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독교 강요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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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서]기독교 강요로의 초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칼빈의 생애와 사상

2. <기독교 강요>의 해설

3. <기독교 강요>에 대한 강의

본문내용

주는 교리이다. 칼빈의 예정론은 이중예정론이다.
첫째, 예정의 근원은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어떤 사람은 멸망을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예정의 뿌리요, 근원이며, 거울이고 우리 예정을 생명책에 기록하신 분이다. 둘째, 예정의 이유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엡 1:4). 또한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신 4, 7, 10장). 셋째 예정의 목적은 백성을 세상에서 흠없이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악에 대해서 하나님의 예정으로 주장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배반하는 신앙이며 잘못된 신앙이다. 넷째, 예정에 대한 확신은 믿음으로 가능하다. 칼빈은 예정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였다(기독교강요 3, 24,1). 마지막으로 예정의 중요성은 구원의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구원파가 갖는 오류가 있으며, 예정 교리와 다른 가르침이다. 구원의 확신은 경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다.
10. 최후 부활 (26강) 칼빈의 종말론은 <기독교강요> 4권 마지막이 아닌 3권 마지막에서 진술한다. 종말론은 ‘마지막 일들에 관한 가르침’이다. 신자는 종말을 믿기 때문에, 종말론적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신자의 궁극적인 소망. 칼빈은 신자의 궁극적인 소망은 영원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했다(기독교강요 3, 25, 6). 신자의 삶은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부활이 희망의 근거가 되며,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 어떤 희망이다. 에른스트 블로는 <희망의 원리>에서 희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어떤 무엇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희망은 롬 4;18의 제시로 아브라함의 희망이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불가능한 것을 믿었다.
주님의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주의 일에 힘을 쓴다. 기도를 심고, 말씀을 심고, 물질을 심어 부흥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소망이 있다. 소망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다.
4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공동체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그 안에 있게하시려는 외적인 수단들 혹은 목적들. (De Externis Mediis vel adminiculis quibus Deus in Christi societatem nos invitat, et in ea retinet 교회/ 성령의 외적사역)
1. 교 회 (27강) 교회란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동체(society of Christ) 혹은 그리스도와 교제(fellowship with Christ)이다. 신자는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에 연합되어 있는 지체이다. 교부 키푸이야누스는 <교회의 일치>라는 책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 nulla sallus)고 말했다.
첫째, 교회가 왜 필요한가? 교회는 인간이 필요해서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설립했다. 교회를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희망을 얻고 힘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였다. 둘째,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다. 셋째, 칼빈에 의한 교회의 기능은 어머니로서의 교회이다. 넷째, 교회의 종류,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 다섯째 교회의 표지는 말씀을 올바른 선포, 성례의 바른 집행, 권징이 있는 교회이다. 여섯째, 성경이 제시하는 성례는 천주교의 7성례를 거부하고 세례와 성찬 두 가지로 주장했다.
2. 세 례 (28강) 성례에는 세례와 성찬이 있다. 성례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외형적인 표로 확인하는 증거인 동시에 우리의 변함없는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 4, 14, 1).
신자는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세례는 물의 효능이나 능력이 아니라, 세례를 주라하신 하나님의 말씀, 야속의 말씀 때문에 효력이 있다. 어거스틴은 성례에서 사용하는 물질에 말씀을 첨가하면 성물이 된다고 외쳤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기 때문에 세례가 효력이 있다. 말씀의 약속이 없는 성례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첫째, 칼빈에 의하면 세례를 통해서 교회의 정식 성도가 된다. 둘째, 세례가 구원을 주거나 죄사함을 주는 것은 아니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됨의 증표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외적인 표징이다.
3. 성 찬 (29강)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게 된다. 성찬은 떡과 포도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참된 영적인 교제의 표시이다. 성찬은 불멸의 약으로 생각했으며, 칼빈은 피로 맺은 언약으로 보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첫째,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찢기시고 피흘려 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바았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기억하며,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것이 성찬임을 먹고 마실 때마다 기억하는 것이다. 둘재, 성찬은 그리스도의 연합을 깊이 체험하게 한다. 셋째, 성찬은 사랑의 유대이다.
4. 교회와 국가 (30강)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기독교강요의 마지막 부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하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상의 통치를 받고 살아야 한다. 즉 신자는 이중통치를 받고 살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첫째, 국민은 통치자에게 순종해야 하고 통치자는 국민에게 의무가 있음을 칼빈은 굉장히 강조한다.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여했다. 칼빈은 반대로 블란서의 박해와 살육에서 정권의 타도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칼빈은 시민 불복종을 제시하여, 제한적이긴 하지만 정권에 저항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즉 비폭력적인 시위로 불의한 정권에 맞서 항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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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08
  • 저작시기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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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4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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