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책 신상전편 인상부 人象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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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관상책 신상전편 인상부 人象賦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固善惡之萌於心兮,夫何相之足恃?
진실로 선악은 마음에서 싹트니 어떤 상을 족히 믿겠는가?
昔先子之精鑒兮,幸文皇之隆遇。
예전에 선배 스승님이 정밀하게 감식하니 다행히 문황이 융성함을 만났다.
閱形以辨色兮,復察心而驚勵。
이미 색을 변별하며 형체를 열람하며 다시 마음을 살펴서 놀랍게 격려했다.
指仁義以爲干櫓干櫓(방패, 노, 배젓는 기구 로{노}; -총19획; lu) 방패(防牌)
兮,申孝弟而爲鑿柄。
인의를 지칭하여 방패로 삼고 효성과 공경을 펴서 끌의 손잡이로 만든다.
修省以懲艾 징예: 처벌하다. 징계하다
兮,全堂堂之德器。
닦고 살피어 징계하니 완전이 위풍당당한 덕의 그릇이다.
余踵武 踵武: 남의 발자취를 뒤따르다. 모방하다
以紹先烈兮,揆淺陋而懷愧。
나는 선열을 이어서 비천하고 비루함을 헤아려서 부끄럼을 품는다.
感聖恩之念終始兮,賜懸車현거: 1. 수레를 건다는 뜻으로, 나이가 들어 벼슬을 그만둠을 이르는 말. 중국 한나라의 설광덕(薛廣德)이 관직을 그만두고 은거할 때, 임금이 내린 안거(安車)를 매달아 놓고 자손에게 전하여 행영(幸榮)을 보인 고사에서 유래한다. ≒현여.
2. 일흔 살의 나이를 이르는 말.
3. 해 질 무렵
之嘉惠。
성은의 생각을 감격하여 끝과 처음을 생각하니 벼슬을 그만둘때 아름다운 은혜를 받았다.
述舊聞以示同志兮,嗟精奧之罔備。
예전에 들은 바를 기술하여 동지에게 보이나 안타깝게 정밀함과 심오함을 대비하지 못했다.
或堯言舜趨 우행순추 : 겉으로만 우(禹)와 순(舜) 같은 성인(聖人)의 흉내를 내고, 학식(學識)과 인격(人格)은 없음을 이르는 말 출전 순자(荀子)
而蹠其行兮,雖深察而難試。
혹자는 요임금의 말과 순임금의 행동이나 학식이 없고 행동을 따르지만 비록 깊이 관찰하여도 법으로 삼기 어렵다.
故莽懿왕망: 자 거군(巨君). 산둥[山東] 출생.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왕후인 왕(王)씨 서모의 동생인 왕만(王曼)의 둘째 아들. 갖가지 권모술수를 써서 사실(史實)상 최초로 선양혁명(禪讓革命)에 의하여 전한의 황제권력을 빼앗았다. 왕왕후의 아들 성제(成帝)가 즉위하자, 왕망의 큰아버지 왕봉(王鳳)이 대사마대장군영상서사(大司馬大將軍領尙書事)가 되어 정치를 한 손에 쥐었다. 왕망은 불우하게 자랐으나 유학을 배웠고, 어른을 잘 섬겼으므로 왕봉의 인정을 받았다. BC 33년 황문랑(黃門郞)이 되고, BC 16년에는 봉읍(封邑) 1,500호를 영유하는 신야후(新野侯)가 되었다. 그뒤 왕씨일족의 두령으로서 지위를 굳히고, BC 8년 38세로 재상이라 할 수 있는 대사마(大司馬)가 되었다. 다음의 애제(哀帝) 때에 신흥 외척의 압박을 피하여 한때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애제가 1년 만에 아들 없이 죽자 태황태후 왕씨와 쿠데타에 성공하여 대사마에 복귀하였다. 9세의 평제(平帝)를 옹립하여 자기의 딸을 왕후로 삼았으며, 자기에게는 안한공(安漢公) ·재형(宰衡)이라는 칭호를 붙여 평제의 보정자(輔政者)로서의 외관을 갖추었다. 그는 평제의 어머니를 비롯한 외척세력을 모두 숙청하였고 자신의 아들 왕우(王宇)도 독살하였다.
