시 한국교회도 냉각되고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교인수는 줄어들지 않을런지? 필자는 이것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다. 교회음악인들은 쉽게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즉 수난곡과 같은 예술음악을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하다가 그만 목적이 예술 그 자체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의 목적이 예술에 있기 때문에 수난곡을 구태여 교회에서 연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매주일 찬양대에서 봉사할 필요마져 없다. 그들에겐 그 연주가 음악목회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드리는 "찬미의 제사"가 아니라 연주활동이요 예술활동이기 때문이다.
9. 음악목회를 해야 한다.
이미 말 한것 처럼, 복음주의자들의 음악적 특성은 거의가 쉽고, 현대의 대중음악을 좋아하여 음악적인 수준과 질이 낮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자유주의 또는 진보주의 교회에서는 클래식하고 아카데믹하면서 예술성이 높은 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서민들이 대중음악을 좋아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과 예술음악은 지식층과 엘릿뜨 등 소수만이 이해하고 애호할 수 있는 음악이다. 복음이 많은 대중에게 선포되기 위해서는 교회는 불가불 서민화 되어야 하고 대중화 되어야 한다. 따라서 복음주의 교회에서 교회음악의 대중화 내지 서민화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본다. 음악목회자가 어떤류의 음악을 선택 하느냐 하는 것은 그 교회의 담임목사의 목회방향을 따라야 할 일이겠으나 주어진 범위와 한도 내에서 음악목회자는 복음의 대중화를 위하여 교회음악의 대중화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교인들의 취미를 의식해서 교회음악이 저질화 되는 것은 반드시 방지해야 겠다. 그렇다고 소수의 엘리트와 교회내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이 큰 지식층만을 위하여 예술성이 높은 클래식 음악만 고집해서 교회의 냉각화와 교인들과 음악 목회자가 괴리되는 현상도 방지해야 한다. 적절한 균형을 유지 하는 일이 중요하다. 찬양대가 부르는 노래는 교인들의 마음속에 늘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음악목회를 해야 한다. 음악목회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루는 것이고, 또 음악목회는 교인들의 호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이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고집을 부리는 것은 음악목회라기 보다는 예술활동 또는 연주활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위에서 필자는 "문화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내의 사람들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 했다. 따라서 사람이 모여서 형성한 교회는 나름대로 그 문화가 있고, 그 문화는 교회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예를 들면 새문안 교회의 문화가 다르고 충현교회의 문화가 다르다. 더구나 한국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대학교회는 일반 서민교회의 문화와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기에 대학교회의 교회음악 문화를 일반 서민교회에 그대로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필자는 새문안교회에서 7년간 봉사하는 동안 새문안의 음악문화를 변화시켰고, 그러면서 새로운 음악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그 후 찬양감독으로 충현교회에 처음 왔을 때 필자가 받은 문화충격(culture shock)은 대단히 컸었다. 그러나 필자는 충현교회에서 또 다시 새로운 교회음악 문화를 형성해 나갈 것이고, 충현교회는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교회음악 문화로 변화해 갈 것이다. 복음이 사람을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것 처럼, 음악목회자는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그곳의 교회음악문화를 변화시켜 가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가야 한다고 생각 한다.
10. 교인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음악목회
"여러분도 이상한 언어로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누가 알겠읍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셈 입니다... 만일 내가 이상한 언어로 기도 한다면 기도하는 것은 내 심령 뿐이고 내 이상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심령으로 기도하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기도하겠읍니다. 나는 심령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찬미의 노래를 부르겠읍니다..."(고전 14:9-15) 이상의 사도바울의 말에서 하나의 진리를 발견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쉽게 이해 하여 알아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라는 것이다. 쉽게 이해되고 알아 듣게 하기 위해서는 심령으로도 노래해야 되지만, 이성으로도 노래해야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방언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이성을 강조했지만 음악목회자의 경우는 오히려 이성만으로 노래하고 심령으로는 노래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연주하는 음악이 예술음악일수록, 우리는 이성으로 연주할려고 한다. 반면에 음악의 예술성이 떨어 질수록 예술적인 연주를 포기하고 영적인 연주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쉽고 단순한 노래 일수록 교인들의 심령을 고양시키는데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이야기 한 대로, 이성으로도 노래하고, 심령으로도 노래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 하면 우리의 음악목회는 예술성과 영성이 동시에 강조 되어야 하고 그 둘은 항상 균형을 이룰 수 있어 야 한다. 어느 한 편만으로 치우친다면 이상적인 음악목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이 논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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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04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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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18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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