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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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념

2. 종류(사용목적에 의한 분류)

3. 건축의 구성요소
1. 기단
2. 초석
3. 기둥
4. 포
5. 지붕
6. 천장

4. 건물 구조와 명칭
1. 대들보
2. 벽선
3. 서까래
4. 수막새
5. 암막새
6. 용마루
7. 포(包)
8. 활주

5. 건축의 용어설명
1. 간살이
2. 귀마루
3. 누마루
4. 치미
5. 망새
6. 방풍판
7. 솟을대문
8. 추녀
9. 출목

6 - [1] 사찰건축
1. 사원의 어원
2. 사원의 성립
3. 우리나라의 사원이 주로 산지가람형인 까닭
4. 당우 및 가람배치

6 - [2] 주거건축
1. 조선시대 주택의 성립 요인
2. 구조적 분류
3. 한옥의 세부구조
4. 특징적인 가옥과 그 구조

6 - [3] 궁궐건축
1. 궁궐의 어원
2. 궁궐의 구분
3. 궁궐의 외형적 배치
4. 궁궐 배부 구조

6 - [4] 서원건축
1. 성립과 역할
2. 입지 및 건물의 구조와 배치

본문내용

연결되고 다시 직각으로 꺾여 방형을 이루며 정전이나 침전 등 중요 전각이 중앙에 배치된다. 본전의 주위에 행각이나 담장을 둘러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였다. 강녕전 서쪽과 건청궁 앞쪽에는 경회루와 향원정 등 누각이 건립되어 왕이 정사를 떠나서 연회와 소요할 수 있는 정서공간을 마련하였다. 경복궁의 배치는 궁제도에 의한 정형배치와 자연형 배치를 조화시켰다.
6 - [4] 서원건축
1. 성립과 역할
본래 서원이란 명칭은 당나라 때 궁중에 설치되어 서적을 편찬하고 보관하던 집현전 서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543년(중종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서원의 그 주된 설립 의도는 배움의 장을 마련함에 있었고, 그 의도에 맞는 참교육의 장으로서 각광을 받게 되는 데는 16세기의 사화가 큰 계기가 되었다. 향촌에서 나름대로 학문을 연구하던 유생들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에의 참여를 시도하였으나 그들은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 세력과 충돌했고 되풀이되는 사화 속에서 극심한 인적물적 피해를 당하였다. 많은 유생들이 유혈 참극의 제물로 사라져 갔고, 죽음을 면한 유생들은 먼 변방 오지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에 유생들은 정치 참여를 잠시 뒤로 미루고 산간이나 고향으로 낙향하여 학문에만 힘을 쏟고 뜻이 맞는 동료들과 자주 강학회를 가지면서 후진을 양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향촌의 유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으며 거리를 따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와 배움을 청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머무는 곳은 배움의 요람으로 자리 잡아 갔다. 이렇듯이 서원은 향촌의 유생과 명망 있는 석학들이 연결이 되면서 체계적인 교육 시설로 자리 매김 해 나가기 시작했다. 서원에서의 교육은 거의 성리학 위주로 구성되어 원생들은 그것을 근거로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적 덕목으로서 유교 의례를 익혀 나갔다. 또한 서원의 주구성원들이 대개 중앙정계 진출에 뜻을 품고 있던 인물들이었고, 중앙 정계에서 쫓겨난 선비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재기 장소로 활용되었고 붕당의 후방 기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움의 장으로서의 서원은,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선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으로 기능이 변질되어 갔다. 특히 어느 한 문중에 의해 서원이 건립되고 그들의 조상 가운데 한 인물이 제향 되면서 교육의 기능보다는 사묘의 기능이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장의 역할과 선현의 제향이라는 역할 이외에 서원이 담당하였던 중요한 기능으로 향촌 사회의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들 수 있겠다. 따라서 향촌 사림들은 서원에 모여서 서로 의견을 논하기도 하면서 서원에 비치된 서적을 빌려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서원에서 서적을 직접 출판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보관하고 있던 책 뿐 아니라 각지의 서원이 수장하고 있던 책의 대부분이 불탔다. 그러나 재정이 악화된 정부는 많은 책을 출판할 수 없었고 서원이 사액되어도 책을 하사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서원은 스스로 책을 간행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책은 대개 교육용이었으며 때로는 서원에 배향된 인물의 문집, 유고 등을 간행하기도 했다.
2. 입지 및 건물의 구조와 배치
서원은 배움의 장이고 아울러 선현을 받들어 모시던 곳이다. 따라서 선비들은 공부하기에 좋은 조용한 장소를 찾았을 것이고 선현들과 연고가 깊은 곳을 선호하였을 것이다. 서원의 자리는 일반적으로 사찰의 위치와 비슷한 산수가 뛰어나고 조용한 산기슭이나 계곡 또는 향촌에 마련되고 있다. 이는 세속을 벗어나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토록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이황도 도처에 서원을 건립하면서 "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산천경개가 수려하고 한적한 곳에 있어 환경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그만큼 교육성과가 크다"고 하였다.
서원건축의 건물 구성과 그 배치 형식의 큰 뿌리는 향교건축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에서 비롯하여 조선에 계승된 지방교육기관인 향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문묘가 있고 강론을 위한 강당과 제실이 꼭 건립되었다. 서원건축도 향교와 마찬가지로 묘학 동궁의 제도에 따라 묘의 구역과 학의 구역으로 분리되어 그 기능에 따른 건물들이 양 구역에 적절히 건립되었다.
서원건축의 기본적인 배치구도는 모두 전면에 강학 구역을 두고 후면에 제향 구역을 두는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으로 일관되어 항상 묘구역이 뒤편에 위치한다.
건물의 기본배치는 종으로 일정한 중심축을 설정하여 전면으로부터 정문, 강당, 내삼문, 사당 순으로 배치하였으며 강당 전면에는 좌우 대칭으로 재실을 두었다. 그리고 제기고와 장판각, 고사 그리고 교직사 등은 관련 주건물(사당, 강당) 주변에 적절히 배치하였다.
(1) 강당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토론하는 곳이다. 서원 안에서 제일 규모가 크며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2) 재실
강당과 함께 교육 공간의 핵심을 이루는 곳으로 원생들이 잠자는 곳으로 보통 강당 앞에 대칭으로 자리하고 있다. 강당을 향하여 설 때, 오른쪽의 재실을 동재(東齎)라 하고 왼쪽의 재실을 서재(西齎)라 한다, 동재에 기거하는 원생이 서재의 원생보다 선배이다.
(3) 사당
선현의 위패 혹은 영정을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가 지내는 곳. 배향 인물은 보통 1인을 주향으로 시작하나 뒤에 다시 존중할 인물이 생기면 추가로 배향하였다.
(4) 장판각
장판고, 경장각, 서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책이나 이것을 찍어낸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도산서원 등지에는 아직도 많은 목판본을 보관하고 있으며 주로 문집과 경서를 찍어내는 목판본이 보관되고 있다.
(5) 누각
원생들이 배움 도중에 휴식을 취하거나 여가를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누각이 없는 곳도 많으며 어떤 곳은 서원의 정문을 겸한 곳도 있다.
위의 시설외에도 제향 때 필요한 제수를 마련하고 기물을 보관하는 전사청(제기고), 서원 정문인 외삼문(外三門), 제향 구역의 정문인 내삼문(三門), 원지기들이 거주하는 교직사(校直) 등이 서원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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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27
  • 저작시기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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