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바리데기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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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리데기] 바리데기 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황석영의 문학세계

2. 작품 내용요약

3.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것

4. 관용과 배려의 필요성

5.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의 차용

6. 생명수를 찾아 떠나는 바리공주의 신화

7. 작품에 대한 비판적 접근

8. 결론

본문내용

매한 스탠스에서 외치는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는 울림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90년대 초반 이래, 발 디딜 곳이 물러진 민중문학권의 평론가들이 애타게 부르짖던 ‘국가의 우상, 시장의 우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의 모호함에서 ‘21세기의 생명수’를 말하는 황석영의 그림자를 엿보는 것은 내 상상력이 너무 열린 탓일까?
그러나, 이런저런 트집에도 불구하고, 『바리데기』는 탈북의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세계의 혼란상에 꼼꼼한 우려의 눈길을 건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8. 결론
저자는 인간 치유에 대한 원형적인 이미지를 바리데기 설화 속에서 끄집어낸다. <바리데기>는 바리가 현실 속에서 아득바득 살다가도 꿈에서 우쭐우쭐 설화 따라 맡은 배역에 충실하노라면 어느덧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진다. 현실이나 꿈이나 모두 실재가 아닌 것이다. 실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리의 태도뿐이다. 이것에 대한 저자의 메시지는 책의 후반부에 바리가 이슬람교인 할아버지를 만나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의 가르침의 내용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 개인의 치유를 넘어 민족의 치유, 나아가 인류의 치유에 대한 담론까지 담아내는 것이다. 바리데기 설화는 이러한 치유에 대한 원형을 담고 있으며 비단 이 설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화 속에 이러한 원형의 편린들이 흩어져 있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바로 이것이 세계문단이 한국문학에 바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문단이 각 나라 각 민족의 문학에 바라는 점이다.
설화에서는 바리가 약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린다. 소설에서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일까? 분열과 증오와 죽임의 21세기 지구촌에서 생명의 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숨은 그림 찾기로서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한다. 이 질문에 답해보자. 이윽고 훗날 바리가 고난에 처할 때마다 꿈속에서 길을 알려주는 충직한 개 칠성이와의 만남이 이어진다. 바리와 마찬가지로 일곱 번째로 태어난 강아지는 칠성이란 이름을 갖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저자가 한국의 무속문화에 정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리의 할머니가 죽은 뒤에 항상 바리를 인도하고 지켜주는 보호신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무속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조상신이 곧 하느님이라는 관점이다. 소설 속에서 할머니는 죽은 뒤에 칠성이를 마치 전령처럼 바리에게 보내고 바리가 고난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등 마치 하느님 대리인으로 묘사된다. 칠성은 북두칠성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주재하는 별이다.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뭇 사람들은 숫자 7이 의미하는 원형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바리 또한 그렇게 일곱 번째로 태어나서 훗날 런던으로 건너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삶을 산다. 이것이 해원이며 책의 후반부에서 바리는 딸의 죽음을 통해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과 자신을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내던진 이 세상 모두를 해원시키는 여정을 밟는다.
이 책을 보면서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바리가 무슬림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9.11 테러가 일어나는 부분이었다. 아마 그 부분에서부터였을 것이다. 바리가 우리와 똑같은 세계에서 우리와 같이 무너지는 무역센터를 보고 경악하며 살아가는 현실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 것은. 현실 속에서 9.11 테러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굳이 말한다면 문명의 충돌이란 테제를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구체화시켜준 사건이다. 그 구체화시키는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소설 속에서 9.11 사건을 겪는 순간 주인공 바리는 즉각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현실적인 인물이 되어버린다. 한편으로 소설 속 분위기를 지배하는 무속적인 것들도 동시에 현실적인 테제로 전환되어 버린다. 마냥 미신이나 전통문화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것들이 바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현실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는 보물창고로 변모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느낄 때 문학의 힘을 절절히 깨닫는다. 소설 <바리데기>는 한국 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나는 바리를 모진 상황 속에 내던져진 우리 속에도 있는 사람, 자신이 겪은 아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본다. 한 개인이 노력해서 이겨낼 수 있는 영역을 한참 넘어 문명 단위로 일어나는 거대한 갈등 속에 그녀가 처한 극단적인 상황들은 결국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용서는 또 왜 이리 어렵게만 느껴지는지를 일깨워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실재가 아니며 우리가 실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리가 자신의 아픔은 결국 자신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함으로써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용서할 때의 모습에서 발견된다. 그렇게 바리는 바리 자신으로 남을 수 있었고, 그런 바리의 삶을 읽는 나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을 때, 곳곳에 도사린 유혹들을 뿌리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얻는다. 그 유혹이란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들에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욕구이다.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에게 열린 마음이 될 때, 타인에게도 마음이 열리게 되며 그것이 <바리데기>가 보여주는 생명수, 곧 생명의 길이다. 그 길을 가려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남을 용서하고 떠안고 가야 한다.
그러나 바리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 그녀가 마침내 남편과 상봉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가 사는 런던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바리는 임신한 배를 부여잡고 대피한다.
“내가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으면서 걷다가 돌아보니 알리도 울고 있었다.”
이 문장으로 소설은 끝난다.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언제나 새로운 갈등은 항상 일어나며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유혹을 뿌리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바리의 입을 통해 말한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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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18
  • 저작시기201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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