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에서의 혁명과정,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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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남미에서의 혁명과정,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른 베트남' 같은 부담을 안겨준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앙골라·에티오피아 등지의 쿠바파병은 대부분 흑인병사로 차출되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이념보다는 쿠바를 떠나서 다른 나라를 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앙골라 등지에서 귀환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거처럼 귀환병에 대한 우대제도는 없어지고 경기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도 농사일 등 잡역을 해서 자급자족해야 할 형편이 되었고, 국방장관 라울 카스트로도 "대포알보다 먹을 콩알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으로의 망명에 성공한 2명의 쿠바 공군조종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달러소지 자유화가 허용되면서 장교의 월급이 5달러 수준이 되었고 군인이 2류시민으로 전락되었으며 장군들에 대한 불평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한다.
-쿠바군은 현역병 32만에서 다시 옛날의 10만 선으로 감군되었다.
-감군대상이 되는 군인들을 민간사회에서 흡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군인들의 불평불만이 증폭되기 마련이어서 최근 국방성은 고위장교와 내무성 간부들의 소재파악을 24시간 추적하고 있다.
③세 번째 변수: 종교
-쿠바인구의 90%가 토속신앙의식에 참가하고 있다.
-토속신앙이 붐을 일으키는 이유: 경제난국이 심화될수록 종교에 귀의한다는 점, 흑인인구의 사회적 비중이 커지고 있으며, 1970-1980년대 해외파견 병력 50만 명 가운데 절대 다수가 앙골라 등 아프리카에서 귀환했으며 그들의 대부분이 흑인병사들로 귀국시 토속종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토속신앙은 18세기부터 사탕수수밭에서 흑인노예들이 공개적으로 신앙집회를 가져오면서 쿠바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아프리카 및 쿠바 토속종교는 백인 엘리트 지배층이 강요하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문화'의 기능을 해왔기에 혁명초기에 토속종교의 사제들은 카스트로에게 결정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토속종교를 포함, 모든 종교를 "혁명의 적, 제국주의의 도구"로 정의하면서 그들의 타북행사(drum ceremony)에도 제한조치를 가했다.
-쿠바에는 3대 토속신앙이 성행하고 있는데, 첫째가 요루바(Yoruba)족, 둘째가 반투(Bantu)족, 그리고 세 번째가 아바쿠아(Abakua)족의 비밀집단인데, 흑인 중 부자는 모두 아바쿠아족이고 가장 맹렬한 집단으로 한번도 혁명을 지지한 적이 없다.
-쿠바 내에는 약 250명의 신부가 있는데 절반 정도는 쿠바인이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스페인계이다. 최근 가톨릭 세력의 확장은 정부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아바나 시에서 연간 7000명이 세례를 받았는데, 1990년에는 연간 3만 3000명으로 종교에 대한 민중들의 관심증대를 극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개신교의 세력확장에 대해서도 정부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3년 가톨릭의 대주교 2명과 주교 9명이 교서에서 "쿠바인들의 불만, 불확실성, 절망으로 조성된 도덕성의 몰락"과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이성적 폭력행위" 등 "사태의 심각성은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경고했으며 아바나의 오르떼가(Ortega) 대주교는 카스트로 정권이 의도적으로 가톨릭과 토속신앙 추종세력 간에 쐐기를 박으려고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대주교의 주장은 토속신앙 추종자들의 대부분은 가톨릭 신지들로서 일종의 토속화된 가톨릭 신앙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쿠바의 장래에 대한 시나리오
①먼저 43년간 독재를 해온 카스트로(83세)가 암살이나 자연사로 막을 내리는 가정이다. 이럴 경우 쿠바의 제 2인자인 그의 동생 라울이 대권을 넘겨받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라을 카스트로는 국방상 겸 제1부수상, 제2당 서기로서 민병대를 합해 160여만 명을 거느리고는 있으나 형 피델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고 정치적 수완도 미지수로 남아 있다. 라울은 부정사건과 마약거래 및 호모섹스라는 루머까지 따라다니고 있으며, 대중적 인기도 형에 견줄 수가 없다. 형의 유고시 과도기의 대권 대행자로 거론은 되고 있으나 형과 같은 카리스마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기에 후계자로는 오래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정평이다.
②두 번째 시나리오는 군부에 의한 쿠데타이다. 1933년의 하사관에 의한 쿠데타처럼 영관 및 위관급 증간계급에 의한 궁중 쿠데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산권에서의 쿠테타 성공가능성은 확률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쿠바가 점자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경제적인 난국에 대한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감군까지 감행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기에 폭력수단의 유익한 소유집단인 군대의 향상은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③세 번째 시나리오는 대중들의 불평 불만이 팽배하여 사보타주에 의한 대중동요를 경찰이나 군부가 도덕적으로 억압하지 못하고 군이 대중들 편에 서게 되는 경우이다. 우리의 4·19처럼 불씨는 학생과 청소년들이 지피고 난 후 군대가 청소년들의 편에 서게 되는 경우라 하겠다.
④네 번째 시나리오는 내전상태로 돌입하면서 유혈극이 장기화되어 대규모 난민사태로 이어지고 미국이 파병하여 사태를 진압하는 '피바다' 상황을 상정해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반카스트로 세력의 조직화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 쿠바에서 앞으로 폭력의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군대와 경찰력의 향배와 유일무이한 민간협의체라 할 수 있는 종교집단의 움직임이 쿠바의 장래 선택에 있어서 미국의 대쿠바 정책추이와 더불어 가장 결정적인 변수라고 생각된다.
⑤또 한 가지 고려할 사항은 현재의 쿠바 형편이 너무나 처참하기에 대부분 시민들이 저항할 여력도 없고 절망에 빠져 있기에 희망과 기대를 상실하고 있다. 오늘의 쿠바인들은 생존해 나가는 데 너무 얽매여서 탈진상태이므로 저항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혁명의 조건은 사태가 지나치게 악화되어 앞길이 전혀 안 보일 때보다는 악화일로에 있던 여건이 다소 나아질 때와 변화와 개선의 기미가 보일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쿠바 강경노선이 추구하는 봉쇄 일변도보다는 개방과 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끌어안기' 온건정책이 쿠바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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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13
  • 저작시기2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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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98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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