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연극환경 및 신파극과 전통연희의 상호연관성의 연극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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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1. 머리말

2. 1910년대 연극의 환경

3. 전통 연희 집단의 신파극 수용
3.1. 광무대의 변모와 기생조합의 활동
3.2. 경성구파배우조합과 개량단

4. 신파극 집단의 전통연희의 수용
4.1. 재담극의 활성화
4.2. 고전소설계의 레퍼터리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러한 점은 특히 <재봉춘>, <봉선화>, <귀의 성>, <쌍옥루>, <단장록>, <눈물>, <속 장한몽> 등의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이처럼 이들 작품들이 인기 있었던 것은 이 소설들이 지닌 고전소설적 구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 일본 가정소설 중에서도 <쌍옥루>와 <단장록>이 인기를 모은 것은 이상협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모자이합형의 구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신파극의 소설 각색 공연의 의미에 대해서는 졸고, 「1910년대 한국 신파극의 레퍼터리 연구」 참조.
이러한 점에서 1910년대 신파극은 비록 그 공연 방식은 일본에서 유입되어 '신파조'와 무대장치의 '왜색'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그 내용에서만큼은 다분히 전통적 정서를 계승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수성과 같은 '문사극(文士劇)' 집단에서도 <신춘향곡> (1914.3.26), <츈풍곡>(1914.3.27) 등의 고전소설계의 레퍼터리를 공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록 개량단이 신구 합동 연극을 표방한 극단이어서 그렇기는 하겠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장화홍련전>과 <사씨남정기>를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점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1920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여서 혁신단에서는 1920년 3월 연쇄극 <심청가>를 준비하고 있었고
) 『매일신보』, 1920.3.26.
'신극'의 기치를 내건 '토월회(土月會)'조차도 1925년 5월 <추풍감별곡>, 9월 <장화홍련전>, 11월에는 <춘향전>을 공연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신파극 집단에서 고전소설계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파극이 일본 정서를 직수입하여 비판 정신의 마비와 눈물의 자극이라고 하는 식민 정서를 심화·확대시켰다고 하는 견해는 극단에 치우친 선입관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고전소설계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이 곧바로 신파극이 전통 연희를 수용하였다는 전거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를 통해서 신파극이 단순히 일본 정서를 주입시켰다기보다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하여 공연하였고, 이에 따라 신파극이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1900년대 후반 창극의 성립 이후 판소리계 소설의 공연 뿐 아니라 <은세계>나 <홍안박명>과 같은 창작극도 꾸준히 시도되었음을 상기한다면, 이들 전통 연희 집단의 창조성은 높이 평가되어야 당연할 터이며, 이러한 창조성이 1910년대 신파극의 성립과 유행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연극사의 전개 과정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특정한 무대 양식이 어느 한 순간에 획기적으로 변모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신파극과 전통 연희의 상호관련성을 고려한다면, 1900년대 후반 이후 자리잡은 창극과 전통 연희의 기틀 위에서 비로소 신파극도 가능할 수 있었다는 연극사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신파극과 전통 연희의 거리는 비교적 가까웠으며 1920년대 이후의 대중극은 바로 이 두 공연 양식을 나름대로 섭취·소화하면서 발전해 나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5. 결론
본고는, '창극→신파극→신극'의 전개 과정으로 한국근대연극사의 전개 과정을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연극사적 관점을 지양하고, 창극을 포함한 전통 연희와 신파극의 상호 연관적 전개 과정이 한국근대연극사의 큰 틀을 형성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특히 1910년대의 신파극의 전개 과정을 전통 연희와의 관련하에 살펴보고자 한 시도이다.
그 동안 1910년대 신파극에 대하여는 이 양식이 일본 신파극의 무비판적 이식으로 식민정서를 확대 보급시켰다고 하는 부정적인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본 연구자가 선행 작업으로 1910년대 신파극의 레퍼터리를 검토하여 본 결과, 이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는 뚜렷한 근거 없이 일정한 선입관의 아래에서 주장되어 온 혐의가 짙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1910년대 신파극의 레퍼터리는 전래의 고전소설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 정서를 다분히 계승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1910년대 신파극과 전통 연희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신파극은 공연 초기부터 그 공연 방식에 있어서 전통 연희를 계승하고 있으며, 레퍼터리의 면에서도 고전소설을 각색하거나 그 제재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전통 연희의 입장에서도 신파극의 인기를 이용하여 새로운 공연을 적극 시도하였으며 이를 의도한 극단까지도 구체적으로 조직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호연관은 192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이러한 점에서 1910년대 신파극과 전통 연희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그 이후의 대중극의 핵심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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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11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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