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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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작가 소개
1. 그의 경력, 수상경력, 저서
2. 오태석의 작품의 특징
3, 오태석 희곡에 나타난 영화적 기법 연구
4. 공연 언어의 재담 형성원리 연구
5. 우리말이 수호자 오태석

Ⅱ.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줄거리

Ⅲ. 인물 분석
1. 심청이, 2. 용왕, 3. 윤세명

Ⅳ. 플롯 분석

Ⅴ. 작품 분석
1. 작품의 외적상황
2. 작품에서 물이 가지는 의미
3. 심청이가 인당수에 두 번 빠지는 행동의 의미
4. ‘달아달아 밝은달아’와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의 비교분석

Ⅵ. 결론

본문내용

실세상, 즉 '안(용궁)'과 '밖(현실세계)'을 연결해주는 중간쯤에 위치한 공간이다. 이 유원지 물탱크는 윤세명에게는 아킬레스건을 다쳐 제대로 설 수 없는 그가 유일하게 직립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공을 던지는 손님들에게는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탱크 바로 밖은 흥분한 손님에 의해 보조원이 살해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좀 더 확장시키자면 물탱크 밖은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해야 하는 현실의 공간, 인간성 상실과 죽음이 있는 곳이다. 죽을 것 같은 윤세명은 새우잡이 배를 타자는 용왕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백구호에서 빚을 걸머 쥔 여자들과 심청이가 물에 뛰어드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물 속에 빠지는 여자들은 섬에 들어가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매춘을 하느니 차라리 물로 뛰어드는 편을 선택한다. 여기에서의 물은 바로 모태로의 회귀를 뜻한다. 작품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물은 등장인물들에게 자유로운 삶의 공간으로 연결시키는 매체이며 유동과 자유가 있는 곳이다. 물은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이며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작품에 나타난 '안'은 극중 인물들의 희망의 공간, 질서가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닫혀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은 그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밖'에서 살아보려 하지만 '밖'은 그들이 선택하고 주관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비관과 절망을 안겨주는 세계이다. 작품은 '안'과 '밖'이라는 대립되는 공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치폭발, 균형과 절제의 상실, 혁신의 절망, 이성의 거부, 개방, 통일, 광고의 폭주, 후기산업사회, 대중의 홍수, 총체성 상실 등의 세기말적 징후들을 보여 주려한 것 같다.
3. 심청이가 인당수에 두 번 빠지는 행동의 의미 : 예문에서 심청이는 '이거 다 우리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구요'라고 말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인간적인 일들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심청이는 물 속에서 이 세상을 구원하려고 나왔다가 오히려 이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어 버린 용왕을 끝까지 믿고 있다. 용왕은 손을 내저으며 살려주지 않겠다고 말하나 심청은 용왕에게 자기를 살려준 것처럼 모두를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리고는 심청이는 인당수에 다시 한번 뛰어 들게된다. 즉 심청이는 용왕을 믿었던 것이다. 심청이는 처자들을 대변하고 사회적 구원을 바라며 자신이 임당수에 빠짐으로서 물욕에 눈멀어 있는 사람들이 양심의 눈을 뜨기 바라며 폭력과 불신, 무관심, 물질숭배에 찌든 이 세상의 눈을 밝게하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 첫째는 우선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 친구, 내 가족조차 믿지 못하는 사회의 불신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용왕을 믿고 인당수에 다시 한번 몸을 던지는 심청이를 통해 우리에게 '이 세상은 구원받을 수 있다.' 혹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모태에서와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맛볼 수 있다.'라는 밝은 청사진을 구체적인 방법과 함께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4. ‘달아달아 밝은달아’와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의 비교분석
공통점
두 작품의 심청은 모두 고전 소설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두 타락되고 모순된 현실을 이야기했다. 멍들고 피폐한 이 사회에서 개인의 힘으로만 사회를 이기기에는 역부족하다. 즉, 두 작품 다 병든 현실 앞에 힘없이 놓아진 개인의 무기력함을 노래했다. 그 시대의 상황을 끊임없이 모순과 부조리가 장악하고 있는 세계로 그리고 있으며 그 속에서 개인은 비극적 운명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교정 할 수 없는 세계를 여행하게 되고 결국 개인은 좌절과 패배를 맛보게 될 수 밖에 없다.
차이점
달아달아 밝은달아
① 용으로 표현되는 힘을 가진 남성들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곧 이순신의 일화와 연결되면서 `권력의 부정성`으로 확대된다.
② 이것을 70년대의 상황과 연결시켜 보면 좁게는 당시 군사정권에 대한 부정성에 대한 상징이며 넓게는 독재권력 일반에 대한 부정성을 상징한다. 간단하게 말해 70년대 권력의 부정성과 개인들의 희생을 풍자했다.
③ 사건이 오직 심청이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머지 인물들은 부수적으로 가운데에 위치한 심청이와 연관을 맺고 있을 뿐이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① 급변하는 현대의 비합리성과 정체성이 상실되고 있는 복잡 미묘한 80년대의 상황
② 용왕이라는 인물로 부패한 권력층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얼마든지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희를 중요시하는 사회 상류층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편, 오태석의 작품도 어느 정도는 `부정한 권력`의 주소를 `군사정권`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최인훈의 작품보다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③ 용왕에 의한 사건 시작과 심청이, 세명의 사건 진행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용왕이 사건 전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Ⅵ. 결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련을 겪게 된다.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나면 행복이라는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연극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작가는 분명 관객들에게 현실은 분명 살기 어렵지만 꿈을 가지고 있으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의 달콤한 시간 보다 시련의 시간이 좀더 길게 찾아오겠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김미도, "오태석의 연극과 포스트모더니즘", 「오태석의 연극세계」, 1995.
김미도, 세기말의 한국연극, 태학사, 1998.
김성희, 연극의 사회학·희곡의 해석학, 문예마당, 1995
명인서, "오태석의 공간의식 연구",「오태석의 연극세계」, 1995.
임혜정, "오태석 희곡읽기",「오태석의 연극세계」,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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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22
  • 저작시기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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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56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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