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A+자료) 고려청자 및 한국의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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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A+자료) 고려청자 및 한국의 도자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1. 한국의 도자기 역사의 발자취
Ⅱ-2. 찬란한 장인정신의 산물, 고려청자

Ⅲ. 마치며

본문내용

사물의 특징을 간결하면서 생동감 있게 묘사한 예들이 많다.
퇴화 청자-붓을 이용하여 무늬를 그리는 점에서는 철화 청자와 같다. 다른 점은 안료를 그릇 표면에 두껍게 발라서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중심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중심 무늬의 주변을 꾸밀 때 많이 이용된다. 퇴화 기법 자체만으로 무늬를 표현한 경우도 있다.
음각 청자-조각칼과 같은 도구로 그릇 표면에 홈을 내어 무늬를 새기는 가장 초보적인 기법의 청자이다. 조각칼을 옆으로 뉘어 새기면 선이 굵어지고 반쯤 양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양각 청자-무늬 주변을 조각칼로 파내어 도드라지게 만든 청자이다. 무늬틀로 찍어서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인각 또는 양인각이라 한다.
마지막으로는, 고려의 자기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도자기는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이다. 특히 ‘자기’의 제작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내는 자기는 최상의 기술로 완성된 섬세한 예술품이다.
한국에서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무렵이다. 그동안 쌓아온 토기 제작 기술과 중국 월주요 자기의 영향으로 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현재의 개성)에 가까운 중서부 지역에 있었다. 1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두 지역을 중심으로 청자가 제작되었고, 초기에 비해 제작기술이 훨씬 발전하였다.
고려자기는 11세기 중엽부터 눈에 띄게 발전하여 12세기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다. 특히 청자는 다양한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그릇과 같은 일상용품을 비롯해서 기와나 타일 같은 건축자재까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유약이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 청자’의 완성과 도자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연 ‘상감’ 기법의 개발이다.
고려는 13세기에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나라 안 사정이 매우 어려워졌는데, 이런 상황은 청자를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색 청자의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빛깔은 점점 사라지고, 청자의 길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특히 14세기 후반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남부 지방이 황폐해지자 강진과 부안의 장인들 또한 살길을 찾아 내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때문에 자기 생산이 널리 확대되고 자기를 사용하는 계층의 폭이 넓어져 고려 말의 상감 청자는 조선시대 ‘분청사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다음 < 표 1 >은 고려자기의 역사를 한 번에 정리한 것이다.
900
1000
1100
1200
1300
918, 고려 건국
936, 후삼국 통일
청자, 백자의 제작 시작
10세기 상감 기법 발생
철화 청자 성행
음각 기법 발달
1157, 청자 기와
순청자 전성기 비색 청자 완성
구리 안료 개발
음각, 양각, 투각, 상형, 퇴화 기법 세련
상감 청자 유행
1231, 몽고 침입
1232, 강화도 천도
금채 청자 제작
복잡하고 화려한 무늬의 청자 유행
1359, 홍건적의 난
1392, 고려멸망, 조선건국
상감 청자 쇠퇴
번외로 고려가 자랑하는 고려청자 중에서 세계 최고라 자부할 수 있는 것인 상감 청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봤다. ‘상감 청자’는 자기의 바탕흙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이다. 다른 재료로 메워서 꾸미는 기법은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의 입사기법에서 볼 수 있는데, 이를 도자기에 응용한 것은 고려 장인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9세기 말 10세기 초로 여겨지는 상감 기법의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며, 12세기 중엽에 이르면 상감 청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상감 기법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고려가 이룬 뛰어난 업적으로, 비색 청자 유약과 더불어 고려청자의 특징이 되고 있다. <상감 무늬의 제작 과정>
Ⅲ. 마치며
이번 견학과 조사는 정말 한 톨도 빠짐없이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인터넷 같은 떠다니는 하급 정보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내 두 눈으로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감정이입까지 하며 알아보았고 생각을 적은 내용들이다. 그래서 더욱 막상 조사를 하고 내가 찍어온 사진들을 보면서 몬가 우리나라의 역사, 즉 도자기의 역사와 그리고 평생 지나칠 수 있었던 고려청자에 대한 마음 한 켠에 있던 관심을 밖으로 끄집어내어서 표출한 것 같아 정말 난생 처음으로 박물관을 갔다 오고 나서 보람을 진정으로 느꼈다. 특히, 앞의 많은 조사를 했던 것은 결국 우리나라의 도자기 문화의 마지막 끝, 물론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나 백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거의 도자기의 끝, 즉 경지라 할 수 있는 고려청자의 뛰어나고 빼어나고 수려하고, 아름다움을 알고, 또한 알리고 싶어서 시간을 할애해서 고려 이전의 토기들도 조사를 했었던 것이다.
창조, 혁신, 이러한 말들이 요즘 정보화 시대, 그것을 넘어 포스트 정보화 시대로 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고 키워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려의 자기 장인들은 벌써 선견지명을 하듯, 그러한 창조적인 생각들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고려청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청자의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무늬를 새기는 기법과 몬가 계속 보고 있으면 홀리면서 빠져들게 하는 비색(비취색)의 경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고려청자였던 것이고, 지금까지도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세계인들에게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우리나라만의 한국도자기, 고려청자가 하나의 문화유산이자 수출품이자 최고의 국보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려청자! 이 하나만으로도 고려인들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네모(한 단어) 같다. 고려는 네모다. 고려인은 네모다. 고려인은 고려청자다. 고려인은 창조적인 예술을 했던 장인이다. 내가 가장 크게 내 가슴 속에 와 닿았던 느낌이다.
모든 사람들이 장인, 다시 말해 자기 분야에서 장인의 정신을 가지고 엄청난 노력과 독창적인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Ⅲ‘. 끝으로, 국보로 지정 돼 있는 고려청자의 감상과 함께, 장인에 대한 경외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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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8.07
  • 저작시기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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