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유적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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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대 유적을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근대사의 산실 운현궁
갑신정변의 현장 우정총국
김상옥의 혼이 어려있는 의금부터
고종즉위 40년 칭경 기념비

본문내용

'춤추는 고종황제'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서 '고종'이란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 문화적, 역사적 과도기 속에서 인간으로서, 한나라의 아버지로서 겪었던 고통과 갈등, 번민의 한 인간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조선왕조의 비운과 근현대의 침탈의 역사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왕조의 마지막 역사에서 아픔을 간직한 근현대사의 무대 중 하나가 바로 이번 답사의 주요 행선지인 고종황제가 태어난 운현궁이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항상 희극이기보다 비극의 중심에 서 있었던 곳, 그래서 왠지모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곳, 나에게 운현궁은 단지 그런 느낌의 궁이었다. 그러므로 운현궁과 그 밖의 근대 유적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던 내가 나름대로 이번 답사에 중점을 두고 보고 느끼고자 했던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보고 우리의 근대사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마음으로 유적을 보고 그것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답사를 시작했다.
근대사의 산실 운현궁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로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며, 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흥선군 이하응이 왕실집권을 실현시킨 산실이자 집권이후 대원군의 위치에서 왕도정치로의 개혁의지를 단행한 곳이다. 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으로서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였기 때문에 역사적 상징성이 더욱 크다.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 였다.
운현궁의 대표적 건물로는 고종원년(1864) 9월에 준공한 노락당과 노안당 그리고 6년 후에 증축한 이로당이 있고, 지금은 한 개뿐이지만 그 당시 4개였던 대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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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2.22
  • 저작시기2009.11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58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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