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경제개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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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경제개발계획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경제개발계획과 1·2차 경제개발계획

3. 3차 경제개발계획
(1) 기본목표
(2) 총량계획
(3) 주요정책수단
(4) 성과
(5) 문제점

4. 결론

본문내용

973
1974
1975
1976
1972~76
총투자율
22.1
26.2
28.6
26.7
27.1
26.1
국민저축률
15.6
21.9
23.3
25.1
29.7
23.1
해외저축률
5.6
2.3
3.8
0.3
4.4
1.5
자료 :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 20년의 회고와 반성,1982, p. 201
(5) 문제점
1) 물가상승
경제성장과 더불어 나타난 것은 물가상승이었다. 1972∼1976년 간에 도매물가의 상승률은 연평균 20.1%에 이르렀고 74년에는 무려 40.1%에 달했다. 물가상승의 대내적인 요인으로는 정부의 높은 투융자로 인한 재정인플레이션을 들 수 있고, 대외적인 요인으로는 1973년의 석유파동으로 인한 국제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들 수 있다. 이후 이러한 상황과 함께 농산물의 흉작이 겹치면서 우리경제는 1979년 하반기부터 급속한 경기후퇴와 심각한 경제적 침체현상이 난타났다. 결국 이 시기를 통하여 인플레의 고질화가 이루어졌다.
2) 국제수지의 악화
전기에 겪었던 국제수지적자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국내저축은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무리한 중화학공업건설로 인한 투자조달을 위해 많은 외채를 쓰게 되어 전체 외채는 5,649백만 달러에 이르러 2차시기보다 152%나 증가하였다. 이러한 외채는 국제수지를 더욱 악화시키게 되었고 외화를 상환하기 위하여 수출을 늘리려 했고 그 과정에서 다시 외채를 쓰게 되었다. 결국 순환적으로 외채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시기에 1·2차의 문제점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 가속화시킨 결과가 야기되었다.
3) 고도성장정책에 따른 부작용
석유위기를 무릅쓰고 지속된 고도성장정책은 경제에 커다란 인플레이션압력을 잉태하였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억제정책을 채택하고 있었던 반면 한국만은 성장지향적인 확대정책을 지속하였다. 수출을 겨냥한 과다한 중화학공업투자는 중복투자와 과도한 대내외 부채로 인한 비용증가를 수반하여 많은 투자사업의 효율을 저하시켰다.
4) 중화확공업정책추진에 따른 부작용
1970년대에 정부는 적극적인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폈다.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경제경제의 바람직한 방향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시기적으로 중화학공업은 아직도 경쟁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자원축적과 기술축적이 부족한 가운데 급속한 중화학공업화의 추진과 무리한 성장위주정책으로 인항 한국경제는 자원배분상에 있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발생시키게 되었다. 중화학공업화를 위한 인위적인 정부의 개입과 인센티브의 부여는 많은 자원낭비를 초래했다. 무엇보다도 중화학공업화 초기에는 작은 내수시장으로 인하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없었고 그것은 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중공업의 비중이 현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나 기초생산재공업과 중간생산재공업의 비중을 별반 증가하지 못하고 최종생산재공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국내 타 산업분야에 마치는 전후방효과가 미약하였다. 결국 공업구조는 여전히 취약한 형태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화학공업 중심의 성장중심전략으로 인하여 환경오염, 생태계파괴등 환경파괴문제등도 나타나게 되었다.
5) 경제 집중에 따른 불균형 현상
수출과 중화학공업에 대한 강력한 정책적 배려는 당연히 자원배분이 주로 이러한 부문에 집중되어지는 것을 의미하였다. 수출과 중화학공업이 종합상사와 그 관련 기업집단의 몫이 됨에 따라 산업균형과 분배의 형평도 대기업에 상당히 유리한 편향성을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대기업의 비대화와 중소기업의 상대적 낙후가 심화되었다. 인플레이션압력 또한 소액예금자의 희생 아래 채무계급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지역 간, 부문간의 심한 불균형적 개발로 도시지역의 과밀화와 농촌지역의 낙후현상을 심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소득분배에 있어서도 절대빈곤은 해소되었으나, 계층 간 소득의 불균형적 분배는 심화되었다. 또한 공업화 위주의 성장정책은 사회개발을 위한 투자를 등한시하여 사회개발을 뒤쳐지게 하였다. 이와 같은 제반 불균형 현상은 지역 간, 소득계층간에 심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경제성장잠재력을 잠식하게되었다.
4. 結論
제3차 경제개발계획은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중화학 공업 위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나 도시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양산하였다.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우선 우리나라는 국내저축수준이 낮아서 투자재원을 충분히 조달할 수 없었으며 자본시장의 미발달로 인하여 기업이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부품산업도 그동안의 대기업위주의 개발로 인해 중소기업부문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 한꺼번에 추진된 중화학공업의 건설은 막대한 외자도입, 과잉중복투자.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 경제체질의 약화 등 많은 문제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농어촌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 결국 수출을 많이 해서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길밖에 없다고 하여 중화학공업시대의 개막은 결국 수출의 획기적 증대를 통한 농업과의 병행발전이 박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한국 수출상품의 대종을 이루어온 섬유, 합판, 가발, 신발류 등은 선진국들의 수입제한조치 및 보호무역주의의 대두와 함께 점점 어려운 고비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개발도상국간의 수출경쟁의 심화와 일반적인 수요의 감소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경공업 상품만으로서는 높은 수출신장률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공업에 치우쳐 있던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취약성을 하루 빨리 탈피하고 국제수지 역조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의 고도화는 필수적 과제라고 박대통령은 항상 강조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중화학공업개발의 의의는 공산품 가공원료의 국산화 촉진을 통한 해외원자재 의존도의 감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과 고용증대 역시 중화학공업을 개발하는 목적의 하나였던 것이다. 아울러 단순한 고용증대에만 그치지 않고 기술의 고도화를 통하여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킴으로써 근로소득의 증대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그 당시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이었으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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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01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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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2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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