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문화제와 사회심리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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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문제제기
2. 인터넷이 만든 새로운 한국사회
3. 정치적인 것과 정치의 의미 변화
※촛불 시위, 국민들에게 정치적 삶을 일깨우다

Ⅲ. 결론

※촛불문화제에 대한 내 생각

※참고문헌

본문내용

변화, 이것을 하나의 후천개벽적 상황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촛불의 일면을 부각하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촛불을 든 여고생을 중심으로.
죽음으로 상징되는 효순이와 미선이, 그리고 광우병 쇠고기와 그것을 강압하는 미국이라는 폭력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화약 역할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효순이와 미선이를 거리에서 본다. 그들이 모두 심정적으로 효순이와 미선이와 같은 편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나는 지율 스님을 생각한다. 왜 이들은 한미 FTA 반대와 지율스님의 천성산 살리기 운동엔 그렇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까? 지율스님의 40일을 넘긴 여러 차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촛불은 강물이 될 수 없었다.
여기서 촛불의 다른 면을 살펴보자. 촛불은 끔찍하게 죽은 여중생의 죽음과 광우병 소가 주는 충격으로 촉발되었다. 시각적 이미지가 안겨주는 충격은 사람들의 분노를 쉽게 자극한다. 그래서 정부가 텔레비전을 특히 PD수첩 같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분노로 촉발된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며 이성적이지 못한 약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힘 있고 생명력이 넘친다. 감정적 대응이 쉽게 폭력화할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촛불을 들면서 이성과 부드러운 감성으로 치환되어 나타난다. 이때 벌써 새로운 젊은 세대에게 폭력은 낭비이며 야만이다. 대신 공감과 감동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영향이 다른 세대에까지 파장을 일으킨 것이 지금의 촛불이다.
그런데 FTA와 천성산은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문제에서는 감정적 충격을 느끼기보다 이성적 이해가 필요했던 탓일까? 죽음이 직접적으로 목격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느낀다.
이것이 촛불의 장점이자 한계는 아닐까? 촛불이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고 감성적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불순한 생각을 한다.
촛불이 새로운 불로 변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엉터리 교육 제도에서 벌어지는 시험을 거부하고 학교와 교복을 거부하고 다국적 기업과 거대언론의 횡포 등을 거부하는 것 말이다. 촛불이 우드스톡 페스티벌처럼 한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이 땅에 새로운 히피운동-비록 히피운동이 서구 백인들의 한계에 갇혔더라도-, 자유운동으로 번져나가기를. 그런 불을 생활자주화 운동이라고 말할 대 그런 운동의 불은 평생 지속되며 쉽게 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 전체에 옮아붙어 자기를 태우고 부당한 사회도 점차 태운다. 나는 종종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이 프랑스의 소년소녀들처럼 엉터리 학교와 교육제도에 반대해 거리로 뛰쳐나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 그런 아이들로부터의 거부 없이 과연 교육제도가 바뀔 수 있을지 비관할 만큼 현실의 교육이 완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른의 개혁안이란 언제나 어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촛불이 부분적으로 후천개벽과 연결됨에는 동의한다. 정치와 폭력으로 대별되는 남성성 대신 문화와 비폭력(사랑)으로 대별되는 여성성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그러나 이것이 정말 도도히 흘러갈 후천의 새로운 불의 강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후천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다. 언제나 지속하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 곧 후천이다. 개벽은 미래 어느 시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온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실현하려 노력하는 때가 개벽의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론 촛불은 후천개벽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꿈꾼다. 촛불이 이 땅에 하나의 자유와 평등 평화를 위한 축제로 자리 잡고, 일 년에 얼마간의 기간씩이라도 우드스톡 페스티벌처럼 모여 문화를 나누고 토론하고 새롭게 조직하고 연락하는 해방공간으로 자리하기 바란다. 누군가는 직접민주주의의 횡포라 말하겠지만, 개인들의 그런 직접적 참여와 의사표현 방식 없이 민주주의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그리고 평소에도 삶 자체를 양심과 진리의 촛불로 밝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참고문헌
1.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 촛불집회의 정의 발췌 / http://ko.wikipedia.org/
2. 한계래신문 등 비보수파 언론들이 바라보는 촛불집회의 평가내용 일부 인용
3.http://www.lawnb.com/lawinfo/law/info_law_searchview.asp?ljo=l&lawid=00279800 법률관련 사이트에서 집시법 원문 중 일부 발췌(제 10~11조)
4. 조선일보 사설 : 항의 표시는 충분했다....이제 정부를 지켜보자 中 내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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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2.13
  • 저작시기2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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