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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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략 소개

2. 위치

3. 한옥마을
1) 순정효왕후 윤씨친가
2)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
3) 남산골 박영효 가옥
4)오위장 김춘영 가옥
5) 도편수 이승업 가옥

4. 전통정원

본문내용

가이고 앞채는 삼량가이다. 장대석 기단과 방형초석, 그리고 일부에는 굴도리를 사용하여 집의 격식을 높였다. 가옥전체의 분위기는 살림집이라기 보다는 재실용도에 걸맞게 되어있다.
3) 남산골 박영효 가옥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구성
연면적 323.96㎡(98평)
서울 팔대가 중 하나로 전해지는 이 가옥은 조선조 제2대 철종의 후궁 숙의 범씨 소생인 영혜옹주의 부군 박영효(1861∼1939)가 살던 집이다.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에 있던 것을 이 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안채는 ┎자형 몸채에 ㅡ자형 행랑간이 붙어 ㅗ형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안방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으로 서울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장대석을 사용한 기단, 칠량가의 가구, 6간 크기의 부엌 등에서 대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으며 파련각한 보아지와 파련대공을 사용하고 마루밑 고막이 벽에 투공문양 벽돌을 사용하여 환기공을 설치한 점 등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이다.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구성
연면적 323.96㎡(98평)
<도면>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구성 (98평)
서울 팔대가중의 하나로 전해지는 이 가옥은 조선조 제25대 철종의 후궁 숙의 범씨 소생인 영혜옹주의 부군 박영효가 살던 집이다.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에 이전복원하였다.
당초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행랑채로 이루어졌으나 안채외에는 헐리어 없던 것을 사랑채와 별당채만 복원하였다. 안채는 ┌자형 몸채에 -자형 행랑간이 붙어 있으며 부엌과 안방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으로 서울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장대석을 사용한 기단. 칠량가의 가구, 6간 크기의 부엌 등에서 대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으며 파련각한 보아지와 파련대공을 사용하고, 마루밑 고막이 벽에 투공문양 벽돌을 사용하여 환기공을 설치한 점 등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이다.
4)오위장 김춘영 가옥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 연결
건평 82.46㎡(25평)
이 가옥은 조선조 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이다.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있던 것을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를 연결시켜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 대청은 오량가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산량가이다.
판대공을 사용하고 홑처마로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서민주택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안방의 뒤쪽벽,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고석과 전돌을 사용하여 화방벽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놓인 것은 특기할 만한 점이다.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 연결
건평 82.46㎡(25평)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 연결 (25평)
조선조 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이다.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있던 것을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복원하였다.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를 연결시켜 이루어졌으며 안채 대청은 오량가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삼량가이다.
단채공을 사용하여 홑처마를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평민주택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안방의 뒤쪽벽,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고석과 전돌을 사용하여 화방벽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인 것은 특기할 만한 점이다.
5) 도편수 이승업 가옥
안채, 사랑채
건평 119㎡(36평)
이 가옥은 조선조말기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경복궁이 중건될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승업이 1860년대에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 36-2번지에 있던 것을 이 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정(丁)자형이고 사랑채는 ㄴ자형의 평면이다. 안채에서 부엌과 안방쪽은 반오량으로 꾸며 전후면의 지붕길이를 다르게 꾸민 것은 특색있는 구조이다. 대청과 건넌방쪽은 일고주오량가로 구성되어 있다.
정(丁)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 일고주오량가의 구성
조선조 말기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경복궁이 중건될 때 도편수였던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 36-2번지에 있던 것을 이전복원하였다.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정(丁)자형이고 사랑채는 ㄴ자형의 평면이다. 안채에서 부엌과 안방쪽은 반오량으로 꾸며 전후면의 지붕길이를 다르게 꾸민 것이 특색있는 구조이다. 대청과 건너방쪽은 일고주오량가로 구성되어 있다.
4. 전통정원
전통한옥과 화계 천우각 청류정
관어정 옆의 산철죽 청학지 관어정과 방지
우리 민족과 서울의 상징인 남산은 옛 이름을 목멱산이라고 하였으며, 도성의 남측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으로 불리워 왔다.
남산은 그 자연의 경치가 아름다워 선인들이 골짜기마다 정자를 짓고 자연의 순리에 시화로 화답하는 풍류생활을 하던 곳으로서 각종 놀이와 여가생활을 위하여 수려한 경관을 찾는 선남선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 곳 남산골 전통정원내에는 그간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수종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고 또한 정자, 연못 등을 복원하여 전통양식의 정원으로 꾸몄다.
정원의 북동측 7,934㎡(2,400평) 대지에는 시내에 산재해 있던 서울시 민속자료 한옥 5채를 복원하고 이 한옥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성격에 걸맞는 가구 등을 배치하여 선인들의 삶을 재조명 하였으며, 전통공예 전시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 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상품을 항시 전시, 판매하고 있다.
정원의 서측에는 물이 예스럽게 계곡을 흐르도록 하였고 주변에는 고풍의 정자를 지어 선인들의 유유자적했던 남산기슭의 옛 정취를 한껏 느끼도록 하였다. 전통정원 남측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서기 1994년 11월 29일 지하 25미터 지점에 매설하였다. 보신각종 모형의 타임캡슐안에는 서울의 도시모습, 시민생활과 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을 수장함으로써 현 시대의 사회상이 400년 이후 2394년 11월 29일 후손들에게 공개될 것이다
  • 가격3,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07.04
  • 저작시기2000.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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