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술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러시아의 미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러시아 미술의 기원
2. 11~17세기의 러시아 미술
3. 18세기의 러시아 미술
4. 19세기 전기의 러시아 미술
5. 19세기 후기의 러시아 미술
6. 20세기의 러시아 미술
7. 19세기 전반~20세기 전반까지의 러시아 미술과 사회의 관계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관계를 살펴보면 이 시대 상황의 주된 흐름은 농노제의 폐지이다. 1861년 농민의 개혁으로 이루어진 농노제 폐지는 전제정치의 체제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농민 세력의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봉건주의가 뿌리깊이 잔존하고 있었기에 완전한 개혁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 미술에서도 19세기 전반의 자연파와 감상주의의로 나누어지듯이 크게 풍경화와 풍자화로 나누어진다.
풍경화는 크게 이동파와 아카데미파로 나뉘어지는데 이동파는 순수 풍경화로서 자연을 묘사하고 아카데미파는 풍경에 숨겨진 민중을 묘사하였다. 이동파는 서정적인 자연을 묘사함으로서 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서정적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19세기 전반의 감상주의와 비슷한 면이 느껴지지만 감상주의에서는 미술인들만의 세계를 창조한 반면, 이동파의 풍경화는 감상하는 이들로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였다는데 중심을 두고싶다. 미술 작품에 있어서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작품을 만들 미술인이나 감상하는 이들이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는 이동파가 사회적인 측면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아카데미파 역시 풍경화의 한 부분을 이루었지만 그들은 이동파와 달리 그림에 민중을 참여 시켰다. 즉 이동파보다 사회적인 부분을 보다 많이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역시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멀리에서 보여지고 그것을 찾으려고 할 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풍자화는 사회를 직접적인 반영하였다. 주로 현실생활을 테마로 한 작품이 많다. 이는 미술인들이 농민과 도시의 하층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보이고 이들을 위한 생활을 따르려는 경향이 강하였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의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다양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세계 제 1차대전과 봉건제도의 몰락 그리고 세계 대공항이라는 대혼란속에서 러시아 사회는 한치앞을 가늠할 수 없는 사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농민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하여 그들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존의 부르조아층의 민중에 대한 노동적 착취나 그 행태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미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술계에서는 각 분파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전투적인 양상으로 치닫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과 대립 속에서도 각 분파의 경향이 존재하였고 여러 종류의 뉴앙스가 이었다. 대체적인 흐름은 풍속화와 풍자화의 쇠퇴, 그리고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의 발전이다.
풍속화와 풍자화의 쇠퇴는 복잡해진 20세기 사회에서 더 이상 민중들에게 호소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문제가 한 방향으로 정체되어 있으면 풍속화나 풍자화가 민중에게 다가갈 수 있으나 문제가 복잡다양해지면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알 수 있다.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의 발전은 19세기 후반의 흐름과는 조금 다르다. 미술 본질에 대한 미술인들의 가치가 정립되었고 민중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어 그 나름대로의 부분을 전문화하고 있다.
19세기 전반의 러시아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는 그리 밀접하지 못하였다. 경제사회적으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사이의 갈등이었다.
미술적인 측면에서는 고전주의의 흐름에서 낭만주의로 전개되는 과정상의 시기이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고루함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전반적인 흐름이었던 시민정신이 19세기에 들어서 보다 사실적이고 구체화되어 낭만주의에서 표출되었다.
사실상 사회 여러분야에서는 공업이 발전하고 기계가 사용됨으로써 신기술을 필요로 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인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봉건주의와 농노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업 발전에 저해 요인으로 다가왔고, 국가에서는 이러한 공업발전을 국가적인 업무로 처리하려고 했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보다 많은 부역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미술의 낭만주의는 시대적인 문제점이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였다.
낭만주의에서 자연파의 생성은 이러한 부분을 좀더 구체적으로 시사한다. 니꼴라이의 강압적인 체제 속에서 미술인들의 생각은 점점 비뚤어지고 있었다. 체제적인 억압과 시대적인 변화에 대하여 자연파는 이를 외면하는 성격의 주류로 흐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파가 사회 외면적인 색채를 나타냈다면 감상주의는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옛 사회의 토대를 흔들고, 사람들에게 옛 습관과 관념을 버리게 만드는 개성적인 창작관, 민족적민중적 예술관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니꼴라이의 숨막히는 체제 앞에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Ⅲ. 결론
19세기 전반 사회는 낭만주의에서 파생된 감상주의와 자연파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감상주의와 자연파 역시 민중을 표현하고자하는 의지는 보여졌지만 특별히 괄목할만한 점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는 봉건제도라는 철저한 폐쇄적 사회와 니꼴라이의 철저한 전제정치를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19세기 후반은 풍경화와 풍자화가 미술의 주요 흐름이었다. 풍경화는 단순히 자연의 서정적 묘사가 아닌 민중의 모습을 담아내었고 풍자화는 농민과 도시 하층민들의 현실생활을 테마로 하여 사회상을 그대로 표출하였다.
20세기 전반은 복잡다양한 사회상이 미술에서도 나타났다. 풍속화와 풍자화의 쇄퇴, 그리고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의 발전은 민중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어 그 나름대로 전문화되어갔다.
19세기 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러시아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국가의 체제나 사회적 분위가 미술에 있어서 여러 가지 장르의 생성과 소멸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사회가 한 방향으로 치닫게 되면 미술은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경향과 그것에 대항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러시아 사회의 혼란, 미술계의 혼란을 야기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고문헌>
A.I 조후프 저 이건수 역, 러시아 미술사, 2006, 동문사
이무열 저, 러시아사 100장면, 2004, 가람기획
김학후 저, 러시아사, 2001, 대한교과서주식회사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7.05.21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054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