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문화란 무엇인가?
1) 문화와 문화분석
(1) 문화
(2) 스튜어트 홀의 문화분석
2) 분석의 틀
2. “얼짱현상”에 대한 분석
1) “얼짱”이란 무엇인가?
2) “얼짱현상”에 대한 분석
(1) 어떻게 재현되는가?
(2) 어떤 사회적 정치성이 부가되는가?
(3)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가?
(4) 어떤 기재가 그 분배와 사용을 규제하는가?
3. “얼짱현상”에 대한 전망
1) 문화와 문화분석
(1) 문화
(2) 스튜어트 홀의 문화분석
2) 분석의 틀
2. “얼짱현상”에 대한 분석
1) “얼짱”이란 무엇인가?
2) “얼짱현상”에 대한 분석
(1) 어떻게 재현되는가?
(2) 어떤 사회적 정치성이 부가되는가?
(3)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가?
(4) 어떤 기재가 그 분배와 사용을 규제하는가?
3. “얼짱현상”에 대한 전망
본문내용
면 창조의식이란 ‘나’라는 존재가 그 원래 존재성 자체로 존귀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전세계 인구가 약 60억이지만 개개인은 각각 둘도 없는 존재요, 긍정적인 의미로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존귀한 존재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은 너무나 값이 귀해 그 작품을 표현할 때 ‘값이 없는(priceless)' 작품이라고 말한다. 너무 값지니까 값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값으로 매길 수 없이 귀중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무한한 가치는 <모나리자> 작품 정도가 아니다. 도저히 매길 수 없는 가치와 생명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인생은 이렇게 엄청난 자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 채 돈과 성공, 인기와 명예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쉽게 내팽개쳐버리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외면적인 가치가 아닌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 인격 존중의 의식과 문화로 회복되어야 한다.(인터넷한겨레, 2003. 12. 2)
‘얼짱 현상’이 주로 10대 초반의 네티즌들에게서 발생되었다는 점에서 주변에 있는 16살 여중생에게 얼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요즘은 얼짱 얘기 안해요.” 어쩌면 그렇게 한동안 인터넷을 강타하던 얼짱에 대하여 간단히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것이 또한 10대들의 강점인지도 모르겠다. 문화를 지배하는 하나의 중심이 있고 대중은 이를 따라가던 사회는 지나가고 인터넷 문화의 발달과 함께 네티즌들의 의식은 이제 스스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으로 ‘얼짱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적 문화의 생산자이며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있어 우려되는 점은 기성문화의 가치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는 것이며, 너무도 쉽게 상업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로 유입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얼짱 현상’을 주도해왔던 10대들은 이제 ‘얼짱’을 시시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그들은 또다른 ‘현상’들을 만들어 내고 열광하고 그리곤 이내 시시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또다른 ‘현상’들을 만들어 내고 열광하고 곧 또다른 것으로 관심을 옮겨가는 그 모든 기저에 작용하고 있는 가치체계들은 여전히 하나의 맥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즉, 보여지는 시각적인 것, 외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만 존재한다. ‘안티 얼짱’이 대변해 주는 그 작은 희망의 목소리들은 대중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또 다른 네티즌들의 목소리이며 외모 지상주의적 가치체계에 대한 비평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안티 얼짱’에 걸 수 있는 희망의 근거는 그들은 이제 결코 대중을 따라가거나 다수의 힘에 눌려 소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진술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졌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얼짱’들만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주체성을 자각한 신세대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짱 현상’이 주로 10대 초반의 네티즌들에게서 발생되었다는 점에서 주변에 있는 16살 여중생에게 얼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요즘은 얼짱 얘기 안해요.” 어쩌면 그렇게 한동안 인터넷을 강타하던 얼짱에 대하여 간단히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것이 또한 10대들의 강점인지도 모르겠다. 문화를 지배하는 하나의 중심이 있고 대중은 이를 따라가던 사회는 지나가고 인터넷 문화의 발달과 함께 네티즌들의 의식은 이제 스스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으로 ‘얼짱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적 문화의 생산자이며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있어 우려되는 점은 기성문화의 가치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는 것이며, 너무도 쉽게 상업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로 유입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얼짱 현상’을 주도해왔던 10대들은 이제 ‘얼짱’을 시시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그들은 또다른 ‘현상’들을 만들어 내고 열광하고 그리곤 이내 시시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또다른 ‘현상’들을 만들어 내고 열광하고 곧 또다른 것으로 관심을 옮겨가는 그 모든 기저에 작용하고 있는 가치체계들은 여전히 하나의 맥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즉, 보여지는 시각적인 것, 외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만 존재한다. ‘안티 얼짱’이 대변해 주는 그 작은 희망의 목소리들은 대중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또 다른 네티즌들의 목소리이며 외모 지상주의적 가치체계에 대한 비평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안티 얼짱’에 걸 수 있는 희망의 근거는 그들은 이제 결코 대중을 따라가거나 다수의 힘에 눌려 소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진술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졌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얼짱’들만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주체성을 자각한 신세대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