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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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1. 『돈키호테』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2. 재미와 교훈

3. 총체성에 대한 열망

4. 놀이로서 소설

5. 상대적 관점

6. 돈키호테와 자유

본문내용

의 결과이다. 또한 저 유명한 세르반테스의 부주의, 즉 산초 판사의 아내 이름을 후아나 구띠에레스, 마리 구띠에레스, 후아나 빤사, 떼레사 빤사, 떼레사 까스까호 등 경우에 따라 아무렇게나 부른 것까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상대적 관점은 수많은 보통명사의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적 증거는 세르반테스가 종종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다양한 방언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실례가 음식인데, "그 생선은 까스띠야에서는 '명태'라고 하고, 안달루시아에서는 '대구', 어떤 지방에서는 '노가리'라고 부르고, 또 어느 곳에서는 '북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I, 2) 마른 대구를 지칭하는 이러한 명칭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동일한 현실에 접근하려는 수많은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로써 비전은 한결 완벽해지는데, 왜냐하면 현실은 비록 동일하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상이하게 지각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돈키호테가 "네 눈에는 이발사의 대야로 보이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맘브리노의 투구로 보인다.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르게 보이겠지"라고 말한 물건을 가운데 두고 빚어진 논쟁을 중립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산초가 지어낸 기발한 신조어 "대야 투구"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이다. 또한 여기서는 인간 존재의 모든 표현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유명한 이해심도 드러난다. 이로써 세르반테스는 근대 소설의 창조에서 기본적인 표명 가운데 하나에 기여한다.
6. 돈키호테와 자유
세르반테스가 작가로서 주장한 자유는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게도 주어진다.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사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첫 번째 등장인물이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예술가와 등장인물의 자유가 선언된다. 세르반테스는 이미 서문에서 작가의 자존심을 얘기하며, 등장인물 돈키호테는 1장 첫 문단부터 자유롭게 태어난다. 끝으로 작가가 펜에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한번도 쓰여진 적이 없는 문학적 재능에 대한 자신감이다. 그리고 돈키호테는 죽어 땅에 묻히며, 다시는 아베야네다 같은 사람이 위작을 쓰지 말도록 권고한다.
『돈키호테』의 첫 부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 마을 이름은 말하고 싶지 않다 시골 양반이 살고 있었다."(I, 1) 이런 허두부터 이미 세르반테스 소설의 시공간 좌표는 기사 로망스와 차별된다. 그리고 전개되는 사건은 편력기사 얘기처럼 마리까스따냐의 시간에서, 고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전에 시작되며, 사제 후안 델라스 인디아스의 땅에서, 먼 나라가 아니라 이곳에서 가까운 만차에서 시작된다.
만차 지방의 마을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매우 자유로운 작가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모든 설명이 타당하며, 상보적이기도 하다. "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라는 구절은 사실 작자 미상의 로만세에서 따온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고향 마을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만차 지방의 모든 마을을 아우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 자신의 말처럼 "만차 지방의 모든 마을이, 그리스의 일곱 도시가 저마다 호머를 자기네 고장 사람이라고 했듯이, 그를 배출하고 또한 묻었다는 영광을 차지하려고 다투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II, 74) 또한 이 구절은 기사 로망스의 장중한 출발보다는 민담에서 흔히 보이는 소박한 시작과도 유사하다. 세르반테스가 만차 지방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 마을에서 구금 생활을 하면서 『돈키호테』를 집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도 한다.
이러한 설명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마을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라는 구절의 문학적 효과는 훨씬 광범위하다. 레오 슈피처(Leo Spitzer)와 아바예-아르세는 이 구절에서 저자와 등장인물의 자유를 최대한 방어하려는 기호를 보았으며, 이를 문학사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세르반테스 이전의 문학은 몇 가지 엄격한 관례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모델에서 등장인물의 출신 성분은 미래의 운명을 결정했다. 아마디스는 가울라 지방에서 출생했고, 왕족의 자손이었으며, 나중에는 영웅이 되었다. 반면에 라사리요는 또르메스 지방에서 출생했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아들이었으며, 성장해서는 반영웅(反英雄)이 된다. 운명은 출신 성분에 지배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세르반테스는 등장인물의 출생 사항을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등장인물이 결정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이 시골 양반의 가계(家系)나 정확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의붓아버지일 뿐"이라는 말은 타당한데, 왜냐하면 돈키호테 스스로가 돈키호테의 진정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환상을 쫓는 등장인물은 자신의 이름을(돈키호테) 만들어내고, 말에 이름을(로시난떼) 붙이며, 무기를 만들고, 둘씨네아라는 인물을 상상하며, 기사도적 환영에(풍차를 거인으로, 여관을 성으로, 창녀를 공주로, 양떼를 군대로 인식하는 것) 적합한 현실을 창조한다. 그것도, 아래 돈키호테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완전한 의식과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행동한다.
나 자신이 둘씨네아 아가씨를 세상의 가장 위대한 공주님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일세. [...]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과장인 아닌 진실이라고 믿네 [...] 로마의 여성들도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지위를 가졌다고, 나는 바라는 대로 상상으로 그려본다네.(I, 25) [왜냐하면] 둘씨네아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않는지, 환상인지 아닌지는 하느님만이 아시지. 이러한 문제는 아무리 천착해보아야 끝장을 볼 수 없는 문제이지.
돈키호테 이후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한결 자유로워졌다. 왜냐하면, 멕시코의 소설가 푸엔떼스(Carlos Fuentes)의 말처럼, 세르반테스는 아마디스를 라사리요와 대화하게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에 대한 일원적이고 통합적인 해석은 영원히 소멸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돈키호테 이후, 또르메스의 땅에서 태어난 인물들도 영웅이 될 수 있고, 가울라에서 태어난 사람도 왕실 궁전에서 자란 반영웅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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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6.20
  • 저작시기2003.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20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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