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기 여성의 활동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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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혁명기 여성의 활동과 이미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1

Ⅱ. 프랑스 혁명 시기의 여성‥‥‥‥‥‥‥‥‥3
1. 여성 ‘시민’‥‥‥‥‥‥‥‥‥‥‥‥‥‥‥3
2. 여성의 군사적 역할‥‥‥‥‥‥‥‥‥‥‥5
3. 여성 클럽들 ‥‥‥‥‥‥‥‥‥‥‥‥‥‥7

Ⅲ. 공화국과 여성‥‥‥‥‥‥‥‥‥‥‥‥‥10
1. 공화주의 아래에서의 여성 ‥‥‥‥‥‥‥10
2. 공화국 여성의 이미지 ‥‥‥‥‥‥‥‥‥14
3. 이미지의 실체 : 가정에 갇힌 여성‥‥‥‥16

Ⅳ. 맺음말 ‥‥‥‥‥‥‥‥‥‥‥‥‥‥‥‥17

참고문헌‥‥‥‥‥‥‥‥‥‥‥‥‥‥‥‥‥19

본문내용

적인 가치들이 남성 공화국이 요구하는 덕목에 맞추어 재배치되었다. 혁명 초기의 마리안느가 아닌 공화국의 위엄 있는 여성은, 새로운 정치질서 속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축하기 위해 남성이 의도적으로 창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육영수, 「프랑스 혁명은 여성들에게도 정말로 ‘혁명적’이었을까?」p.78
인민의 단일한 몸은 공화국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인민들을 길러내는‘영광스러운’역할이 여성에게 부가되었다. 여성들은 새로운 공화국의 자녀들에게“부패하지 않은 우유”를 수유하여야 했다. 수유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혁명기의 도상학에서 가장 강력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홍태영, 「젠더화된 공화국」, p.157
아이를 수유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혁명기 그림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미덕, 즉 가정에 머물며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는, 구체제에서 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예의범절이 공화국에서는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린 헌트는 입법가들이 여성들이 더 큰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공화적인 어머니 상의 미덕을 선언하곤 했다고 말한다. 린 헌트,『프랑스 혁명기 가족 로망스』, p.214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의 지도자들은 혁명의 남성성을 부각시키고 공화정의 아버지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성이 갖추어야 할 어머니로서의 덕목과 가족의 재건을 강조하였다. 가족은 공화국의 축소판이었다. 공식적으로 표현될 때마다 여성의 역할은 점점 더 어머니와 관련된 것으로 밀려났다.
혁명 초기의 마리안느 상을 생각하여 볼 때 공화국의 여성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비교하여 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여성이 모두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혁명 초기의 마리안느는 공화국과 공화국의 자유와 평등을 상징했다. 공화국의 여성 역시 공화국 자체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공화주의자들은 힘 있는 남성성을 공화국 자체로 규정하였지만 공화국을 나타내는 모든 상징물 -국새, 앰블럼, 의원 배지, 의회의 메달 등- 에는 프랑스 여성이 새겨져 있었다.
와 공화국의 영원한 미덕인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혁명을 적극 수호하고 혁명가들을 선두에서 인도하였던 정열적인 마리안느는, 적어도 모범적인 공화국의 가정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혁명 공화국의 안정과 성공적 결실을 위하여 집안에 머물러야 했다.
Ⅳ. 맺음말
혁명기 여성의 활동과 그들에게 부여된 공화주의적 이미지와 관계된 두 가지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혁명기의 여성은 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가정으로 돌아갔는가? 공화국에서 규정한 여성상이 결국 그들 혁명의 종식을 의미하는가?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주 가정 속으로 숨어 버린 것이 아니라‘숨을 고르고 있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테르미도르 정부 아래에서의 여성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동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수행하였던 경제적 폭동, 군사적 역할, 정치적 투쟁과 더불어 상징적인 역할의 양상이 19세기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투쟁적인 혁명들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1848년 6월 봉기- 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공화주의자들이 규정한 여성의 덕목은, 비록 공적 영역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천박한 종류의 것으로, 지양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였지만 적어도 구체제에서의 수동적이고 연약한 이미지의 여성상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공화국에서 여성들의 보육의 역할이 진정한 기여가 된다고 한다면, 여성은 반드시 공화주의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아이들을 가르쳐 국가에 충성을 다하도록 길러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여성들에게 좀 더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1789년부터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프랑스 민중혁명의 역사를 통해, 엘리트적인 여성, 깃발 잡이 서민 여성, 가정적인 여성의 이미지라는, 원칙적으로는 전혀 다른 세 가지가 상호작용하면서 교차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낸 것도 혁명기 여성들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실질적인 존재의 역사, 자유와 공화국으로 표현되는 방법에 대한 역사, 19세기 투쟁의 역사라는 서로 다른 시기의 독립적인 세 종류의 역사가 대혁명 이후 에도 혁명의 순간들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수렴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과 민중과의 끈끈한 유대감 못지않게 여성과 맺은 관계 역시 장기적인 유산을 생산하였다. 여성들이 프랑스 혁명 시기 제기했던 불평등의 문제와, 혁명을 통해 그토록 얻어내려 투쟁했던 자유와 평등의 실질적 권리가 근대 여성운동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볼 때, 혁명이 낳은 여성들의 역할이 결코 평가절하 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 참고문헌
육영수,「프랑스혁명은 여성들에게도 정말로 ‘혁명적’이었을까?」『프랑스사 연구』6, 2002.
이세열, 「프랑스혁명과 파리민중협회 (1790-1795)」,『서양사학회』89, 1988.
최갑수, 「1789년의 〈인권선언〉과 혁명기의 담론」『프랑스사 연구』4, 2001.
한명숙, 「프랑스 혁명과 여성문제-정치적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활동을 중심으로」『경희사학』,2001
현재열, 「19세기 프랑스 혁명들에게서 파리 여성의 역할 비교」『釜大史學』2526, 2002.
홍태영, 「젠더화된 공화국 : 프랑스 혁명과 여성의 영역」『아시아여성연구』43 2호, 2004.
고디노, 「자유의 딸과 혁명적 여성시민」『여성의 역사』4上, G.Duby, M.Perrot ed., 권기돈 정나원 공역, 1999.
뒬롱, 「대화에서 창작으로」『여성의 역사』3下,
슬레지예프스키, 「전환점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여성의 역사』4上,
Godineau, The Women of Paris and Their French Revolution, (Berkeley,Calif.:Univ of California Press, 1998)
린 헌트, 『프랑스 혁명기 가족 로망스』, 조한욱 역, 한길사, 2000.
F.블뢰슈 외,『프랑스 혁명』, 고봉만 편역, 한길사, 2003.
아귈롱,『마리안느의 투쟁』, 전수연 역, 한길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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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1.28
  • 저작시기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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