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기원에 관한 제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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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대문자
2. 전자란
- 고전 기원설
3. 아소카왕 비문의 한글
- 몽고문자 기원설(파스파 문자)
- 산스크리트어(범어) 기원설
4. 가림토 문자 기원설
5. 기타 기원설

Ⅲ. 결론

본문내용

한글의 홀소리 글자는 범자의 계열에서 나온것이므로 그 유사한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고함이 진실된 답변이 아닐까라고 최현배 선생님은 결론을 내렸다.
2.5. 가림토 문자 기원설
가림토의 연대는 제 3세 단군 가륵(嘉勒)2년으로 높혀졌으며, 창안자는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으로 글자 3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글의 홀소리
범자의 홀소리
a I u o
ㅏ ㅣ ㅜ ㅗ
a I u o

이암(李癌:1363)은 고려시대 사람으로 그의 저서 『단군 세기(檀君世紀)』에서 단군 시대에 한글과 같은 글자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조 연산군때 이 맥(李陌:1455-1528)은
『태백일사(太白逸史)』를 편찬했는데 그가 괴산에 유배 중에 그곳 노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던 책이다. 이 책에서 고대문자인 가림다문(加臨多文)이란 글자를 제시하고 있다. 이 맥(李陌)은 이 책에서 환웅천황이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서계(書契)를 만들게 했는데, 서계란 나무에 홈을 파서 숫자를 표시하고, 그 홈에 닭털을 넣어 놓으면 닭의 숫자를 나타내는 식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또한 신지는 문자를 만들어 가르쳤던 것이 곧 하늘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발해국 대야발(大野勃)이 지은 『단기고사(檀奇古史:1949)』에도 단재 가륵 2년 봄에 박사 을보륵에게 국문정운을 정선하다(白岳馬韓村에 古碑文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이관수(홍대논총ⅩⅥP383)는 이암이 쓴 『단군 세기』에는 한글이 자형이 없었고 후세에 가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연수(桂延壽:1911)는 『삼성기전』 상편 및 하편, 『단군 세기』, 『북부여기』 상하, 『태백일사』 등 5편을 합쳐서 『환단고기(桓壇古記)』란 책으로 묶었다. 여기서 그는 고대시대에 한글과 같은 글자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가림토 문자를 보면 한글과 거의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모음글자가 11개, 자음글자가 27개로 모두 38개 자모로 되어있다. 숫자표시는 고대 중국의 갑골문 등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보이며, 자모 등은 『신지비사』에서 ‘ㄹ’자 등이 같은 음가인지는 모르지만 모양은 거의 꼭같다.
하지만 현재 『환단고기』는 위서(僞書)의 논쟁이 심하다. 그 이유는 현대에서 사용하는 ‘사학, 경제’같은 용어가 당시에도 과연 쓰였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한편 조철수(曺喆銖) 박사는 단군 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가림토 문자」가 중국 유태인이 사용한 히브리 문자를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조박사는 “가림토 문자가 기록된 단군 세기는 고려말에 편찬된 책이다. 고려말은 원나라의 지배아래 민족주의가 발흥하던 시기였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에 관한 책을 만들면서 고유문자의 필요성을 느껴 당시 유태인이 쓰던 히브리문자를 차용해 만든 가림토 문자를 도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가림토 문자를 모방한 훈민정음이 히브리문자와 비슷한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또 그는 단군과 무관한 히브리문자가 우리말에 차용될만한 근거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송(宋),원(元),명(明) 대의 유태교인 청진교(淸眞敎)는 경천숭조(敬天崇祖)사상을 숭상하는 도래(渡來:11-15세기)유태인의 종교 중심지였으며, 그들은 한문이외에 히브리자모 문자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청진교의 경천숭조사상은 중원(中原)을 방문한 고려의 태백교도(太白敎徒)를 동질 감으로 결속시켰으며, 청진교도와 태백교도는 교분을 쌓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결론적으로 종교와 문화가 우리와 유사하여 이러한 점 때문에 히브리문자를 받아들이는 데 별로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라고 조박사는 언급했다.
2.6. 기타 기원설
당대 조선의 학문이 불교에 국한되었다는 것과 거란이나 여진이 한글의 모태가 될 수는 없었을 거라는 근거를 들어 서장문자 기원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며, 이런 주장들은 주로 서양사람의 배달말 연구자 중에 많이 있다. 또인도의 팔리 문자 기원설이 있으며 한글이 동양 철학이 기존에 있던 태극음양의 이치에서 비롯되어 제정되었음을 풀이하는 것으로 太極思想 기원설등이 있고 조선의 전통 가옥의 창문을 본떠 만들었다는 창문성형 기원설, 거란여진 글자 기원설, 악리 기원설, 한글의 수가 28인 점을 미루어 잡은 28별자리 기원설, 설총 창작설, 요의 창작설, 시리아 글자에서 왔다는 설, 절 기호에서 왔다는 설...., 앞서 언급한 기원설은 다른 어떤 글자를 모방했다는 것에 비해 우리의 발음기관 즉 입술, 혀, 이 목을 본떴다는 것과 그 생김새나 작용을 본떴다는 발음기관 상형 기원설 등이 있다. 그러나 신빙성이 있는 학설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Ⅲ. 결론
언어는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그 민족혼을 지닌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우리의 한글이 창제 이후 522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계통적 확인조차 확실히 하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학문적 소용의 문제가 아닌 민족의 전통과 계통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아닌가 한다.
언어는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이루어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현재의 언어도 그 완결이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문화, 사회, 여타의 문명적인 것들을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꿰뚫고 있는 것이 언어라는 점을 살펴 볼때 이는 곧 언어의 과거, 그 가장 기초가 되는 계통, 한 가정으로 본다면 족보를, 그 조상을 찾는 일의 중요함이란 궂이 말 하지 않아도 당연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것들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미 늦었다는지 틀렸다는 이야기 보다는 현재에 있고 미래로 움직이고 있는 연결선상에서 더 늦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껏 정설이랄수 있는 학설이 없는게 국어 연구의 실정이라 할 때 성급한 단정 보다는 열린 사고로, 다양한 방면의 연구가 필요하리라 본다. 끝으로 이를 계기로 ‘언어’에 대해 개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박기용 『말』(1997) , 규장각
조두상 『문자학』(1998) , 부산대 출판부
최현배 『고친 한글갈 개정판 정음학』 (1937) , 서울 정음사
김승일 『세계의 문자』(1997) , 범우사
서병국 『신강 훈민정음』(1980) , 문학사
박종국 『국어학사』(1994) , 문지사

키워드

한글,   기원,   비교,   신대문자,   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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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6.10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8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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