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브레멘, 뤼벡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브레멘 (Bremen)
1. 브레멘에 대하여
2. 교육
3. 산업
4. 브레멘으로 가는 길
5. 브레멘 여행계획
6. 브레멘 여행상식
7. 브레멘의 즐길거리
8. 브레멘의 명소

뤼베크 (Lubeck)
1. 뤼베크에 대하여
2. 뤼베크로 가는 길 , 여행계획
3. 한자동맹
4. 뤼베크의 여행상식
5. 뤼베크의 명소

본문내용

런던에는 이미 11세기 중엽 쾰른의 상인이 조합의 집회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12세기 중엽에는 함부르크, 뤼베크의 상인도 조합 결성을 인정받았으며, 이들 본국의 여러 도시에 있는 조합이 합체해서 런던에서의 독일인 한자가 형성되었으며 이런 종류의 상인한자의 거점은 런던에 한정되지 않았다.
1158년 뤼베크 건설로 시작된 동독식민운동의 진전 결과 발트해 연안에 많은 상업도시가 건설되어 발트해를 중심으로 북유럽 상업권이 형성되었으며 그와 함께 노브고로트, 베르겐, 브뤼주 등에도 상인한자의 중요거점이 설치되어 한자상관(商館)이라고 불렸다. 최초에 북유럽 상업권의 지도권을 장악한 것은 고틀란드섬의 비스비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고틀란드 상인이었으나, 13세기 말부터 뤼베크 상인이 그 지위를 빼앗아 뒷날 한자동맹의 맹주가 될 지반을 만들었다. 도시한자, 즉 한자상인들의 본국도시 사이 동맹으로서의 한자동맹은 이 상인한자에서 생겨났다. 이미 13세기 중엽부터 몇몇 도시 사이에서 개별적 동맹이 체결되는 사태가 일어났으나, 1356~58년 동안 브뤼주의 상관을 거점으로 하는 한자상인과 플랑드르 지방 현지 상인과의 싸움이 격화되었고 한자상인이 본국 도시로 원조를 요구해 온 사건을 계기로 뤼베크의 제창에 따른 한자 여러 도시의 의회가 열려(한자총회의 기원), <독일 한자의 여러 도시>라는 이름 아래 대(對)플랑드르 경제봉쇄가 선언되었다.
1366년에는 외지에서의 상업특권 향수(享受)가 독일한자 가맹도시의 시민에게 한정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독일한자의 도시동맹으로서의 성격이 명확해졌다. 한자동맹 내의 결합은 비교적 느슨하였고, 가맹도시 대표들로 구성되는 한자총회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후에는 가맹도시 분담금제도가 만들어졌으나, 성문화된 동맹규약도, 상설적 집행기관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가맹도시의 공식 리스트마저 한 번도 작성되지 않았으므로 가맹도시의 범위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동맹의 핵심이 된 것은 약 70개 도시이고, 그 밖에 130여 개 도시가 여기에 가담하고 있었다. 도시 이외에 독일기사단도 가맹하고 있었다.
중세 말부터 근세초 영국을 비롯하여 강력화하기 시작한 국민국가가 중상주의적 정책을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네덜란드 상업자본이 발트해무역에 진출하여 지도권을 장악한 결과 한자동맹은 쇠퇴하였고, 가맹도시도 크게 줄었다. 1669년 마지막 한자총회에는 뤼베크, 함부르크, 브레멘, 쾰른, 브라운슈바이크, 그다니스크만이 참가하였다. 뤼베크, 함부르크, 브레멘은 이미 1630년 이후 긴밀한 상호원조동맹을 결성하고 있었으며, 한자동맹이 소멸된 뒤에도 19세기가 될 때까지 한자도시의 전통을 계속 유지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서도 함부르크와 브레멘 두 도시는 다른 일곱 주와 동격의 연방구성원이 되었다.
4. 뤼베크의 여행상식
- 슐레스비히 홀스타인주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은 독일에서는 유일하게 부 바다 즉 북해와 발틱해에 연해 있는 주이다. 고대의 문헌을 보면 슐레스비히와 홀스타인은 "영원히 하나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스타인으로 아주 오랫동안 함께 불려왔다.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은 1945년 이후에야 두 지역이 결합되어 이름붙여진 다른 주들과는 사뭇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은 인구 밀도가 매우 낮으며 수도는 키일이다. 발틱해에 위치해 있는 한자동맹 도시인 뤼벡은 그 위치로 말미암아 중요한 역할을 갖는다. 뤼벡-트라베문데는 독일의 주요 페리항의 하나이다.
5. 뤼베크의 명소
- 홀스텐 성문
붉은 벽돌로 지은 홀스텐 성문은 1464년-1478년에 트라베 강쪽의 방어 시설을 강화
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두 개의 원통형 탑에 뾰족머리 지붕을 얹고 있는 이 성문은 뤼베크의 강력한 주권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며, 현재는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문 한가운데는 "concordia domi foris pax" 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안으로는 화합, 밖으로는 평화"라는 뜻이다. 그리고 성문 안쪽에는 "1477 S.P.Q.L. 1871"라고 쓰여 있는데 "뤼베크의 원로원과 시민"이라는 뜻이다. 이 성문은 1958년부터 1991년까지 50마르크 지폐에 도안되어 있었다.
- 소금창고
홀스텐 성문을 지나 뤼베크의 가장 오래된 다리인 홀스텐 돌다리를 건너면 오른 쪽에 소금창고라고 불리는 건축물이 나타난다. 당시 "북쪽의 백금"이라고 불렸던 소금은 뤼베크의 부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육류와 생선의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소금의 수요도 늘어났지만, 일조량이 부족하고 염도가 낮은 북유럽에서 천일 제염법으로 소금을 생산할 수는 없었다. 뤼베크는 남쪽으로 95km 떨어진 뤼네부르크와 손잡았다. 뤼네부르크의 소금은 천일염이 아니라 암염이었다. 암염광산에서 염분을 지닌 지하수를 뽑아올려 제염소에서 가공된다. 956년에 문을 연 뤼네부르크의 제염소는 중세의 가장 큰 산업으로 1980년까지 가동되었다. 13세기에 소금 한 통은 집 반 채 값이었다고 한다. 전성기에 뤼네부르크는 매년 2만톤의 소금을 생산하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소금생산지였다. 뤼베크에서 뤼네부르크에 이르는 소금 통상로는 오늘날 "옛 소금길"로 불리고 있다.
- 성모교회와 시청
그밖에 볼거리로 시청, 성모교회, Mengstrasse 4번지에 위치한 토마스 만 기념관 "부덴부로크 家" 등이 있다. 뤼베크 시청은 13세기에 건축을 시작 1570년에 완공되었으며 중세 유럽의 가장 큰 시청건물이었다. 성모교회는 1350년에 완공되었으며 교회 입구에 조그만 악마 조각상이 흥미를 끈다. 먹거리로 아몬드와 초콜릿을 섞어서 만든 빵 '마르치판'이 유명하다.
- 어부의 집(Haus der Schiffergesellschaft)
시청사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성 제임스 교회 맞은편에 있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는데, 아직도 내부에는 어부의 타번과 목조 테이블 등 어부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 제임스 교회(Jakobikirche)
자그마한 고딕 교회지만 목조로 된 2개의 오르간(16, 17세기)으로 유명하다. 어부의 집 맞은편에 있다

키워드

브레멘,   뤼베크,   뤼벡,   독일도시,   Bremen,   Lubeck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5.11.20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192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