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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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적지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 원삼국
1.전기 - 창원 다호리1호분
2.후기 -김해 양동리 162호분

Ⅲ. 고구려 - 장군총

Ⅳ. 백제 - 송산리 6호분

Ⅴ. 영산강 - 나주 복암리 고분군

Ⅵ. 가야
1. 전기 -김해 대성동 1호분
2. 후기 -고령지산동 44호분

Ⅶ. 신라 - 황남대총

Ⅷ. 맺음말

본문내용

다 훨씬 작고 껴묻거리의 종류도 목항아리·그릇받침[器臺] 등의 토기류에 한정되어 있어서 주인공을 위한 껴묻거리방으로 추측되고 있다.
Ⅶ. 신라 - 황남대총
황남대총 (98호 고분)은 원형봉토분으로 발굴결과 부장품품을 토대로 부부합장묘로 판명이 되었고 남분이 먼처 축조하고 후에 북분이 축조하였다. 동서의 길이가 80m, 남북 무덤의 길이가 120m, 높이가 25m나 되는 거대한 능으로 낙타 등처럼 굴곡이 져다. 1975년 발굴조사 때의 기록에 따르면 북쪽의 능은 여자, 남쪽의 능은 남자의 묘인 것으로 밝혀졌다. 호석이 맞물린 상태로 보아 남쪽 능을 먼저 축조하고 나서 북쪽 능을 잇대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북분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목걸이, 팔찌, 곡옥 등의 장신구가 수천 점이 나왔으며, 남분에서는 무기가 주류를 이루는 2만 4천 9백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남분의 묘곽은 주곽의 범위만큼 땅을 약간 파고 큰 냇돌을 깐 뒤 다시 그 위에 잔자갈을 깔아 기초를 하고 주곽을 지상에 놓았으며, 부곽은 그냥 지반을 바닥으로 했다. 곽의 중앙에는 이중으로 된 관이 놓였고, 유물은 내관과 외관의 안, 부곽과 주곽의 뚜껑 위 등 곳곳에서 나왔는데, 내관에서는 장신구류와 대도 등이, 외관과 곽 사이에서는 금제 그릇, 유리그릇 및 병등이 나왔다. 부곽에는 바닥 전면에 커다란 항아리를 놓고 그 위에 말안장, 쇠도끼 등을 놓았다. 특히 금동제의 말안장은 앞뒤로 새김을 하고 비단벌레의 날개를 붙였는데, 보랏빛이 어우러져 말할 수 없이 호화로운 느낌을 준다.
북분은 목곽 내에 이중관이 들어있을 뿐 부곽은 따로 없는데, 부장품은 목곽안, 목관과 목관 사이의 부장품부, 목곽 상부 등 빈 공간에 빠짐없이 채워져 있었다. 남분에서 금동관, 은관이 나왔지만, 북분에서는 금관, 금제 허리띠 등 각종 금제 장신구들이 관 안에서 나왔고 목곽 상부에서도 금제의 굵은 고리 귀고리가 열 쌍이나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의 호화로운 유물이 출토되었다. 북분에서 발견된 피장자는 칼을 차고 있지 않은 데다, 따로 부장된 은제 허리띠의 끝부분에 '부인대'라고 따로 침으로 새긴 글씨가 있어서 여자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Ⅷ. 맺음말
지금까지 각 시대 묘제의 대표적인 유적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것으로서 각 시대 마다 나타나는 무덤의 양상이 틀린 것을 알아 볼 수 있었으며, 묘제가 변화함으로서 그 시대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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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12.12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6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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