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리트의 디오클레티안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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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 때는 이탈리아명 스팔라토라고 불렀다.
그 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1806~1813)도 있었지만, 다시 오스트리아령이 되었다. 1992년에 크로아티아 공화국이 성립되기까지, 유고슬라비아 분열로 인한 내전으로 이 도시가 입은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몇년 전, 유적을 보호, 관리하는 사람들은 유산이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걱정했다. 지금 약 6000명이 궁전 부지엥서 비위생적이며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에 총 길이가 8km인 로마 시대의 수도교를 다시 이용하려는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스플리트의 역사 지구를 구제하기 위한 사업이 시작되었지만, 때마침 내전이 발발했다.
현재 내전으로 인한 피해를 조사하고 있으며, 복원을 시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황제의 자발적인 퇴위
훗날 디오클레티아누스라고 불린 달마치야의 디오클레스는 자신의 통치기에 주조된 화폐에, 높은 코와 인상적인 턱을 가진 근엄한 표정의 옆얼굴로 표현되어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천민 출신으로 전쟁터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284년 황제에 즉위했다. 황제는 명예로운 자리였지만, 힘든 자리이기도 했으며, 또 왕좌를 노리는 사람들과 끝없이 싸워야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노련한 정치가였다. 농민의 아들이었던 일리리아 출신의 장군 막시미아누스를 부황제ㅐ로 지명하고, 이듬해 정식 황제로 삼았다. 그리고 그에게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제국의 서쪽 절반을 통치하게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자신은 동쪽 제국의 수도 마르마라 해에 있는 이즈미트를 비롯해 트라키아, 아시아, 이집트를 다스렸다.
293년, 두 황제는 총독을 부제로 임명해 번거로운 계승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서 양치기 출신의 갈레리우스가 시르미움에서 도나우 지방, 일리리아, 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콘스탄티우스는 트리어에서 갈리아, 브리타니아와 히스파니아(지금의 에스파냐)를 통치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고안한 제국 4분 통치체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정제는 부제를 지명하고, 10년이 지나면 부제는 정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쉽게 통치하기 위해 12개의 관구로 분할하고, 세제를 개혁하고, 소리두스라는 안정된 화폐 통화를 도입했다. 더욱이 황제는 군대의 전투 능력을 강화하고, 최초로 물가에 관한 칙령을 선포했다.
제국 개혁의 절정은 권력의 자리에 오른지 20년째인 305년의 기념 행사 때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한다고 약속한 일이었다. 이미 눈에 띄게 쇠퇴하기 시작한 로마 제국에서 비교적 평온했던 이 시대는 길지 않았지만, 그의 개혁은 제국에 어느 정도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협조 정신은 스스로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데서 알 수 있다.
내용출저: 유네스코 세계유산 동남유럽편 <중앙 M&B>
http://blog.naver.com/2lili?Redirect=Log&logNo=20001960479
사진출저:
http://themesaytour.co.kr/croatia/index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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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1.02
  • 저작시기2005.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9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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