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 감상 비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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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 감상 비평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도려낼 수 없는 가난

3. 세계는 인간에게 늑대였다.

4. ‘거인의 세계’와 ‘난장이의 세계’를 잇는 뫼비우스의 띠

5. `사랑의 세상`

6. 마무리

본문내용

물려준 ‘사랑’을 기반으로 이상향인 ‘사랑의 세상’을 바라게 된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사랑의 세상’은 아버지인 난장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난장이가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유토피아를 상상했다면 영수는 자유로운 이성과 교육을 수단으로 해서 이루어진 이상 사회를 상상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이상 세계에서 ‘법률 제정’이란 강요된 요소는 필요치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완벽한 이상 사회를 추구하면서도 이성이나 교육과 같은 구체적 요소를 첨가함은 영수가 지향하는 유토피아가 난장이의 유토피아보다 더 구체적이며 보완된 실천적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수가 생각한 ‘사랑의 세상’과 함께 또 다른 유토피아 공간으로 영희가 말해준 ‘릴리푸트읍’이 있다. ‘릴리푸트읍’은 난장이를 위한 그들만의 마을이다. ‘거인들이 사는 곳’과는 대조되는 그곳은 실재하지 않으나 이와 같은 공간의 제시는 행동으로 현실을 극복할 수 없는 인물의 대응 방식인 것이다.
영수는 유토피아에의 지향을 단지 이상으로만 갖고 있지 낳고 현실에서의 실현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난장이의 유토피아와는 구분된다. 바라는 ‘사랑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 영수는 주어진 환경에서 실천적인 행동을 통해 동떨어진 두 세계를 연결시키려 한다. 이상 세계의 실현을 위해 직접 현실에 몸을 던지는 그의 의식 속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며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랑과 평등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의 높은 이상과 현실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의 변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높은 현실의 벽은 현실을 통해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영수를 좌절시킨다. 인간이 가진 ‘자유로운 이성’에 의해 ‘사랑의 세상’이 건설되고 ‘교육의 수단’으로 보다 발전될 것이라는 영수의 유토피아는 현실 세계에 부딪쳐 수정되기에 이른다. 노사협의회가 있은 날 밤, 영수는 사랑의 세상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가 말한 대로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난장이가 처음부터 ‘사랑’이란 추상적 개념의 ‘법률 제정’을 말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데 영수의 수정된 ‘사랑의 세상’은 현실 속에서 노동자 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안 후 보다 강력한 힘의 개입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수가 추구한 유토피아는 현실을 반영한 유토피아라 할 수 있다.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해 고통스런 삶을 감수하는 영수에게 계속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의 좌절이다. 좌절과 고독 속에 잠겨 있는 영수에게 제시되는 것이 바로 ‘클라인씨의 병’으로 이는 사랑으로 모두가 어우러진 삶을 사는 ‘사랑의 세상’을 설명하려는 근본적 방법론에 해당한다. 또한 이 ‘클라인씨의 병’은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목표로 하는 영수에게 또 하나의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는데 안팎의 구분이 없는 이상 세계의 논리를 현실 세계와 연결지으려는 영수의 결심을 엿볼 수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던 영수는 「클라인씨의 병」에서 이상 세계의 논리인 안팎이 없는 세계를 현실에서 실천할 것을 결심한다. 추상의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서의 ‘클라인씨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와는 달리,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영수는 그와 같은 이상 세계의 논리를 현실에서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수의 이상 실현은 ‘살인’이라는 형태로 나타남으로써 결국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한 꿈은 중도에서 좌절되고 마는데 이는 영수의 이상 실현 방식이 열린 공간 속에서 사랑의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절된 공간 속에서 힘의 방식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왜곡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결국 영수의 유토피아는 현실과의 연결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논리에 압도당함으로써 좌절되고 ‘살인’이라는 행위로 귀결된다.
그러나 『난장이』는 주인공들이 열망하는 유토피아를 좌절시킴으로써 잔인한 현실의 현상황을 고발하고 더 나아가 현실극복의 의지를 형상화하여 리얼리즘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난장이』에서 난장이와 영수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 장벽에 출구를 찾지 못하고 좌절하는 데서 끝난다면 이 작품은 허무주의로 흘렀을 것이다. 즉 지섭이 작품 내에서 말한 대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물리적 대립만이 끊임없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는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에 있어 분배의 모순에 의해 형성된 삶은 ‘사랑’이라는 보편적 이념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힘들의 충돌과 대결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현실을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으로 인식했음에도 현실의 모순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영수와 난장이의 내면은 결국 현실에 대한 개인의 승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6. 마무리
작가 조세희가 그린 세계는 대결적 구도가 단순히 단선적인 형상을 취하지는 않고 있으며, 다양한 층위에서 전복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뫼비우스의 띠’와 ‘클리인씨의 병’의 개념을 통해 열어두고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자본주의적 권력의 폭력적 억압을 폭로하고 현실은 모순을 극복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렇기에 현실의 모순을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도덕과 윤리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다양한 삶의 모습과 대비시킨다. 그러나 이 같은 관념은 현실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사랑이 있는 난장이의 세계와 그 반대인 거인의 세계는 크게 대립하고 단순히 선과 악의 구도로 대결한다. 그렇지만 대결은 대결로 끝맺지 않고 리얼리티 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의식 세계의 표현과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모더니즘적 형상화 방식을 취하게 하여 독특한 현실을 나타내게 한 것이다.
조세희의 작품은 적은 편이다. 그래도 언젠가 나온다면 그때 또다시 작가는 장애와 상처를 지닌 ‘난장이의 세계’의 인간을 내보낼 것만 같다. 그때는 그를 죽음으로 이끌지 않은 채로 천국으로 이끌기를 기다려본다. 천국이 죽음의 반의어는 아니기 때문에…….
참고문헌 - 조세희,「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문학과 지성사, 1978
창작과비평 편집부, 창작과 비평 」 1978년 여름호,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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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1.21
  • 저작시기2007.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9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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