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일번지, 강진 답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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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도답사일번지, 강진 답사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남도답사일번지 ‘강진’
1) 강진군은?
2) 찾아가는 길?
2. 영랑생가
1) 시인 ‘김영랑’ _ 김윤식
2) 영랑생가
3) 영랑문화제

3. 다산초당

4. 백련사

5. 주변관광지
1) 무위사
2) 월남사터
3) 청자도요지

6. 강진의 맛집

본문내용

의 본래 이름은 산 이름을 따서 만덕사였으나, 현재는 백련사라고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에 창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명종 때인 1170년에 원묘국사 여세에 의해 중창되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오솔길로 이어져 있어서 이 길을 통하여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 갔다.
길이는 대략 800m이고, 예전에 다산 정약용 선생과 백련사의 명승 혜장스님이 교우를 다지며 걷던 산길을 관광객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오솔길로 만들었다.
대웅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136호로 지정되어있는 이 대웅전은 신라시대에 창건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8국사의 도량이였으며, 명종때인 1170년경에 원묘국사에 의해 중수가 되었고 조선세종 때 2차, 효종 때 3창 중수를 하였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5. 주변관광지
1) 무위사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위치하여있고 국보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위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 원효대사에 의해 당초 관음사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신라시대부터 무위갑사란 이름으로 불려 왔던 사실은 경내에 현존하고 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명에 의해 알려지고 있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네번째 중건인 서기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전 만은 최근(1956년경)에 실시된 보수공사에서 보존 후벽의 벽화 명문에 "십이 병신삼월초길 화성"이란 기록이 판독됨으로써 성화 12년(서기 1476년)보다 앞서는 건물일 것으로 막연하게 추정해왔다.
그러나 1983년 옥개부 이상을 해체 보수할 때 중앙간 종도리 장혀에서 "선덕오년"이란 묵서명이 발견됨으로써 이 건물이 세종 12년(1430)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전혀 기둥이 없는 널찍한 공간을 이뤘고 내부 벽에는 여러 보살 및 천인상을 그린 벽화가 있는데 당대 인물화가인 오도자의 신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2) 월남사지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위치한 월남사지.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현재 월남사지에는 두개의 큰 유물이 남아있는데, 바로 월남사지 3층 석탑과 월남사지 진각국사비이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진각국사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 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3) 청자도요지
-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서 지표조사 된 청자가마터(窯址)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량이다. 이에 고려청자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를 위하여 1997년 9월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이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청자박물관으로, 고려청자의 수집, 전시, 연구, 교육 등을 통하여 청자문화의 계승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기존 박물관과 다른 전시 방법과 유적지 주변에 세워진 역사성으로 현재 추진 중인 공립박물관의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작업장이 세워져 우리나라 청자의 과거 및 현재를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그리고 매년 8월말 일주일동안 청자문화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6. 강진의 맛 집 (두 곳)
- 우선은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해태식당.
이곳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소개 된 후로 유명세를 탄 식당으로서, 실제로 아주 맛있고, 음식 가짓수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엔 유명세를 타고 손님들이 붐비자 점차 가격을 올리고 맛도 많이 떨어지게 되어 평판이 많이 안 좋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로 강진의 공설운동장 쪽으로 빠지다보면 ‘종가집’이라는 한정식 집이 있는데, 이곳의 금액은 1인당 2만원이 기본이 꽤 부담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식당이 전체로 깔끔하고 음식 가짓수나 맛 면에서 꽤 괜찮다는 입소문이 퍼진 식당이다.
부록
참고 자료
- 강진 군청 홈페이지 _ http://gangjin.go.kr
- 강진군 안내 팜플렛
  • 가격2,5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0.02.17
  • 저작시기200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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