사마의: 자(字)는 중달(仲達)이며, 하내군(河內郡) 온현(溫縣) 효경리(孝敬里, 지금의 河南省 溫縣 招賢鎭) 출신으로, 경조윤(京兆尹)을 지낸 사마방(司馬防)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중국 삼국시대에 위(魏) 나라의 조조(曹操, 155~220, 武帝로 추존), 조비(曹丕, 文帝 재위 220~226), 조예(曹叡, 明帝 재위 226~239), 조방(曹芳, 哀帝 재위 239~254, 齊王이라고도 함) 등 4대(代)를 보필하며 공을 세워 무양후(舞陽侯)에 봉해졌다. 손자인 사마염(司馬炎, 236~290)이 서진(西晉)을 세운 뒤에는 선제(宣帝)로 추존(追尊)되었고, 묘호(廟號)를 고조(高祖)라 하였다.
之有是兮,貽禍患於漢魏。
그래서 옳으니 왕망이나 사마의처럼 한나라와 위나라에 화와 근심을 남겼다.
識介甫왕안석: 중국 북송의 정치가·학자. 자는 개보(介甫). 호는 반산(半山). 경력(慶曆, 1041~1048) 연간에 진사가 되어 변법에 주력하여 신종의 신임을 얻어 재상에 봉해져 부국강병을 위한 신법(新法)을 제정하여 실시하였으나 보수파의 공격을 받아 재상에서 물러나고 강녕(江寧)으로 은퇴하였다. 그의 문장력은 동료와 적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는 우아하고 깊이 있는 글로써 당송8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으로 꼽히게 되었다.
於未萌兮,惟老泉 蘇洵 [1009~1066]
중국 북송(北宋)시대의 문학자. 호 : 노천(老泉) 자 명윤(明允). 호 노천(老泉).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출신. 젊은 시절에는 협객(俠客) 노릇을 하다가 27세 때에 분발하여 학문에 정력을 쏟았으나 진사(進士) 시험에 낙방하자 관리가 되기를 단념하고 정치와 역사평론의 저술에 힘썼다. 1056년 날카로운 논법(論法)과 정열적인 필치에 의한 평론이 구양 수(歐陽修)의 인정을 받게 되어 일약 유명하여졌다. 그후 조정에 나가 북송 이래의 예(禮)에 관한 글을 모은 《태상인혁례(太常因革禮)》(100권)를 편찬하였다.정치 ·역사 ·경서 등에 관한 평론도 많이 썼으며,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렸고,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칭송되었다. 또, 소순을 노소(老蘇), 소식을 대소(大蘇), 소철을 소소(小蘇)라고도 부른다. 그의 문집을 《가우집(嘉祐集)》 또는 《노천선생집(老泉先生集)》이라 하며, 그 밖에도 《시법(諡法)》(4권)의 저작이 있다.
與呂誨 宋나라의 정승인 王安石14)을 당시 사람들이 모두 稱讚하였으나, 呂誨(여회)는 그의 심술을 攻擊하였다.

아직 싹트기 전에 오직 노천 소순과 여회만 알아보았다.
蓋金玉之混沙石兮,在良工之陶。
금과 옥이 모래와 돌에 섞이니 좋은 공인은 질그릇 빚고 일어낸다.
(말 내킬, 곰곰이 생각하다 월; -총13획; yue)
簡編之有傳兮,必心融而面諭。
책에 전함이 있으니 반드시 마음으로 녹이고 얼굴로 깨달아야 한다.
若無稽而肆言兮,則羞吝之至。
만약 고찰함이 없이 마음대로 말하면 수치와 인색함이 함께 온다.
明哲之有兮,亦庶幾乎垂世 수세: 세상에 널리 전하다

혹시 분명한 철인이 있어서 또한 세상에 거의 널리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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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19
  • 저작시기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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