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성풍속에 대하여
본 자료는 1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해당 자료는 1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조선시대의 성 풍속에 대하여

1> 남근 숭배 사상

2> 여근 숭배 사상

3> 나무시집보내기

4> 과부 구원책(보쌈)

5> 풀무질

6> 조선시대 성교육과 성풍속

본문내용

교육을 살펴보자. 임신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임신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에서 오늘의 성교육과 다르다. 여자들은 주로 어머니로부터, 남자는 서당에서 논어 공부를 마친 다음 '보정(保精)' 이라는 성교육 과목을 배운다. 성교육 내용에는 성교 횟수도 포함되는데 중국 도가서인 '포박자 (抱朴子)'의 예를 들어 20대는 3~4일에 한번, 30대는 8~10일에 한번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간통죄는 엄하게 다뤄졌다. 당시는 남녀 모두 기혼.미혼을 막론하고 혼외 성관계를 간통으로 취급했고 고소 여부에 상관없이 처벌했다. 다만 현장이 발각돼야 죄가 성립되는 것은 지금과 같다. 이때 처벌은 보통 장형 (杖刑) 80~1백대 사이. '필요악'이라 불리는 매춘부는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 때도 존재했다. 그중 기녀 (妓女) 는 이를테면 '제도권내의 매춘부' 였으며, 제도권 밖에는 '유녀 (遊女)' 와 '화랑 (花郎)' 이라고 불리는 매춘녀들이 있었다. 간통 등의 이유로 순결을 잃은 양인 여성들이나 천민들이 흔히 제도권 밖의 매춘에 종사했다는 것. 이밖에 저자는 조선의 결혼제도나 이혼.동성애 등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풍습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달하고 있다.
  • 가격1,000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10.05.11
  • 저작시기200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804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