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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남미]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고대문명,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정복 과정,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정복이 미친 영향,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동질성,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문명사적, 철학적 관점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고대문명
1. 라틴아메리카 고대문명의 시대구분
1) 고(古)인디언시대(B.C.12000 - B.C.7000)
2) 고대시기(B.C.7000 - B.C2500)
3) 고전기 이전시기(B.C.2500 - A.D.300)
4) 고전기(A.D.300- 900)
5) 고전기이후(A.D.900 - 1492)
2. 라틴아메리카 3대 고대문명
1) 아스떼까 문명
2) 마야 문명
3) 잉카 문명

Ⅱ.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정복 과정
1. 스페인령의 아메리카의 정복과정
2. 포르투갈령의 아메리카 정복과정
3. 북부유럽인의 진출과 정착

Ⅲ.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정복이 미친 영향
1. 유럽에 미친 영향
2. 라틴아메리카에 미친 영향

Ⅳ.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동질성
1. 언어적 측면
2. 역사적 측면
3. 그 밖의 측면

Ⅴ.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문명사적, 철학적 관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그로 인한 다양한 혼혈의 문화 그리고 대체적으로 인종에 따라 짜여진 카스트적 계급관계와 수탈구조 또 교회의 막강한 영향력, 이런한 모든 것이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이 땅에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과 이베리아 반도에서 온 유럽인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Ⅳ.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동질성
1. 언어적 측면
불어를 사용하는 아이티, 영어를 Tm는 자메이카 벨리즈 카리브의 소규모 도서 국가, 그리 고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수리남을 제외하면 인구로 보아 거의 95% 이상의 라틴아메리카 인들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브라질이 사용하고 있는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서로간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2. 역사적 측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는 대부분의 지역에 아시아에서 건너온 몽골계통의 원주민 문명이 존재했으며, 신대륙 발견 이후에는 모두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약 300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또 각 국의 독립도 쿠바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1810년에서 1825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독립 이후의 역사과정도 놀랄 만큼 유사하다.
3. 그 밖의 측면
대통령 중심제를 취하고 있는 정치적 구조
카톨릭 신봉의 종교적 측면
Ⅴ. 중남미(라틴아메리카)의 문명사적, 철학적 관점
모든 문명은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각각 나름대로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은 이웃간이지만 서구문명 중에서는 극과 극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남미대륙의 대서양 연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의 핵심은 인디언이다. 이는 비유럽, 비서구라는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서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독창적인 문명이 이미 거기 있었다.
둘째는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한 스페인은 카톨릭국가일 뿐 아니라, 십자군전쟁을 경험하고 16세기까지 이슬람과 싸운 국가이다.
16, 17세기 동안 스페인은 반동 종교개혁신앙의 수호자였다. 이 종교적 이념이 스페인 문화와 식민 당시 정책의 중심이었으며, 라틴아메리카가 물려받은 유산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는 반근대유럽(anti-modern Europe)의 반영이다. 근대화의 부정으로부터 출현한 것이다. 미국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면서 출현되었다. 미국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덧없는 것인 시간 위에 세워진 미래의 나라이다. 사실 그것은 근대성의 완전한 표현이다. 미국의 유산은 첫째로는 종교개혁으로부터 오며, 둘째로는 계몽사상에서 온다. 미국은 근대 유럽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태어난 것이다. 서로 다른 유산으로부터 서로 다른 시간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새로운 출발로 시작되었다. 미국은 구세계의 구질서와 전통적 가치를 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러화에 씌어 있듯이 \'시대의 새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뿌리가 없는 나라이다. 아니면 미국의 뿌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역사와 전통이 그들의 존재의 중심이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공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어떻게 과거가 현존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과거가 작가와 화가들의 주제가 되었고, 지성인들의 집념의 대상이 되었다. 꼬르떼스(Cort s)가 아직 살아 있고, 그에게 패배당하고 죽임을 당한 아즈텍(Aztec)의 왕 과우떼목(Cuauht moc)은 살아 있다. 그리고 꼬르떼스편 사람들과 과우떼목편 사람들 간의 싸움이 아직도 계속된다. 멕시코의 치아빠스 내전이 그 예이다.
정복자, 식민자로서의 스페인 카톨릭과 북미 프로테스탄트는 매우 상이한 현실을 창출했다.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들 사이에 토착민을 포용하는 그러한 토착민과의 관계를 세우려 노력했다. 라틴아메리카인들과 스페인,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인디언들의 노동자원을 정복하고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미국의 태도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토착민은 새로이 건설되는 문명의 밖에 남아 있었다. 미국인들도 토착민을 포용할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토착민들의 과거는 아메리카 미래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통합을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분리를 생각했다. 이 분리의 아이디어는 미국역사에 일관성 있게 나타났고 이는 미국인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미래를 향한 달음박질 도중에 만나게 되는 역사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고립했다. 미국은 항상 외교정책에서도 순수, 고립의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그것은 미국사람들의 심리에 매우 깊게 뿌리박힌 중요한 흐름이다. 세계의 한쪽은 마비되는데 다른 쪽에서는 역사의 가속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역사와 생을 시간의 속도를 통해서만 보려는 현대인의 오만이다. 시간에서 가속이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매우 서서히 발전하는 확립된 사회는 현대세계가 가지고 있는 변화에 대한 미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들이 변화의 우상을 갖고 있는 사회보다 더 잘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다. 원시사회는 수천년을 견뎠지만, 발전된 사회는 2, 3세기 후에는 폭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에는 모호한 경향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혁명도 두 가지 경향을 갖고 있었다. 승자들에 의해 지지되었던 국가를 개혁하고 근대화하려는 경향이 수천년의 안정을 수호하려는 봉기(millenarist revolt) 사빠타와 나란히 존재했다. 그는 근대화로의 진행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이상적 농업사회의 사회적 평등과 자유라는 신화적 과거로 돌아가려 했다. 개인의 자유와 이성만이 가치로 인정되는 서구전통의 눈에는 라틴아메리카는 모순일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김원호·이미숙(2002), 남미가 확 보인다, 학민사
곽재성·우석균, 라틴아메리카를 찾아서
김지희, 하늘을 마주하고 잉카문명 위에 서다, 즐거운 상상
송기도강준만(1996),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 중남미의 재발견, 개마고원
이성형(1999),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서울 까치글방
임상래 외(1989), 중남미 사회와 문화, PUFS
우덕룡, 라틴아메리카 마야·잉카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문화, 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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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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