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 답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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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담양 소쇄원 답사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쇄원을 선택한 이유

2. 소쇄원이란?

3. 소쇄원의 주요 유적과 간략한 설명

4. 소쇄원의 아름다운 풍경

5. 마치며..

6. 기타 사진들

본문내용

있는 초정을 의미한다.
제 1영 ‘소정빙란’에는 소쇄정이란 내용이 들어있다. 1영에 의하여 ‘소쇄원의 경치는 통틀어 소쇄원정이로세, 우러러 보니 시원하고 귀에는 영롱한 소리’라 하여 소쇄원 경치의 중심이 소쇄정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즉 이때는 이미 소쇄원이라 부르던 시기이고 소쇄정이 소쇄정의 중심이 된다는 의미이다.
소쇄정이라는 명칭은 김인후가 가정무자嘉靖戊子(1528)에 읊은 「소쇄정즉사」에 처음 나타나고 송순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송순은 소쇄정을 ‘소각’으로 비유하며, 곁에는 쏟아지는 폭포와 흐르는 개울물과 그 곁에 벽오동나무가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가 1534년에 읊었다는 점에서 소쇄정은 소쇄원에서 제일 먼저 세운 정자인 것 같다. 또한 『유서석록』에 의하면 ‘소재小齋의 남쪽에는 돌을 높게 쌓아올려 그 위에 세운 소정이 있는데 장산 張傘같이 날개를 펴고 있었으며, 그 정자의 아래에는 작은 못이 패여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소재’는 광풍각을 나타내며 ‘소정’은 대봉대 위에 세워진 초정을 말한다.
이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시는 송강의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이다. 이 시에 의하면 초정은 송강이 태어날 무렵(1536)에 세운 것으로서, 그 곁에는 벽오동나무가 서있고 그 아래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이는 현재의 대봉대 위에 있는 정자를 말함이고 면앙정이나 하서가 시재에 올린
‘소쇄정’이나 제봉이 언급한 ‘소정’과도 같은건물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서 본다면 소쇄정은 양산보 생존시에는 소쇄원을 대표할만한 정자였고 그 창건시기는 1534년, 혹은 이보다 앞선 시기라고 할 것이다.
사방 1칸의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초정 대봉대는 1985년경에 재건된 것이다.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 소정은 시원한 벽오동나무의 그늘에 앉아 봉황새(귀한 손님)를 기다리는 집이다. 「소쇄원48영」의 주요한 시점의 하나로 여기에서면 소쇄원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봉대는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대를 쌓고 정자(소정)를 지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대봉대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그 곁에는 봉황새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벽오동나무와 열매를 먹이로 한다는 대나무를 심었다. 또한 입구 쪽으로는 상지와 하지가 있고 바람을 막기 위해 애양단이 바로 앞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상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쇄원48영」중 많은 구절이 적용되는 장소 가운데 한 곳이며, 제 37영 ’동대하음桐臺夏陰’에서 동대 주변의 분위기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주변의 상황으로 보아 ‘동대’란 대봉대를 가리킨다. 이 대봉대의 넓이는 4m×2.5m이다. 현재 대봉대의 초정 옆에 심어진 오동나무는「소쇄원도」에 근거해서 15대손 양재영씨가 최근에 심어 가꾸고 있다. 중국에는 봉황새가 모여 살았다는 봉황새와 봉황산이 많다.
- 광풍각, 제월당, 고암정사 부훤당 터를 지나서 온 곳이 바로 이 대봉대였다. 대봉대 역시 가족들이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단란한 가족에게 양해를 구해 잠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소쇄원의 모든 건축물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고 매우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매료되었던 곳이 바로 이 대봉대다. 대봉대에 앉아 있으면 밑으로 흐르는 계곡과 광석이 보이고 또 평온하게 노닐고 있는 광풍각의 가족들이 보인다. 또 나무들로 인해 항상 그늘이 져 있어 시원하고 주위의 선선한 바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고단함과 더위를 다 씻어 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정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봉대 정자 자체의 모습도 흠잡을 데가 없지만 주위의 계곡과 나무들과 같이 자연과 조화된 대봉대의 모습. 그날 내가 본 대봉대의 모습과 또 대봉대에 앉아서 본 아래 계곡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며 훗날 우리가 또 다시 이 소쇄원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소쇄원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
대나무 숲 사이의 소쇄원 입구
광석과 광풍각 옆 계곡의 모습
연지 - 깨끗해보이진 않았지만 비단 잉어들이 노닐고 있었다.
광풍각 안에 있던 소쇄원도의 모습이다.
위교 - 연지랑 광풍각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정천 - 계곡 옆에 있는 작은 우물. 신기하게도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가 오고 가는 길가를 둘러싸고 있던 멋진
대나무 숲과 나무들 사진을 모아보았다.
5. 마치며..
우리는 태어나서 전라도를 가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 처음으로 전라도 땅을 밟았는데 그 곳이 바로 소쇄원이었다. 소쇄원에 오기까지 우린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서울에서 4시간동안 버스를 탄 끝에 광주를 왔고, 광주에서도 소쇄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1시간 가량 헤메고 다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쇄원 가는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다녔기 때문에 우린 또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간 소쇄원. 소쇄원의 아름다운 자연 경치와 시원한 정자는 6시간동안의 우리의 고생을 일순간에 날려 보냈다. 정말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와 조화를 이루는 정자를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소쇄원을 둘러보고서야 왜 교수님께서 유명하지도 않는 이 작은 유적지를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소쇄원을 답사하고 온지 벌써 3주가 다 되어가지만 우린 아직도 그때의 그 기분. 아름답던 소쇄원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전라남도 담양 소쇄원. 우린 왕복 10시간을 차에서 보내는 등 하루 에 거의 15시간을 이 곳 소쇄원을 위해 보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소쇄원의 아름다운 자연 경치가 그만한 대가를 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렇게 좋은 소쇄원을 다녀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추천해줬던 광주 친구들, 또 여러 선배님들 마지막으로 수업시간에 소쇄원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해준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6. 기타 사진들
소쇄원 입구
제월당 뒷 쪽
우리를 매료 시켰던 멋진 소나무
한자
제월당 안의 모습
연지에 사는 비단 잉어
울창한 대나무 숲
아름다운 풍경
정말 힘들었던 여정.. 잊지 못할 광주
  • 가격2,000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7.01.03
  • 저작시기2006.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6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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