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이론의 종류와 그 이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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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평이론의 종류와 그 이론에 대하여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사실주의

2. 루카치의 총체성이론

3. 골드만의 발생론적 구조주의

4. 자끄 라깡의 욕망이론

5. 바흐친의 다성어․층위론

6. 인터텍스튜얼리티

7. 기표와 기의

8. 바슐라르의 이론

9. 모티프론

10. 데리다의 해체주의

본문내용

성차 개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며 그 밖에도 이성이라든가 휴머니즘이라든가 자율성이라든가 하는 이제까지 당연시해왔던 부르주아적 가치개념들의 계보를 밝히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해체주의는 후기구조주의의 작업을 이어받으면서 어떤 개념이나 인식의 틀이 실체화되고 고정되어지게 된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해체주의는 구조주의에 대해서 구조를 중심화하고 실체화할 뿐만 아니라 이분법을 설정하고 은연중에 어느 한 쪽을 가치평가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레비 스트로스의 경우 자연과 문명, 차가운 사회와 뜨거운 사회를 대립시키고 전자를 후자보다 더 평가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 푸코의 경우 예를 들어 이성과 광기를 대립시키면서 이성이 광기를 배제하고 억압한 역사를 분석하고 있는데, 데리다는 이러한 이항대립을 문제삼는다. 즉 이성과 광기는 서로 상보적인 것이며, 보충하는 관계이다. 이성 안에 광기가 있고 광기가 이성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성과 광기가 분리되지 않았던 어떤 시대를 가정한 다음, 이성이 광기를 대상화하여 억압한다는 발상은 역시 이항대립적인 것이다.
데리다는 이처럼 플라톤 이래의 서구의 사유방식에서 고정된 위계질서를 철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하여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글과 말 사이의 위계질서에 관한 해체이다. 말이 근원적이고 글은 대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대하여 데리다는 이를 음성중심주의라 칭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작업은 글이 더 중심적이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도 '이미' 글쓰기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발상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이항대립의 해체란 이처럼 어느 한 항으로부터 다른 한 항으로의 무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두 항 사이의 물들어 있음, 공모관계, 상보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말보다 글을 우위에 놓게 된 것은 여기에 형이상학적 사고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임을 더불어 밝혀주고 있다. 형이상학적 사고는 현상과 본질을 나누면서, 그 본질이 어딘가에 존재해야 한다고 상정한다. 또한 본질은 보다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것이고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것으로 상정된다. 글보다 말을 우위에 놓게 되는 것은 이러한 본질이 글보다는 말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모든 근원적, 본래적, 직접적인 것도 '언제나 이미 있는' 무엇인가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근원적'이라는 말에는 '비근원적'이라는 말이 이미 들어가 있는데, 왜냐하면 근원적이란 말이 의미가 있으려면 비근원적인 것과의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양자의 사이는 공모 내지 반영의 관계이다. 순수한 것과의 관계가 언제나 비순수한 것에 의존하여 인식되고 남자라는 말과 개념은 여자라는 말과 개념에 의존하여 서로 보충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이분법은 글보다 말을 우위에 놓는데서 알 수 있듯이, 각 항의 본질을 상정할 뿐만 아니라 항들 사이의 위계질서 내지 도덕적 판단을 내포하게 되어 있다. 선과 악, 안과 밖, 남과 여,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대립에서 대체로 전자보다는 후자가 우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테면 전통적으로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는 선은 좋고 악은 나쁘다라는 가치판단이 개입하는데, 그럼에도 선한 행동이 언제나 나 자신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좋은 것이 아닐 때도 있고, 악한 행동이 언제나 기분 나쁘거나 괴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이것은 자명하지 않다. 어째서 이러한 모순이 일어나는 것일까? 해체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니체는 일찍이 선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기 때문에 선이라는 매우 충격적인 분석을 한 바 있다. 이때 좋은 것, 나쁜 것이란 본래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자기에게 속한 것이 좋은 것, 타자에게 속한 것이 나쁜 것이 된다. 니체에 따르면 원래 선은 귀족계급이 자신에게 속한 것을 좋은 것으로 보고 그것을 선이라 규정하고 노예들에게 속한 것을 나쁜 것으로 보아 악으로 규정한데서 생겨났는데, 기독교에서는 반대로 역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억압받는 자, 가난한 자가 선한 것으로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은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두 항 사이의 가치서열을 역전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악의 존재이유를 인정한다던가,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던가 하는 갖가지 처방은 애초의 이항대립적 사고, 즉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해체주의의 한 부류는 사실 이처럼 형이상학적 사고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진자운동을 하고 있는 텍스트들을 분석하는데 주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닉한 것은 해체주의 내에서도 종종 새로운 이분법이 설정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적인 것과 유동적인 것, 동일성과 차이, 위계적인 것과 다원적인 것, 동질성과 이질성, 중심적인 것과 탈중심적인 것 사이의 이분법으로서 해체주의에 좋은 것, 즉 해체적이고 차이적이고, 다원적이고, 이질적이고, 탈중심적이고... 등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행위에 의하여 해체주의를 탄생시킨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해체주의 자체는 어떤 '주의'라고도, '체계'라고도, '비판'이라고도, '방법론'이라고도, '철학'이라고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차이와 지연을 합쳐놓은 '차연'이란 용어나 의미의 제어되지 않는 흩어짐과 생장을 뜻하는 산종이란 용어도 의미의 불확정성 자체를 적극적으로 주장 내지 옹호한다기 보다는 의미의 고정과 독점에 대한 경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체가 어떤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전략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실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실천과 결단, 기획 자체를 해체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데리다처럼 '전혀 다른 현재'의 도래에 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한 해체론이란 단순한 비판이나, 텍스트의 유희나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물질적 구조와 제도를 건드리는'문제인 것이며 나름의 절박성과 엄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가격3,0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8.12.29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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