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의 신시 연구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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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신시의 명칭
- 신체시와 신시
3. 신시의 범위

4. 신시의 형성 배경

5. 육당 신시의 특성

6. 결 론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및 산문시에 이르기까지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며 그만큼 육당은 형태면에서 자유로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특성은 태백산부나 태백산의 사시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자유로움과 아울러 그 용어구사의 대담성을 들 수 있다. 단어도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어휘들이 동원되고 있으며 !, ?, --, 「」등 부호를 활용하여 서술이 간결해지고 표현효과를 거두고 있는 점도 눈에 띄며 간혹 적당한 비유도 살리고 있는 점은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몇 걸음 더 앞서 있는 수준이며 위의 「태백산부」와 「태백산의 사시」의 자유시형에 그쳤을 뿐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육당은 시가라는 막연한 장르의식을 가지고 時와 歌의 미분리 상태
임종찬, 개화기 시가론, 국학자료원 1993. 이 논문에서는 육당의 신체시가 노래가사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음을 규명하고 있다.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본 것으로 보인다. 포에지로서의 시의식은 아직 투철하게 자각하지 못한 채 주로 형태면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리듬에 있어서도 창가에서 새로운 형태의 시도 다음에 자유시로 단계적으로 발전해 갔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필요에 따라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그릇이 채용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창가체는 <청춘> 시대까지 더욱 번영하게 채택되었다. 이러한 장르의식의 결여는 시의식에 선행된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으로 말미암아 모처럼 시도된 형태적 새로움을 더욱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은 조선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그 수단에 적합한 형태를 다 동원하였던 것이다. 창가체가 후기에도 계속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든지 시조의 부흥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왕성한 창작의욕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정한모, 한국현대시문학사, 일지사, 1974.
육당 자신도 7.5조, 8.5조, 6.5조의 한계를 깨달았을 때, 그는 결국 '태백산시집'의 시편과 같은 산문에 가까운 자유율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그 자유율은 리듬의 무정부 상태, 말하자면 운율적 질서의 불균형으로 시종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하나의 지속적인 움직임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실험에 그치고 만다. 그러므로 그 이후 시조의 전통적 율격으로 귀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결 론
지금까지 육당의 신시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육당의 신시의 특징은 각 연만을 떼어놓고 볼 때 자유율적 경향과 산문적 경향을 보여주지만 각 연을 대응시켜 놓고 볼 때는 각 연 대응행의 잣수가 일치하는 연대응 정형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는 창가의 영향으로 보이는 후렴구과 시조의 4보격, 그리고 자수율의 일치와 산문화의 경향이 혼효되어 드러난다.
이러한 신시의 특성들은 육당이 전통시적 요소와 외래시적 요소의 충돌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신시들 속에 드러나는 창가, 시조, 한시의 요소들과 함께 일본 신체시의 영향 그리고 서구시의 영향들의 충돌에서 결국은 혼란스러운 리듬의 무정부 상태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육당의 시작행위의 장르의식의 기반이 허약했음에 기인한 것이며 그것은 그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상가, 계몽가로서의 의식이 시인으로서의 의식보다 더 우위에 있었던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육당의 신시는 단지 길을 잃고 말았던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적 차원에서의 모색이 신시에 이르러 의식적 행위로 드러난다는 점, 단연 내에서의 산문리듬의 지향과 구어체의 확립 등이 자유시에로의 가능성을 충격한다는 점
김영철, 같은 책, p. 175.
은 당대 문화계에 있어 최남선의 위치를 고려할 때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근대문학의 연속성의 문제는 누차에 걸쳐 제기되어 왔으나 아직 미결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근대적 특성이 지면을 통해서 돌출하기 시작한 시기가 개화기라고 할 때 우리는 개화기라는 시기의 특성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화기는 전통소와 외래소가 이질융합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살펴 본 바 당시 출현하기 시작한 신문이며 사설에 등장한 전통시가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변용은 우리 전통쟝르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잠재적 근대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최남선은 주도적으로 2인 문단시대를 열어가면서 등장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통시가의 실험 및 신시 창작 그리고 자유시 창작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양식실험을 해 왔으며 일정정도의 성과를 거두어내기까지 했다.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 문학의 자유시로의 근대화가 비록 1920년대 주요한 등에 의한 서구시 도입에 의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교로서의 존재로서의 최남선이 있었음을 웅변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육당 신시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문학사에서 신시라는 장르는 비록 그의 몇 편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한 개인의 문학적 실험이 단지 개인의 독창적 영역 뿐만 아니라 문학공간의 영역 속에서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한국문학의 연속성을 규명해내는 데 있어 미진하나마 작은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 고 문 헌
기초자료
「대한매일신보」(국문판)
「대한학회월보 3호」
「태극학보」
「소년」
문헌자료
1.
1. 권오만, 개화기 시가연구, 새문사, 1989.
2. 김영철, 한국근대시론고, 형설출판사, 1988.
3. 김영철, 한국현대시의 좌표, 건국대 출판부, 2000.
4. 김교봉, 설성경, 근대 전환기 시가연구, 국학자료원, 1996.
5. 김윤식, 한국현대시론비판, 일지사, 1975.
6. 김학동, 「신체시와 육당의 선구자적 위치」,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 1.
7. 박을수, 석일균 공저, 신한국문학사, 아세아문화사, 2000.
8. 백 철, 국문학전사, 청구문화사, 1959.
9. 이광주, 육당 최남선론, 조선문단 6호.
10. 임종찬, 개화기 시가론, 국학자료원 1993.
11. 조지훈, 조지훈 전집, 일지사, 1973.
12. 정한모, 한국현대시문학사, 일지사, 1974.
13. 정한모 김용직 공저, 한국현대시요람, 박영사, 1974.
14. 정한모, 한국현대시문학사, 일지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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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06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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