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와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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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팝아트와 페미니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3

Ⅱ. 팝아트 속의 가부장적 시선..................................4

Ⅲ. 페미니즘의 팝아트 수용.....................................7

 1) 키치적 요소의 수용........................................7
 
 2) 일상적 오브제 ............................................7

 3) 민속예술적 측면..........................................8
 
 4) 대중매체 이미지..........................................8

Ⅳ. 나오는 말 ...............................................10

본문내용

스트인 동시에 민속 미술가(Folk Artist)로도 불리는데, 이는 아마도 베네수엘라 태생이라는 영향과 그 곳에서 흔했던 인디오들의 목각 공예품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는 목각 공예품이나 아프리카의 신상들처럼 주로 나무를 깎거나 원시적인 형태 그대로를 사용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1994년 작 <조지의 여름(George Summer)>(도판30)이나 <장례식(The Funeral)>(도판31, 1995), <염소와 함께 있는 쿠바인들과 아이들(Cuban and Children with goat)>(도판32, 1995)과 같은 작품들은 마리솔이 예술에 있어서의 백인 남성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4) 대중매체 이미지
대중 잡지와 대중문화의 가정에의 빠른 침투 현상은 서구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으로써 존 해밀턴은 이들을 통해 유입되는 광고의 역할에 대해 간파하고 있었다. 1950년대 미국의 삶의 질의 수준은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많은 미국인들은 경제 공항 시대의 내핍 생활은 과거지사가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으며,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양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전례없는 부요한 시기임을 강조하며 1958년에 ‘풍요한 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현상과 함께 『라이프 지(Life)』나 『타임(Time)』과 같은 대중잡지, 영화와 텔레비전, 팝 음악과 록큰롤, 자동차와 가정용 전기 기구들을 소비하는 미국인 수는 점차로 늘어났다.
그는 광고가 당대의 사람들의 의상 취향이나 스타일을 결정짓고 문화적인 기준의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 자신의 포스터에 대중잡지에서 오려낸 광고들을 콜라주 시켰다.(도판33, 1956) 에두아르도 파올로치도 역시 <나는 부유한 남자의 노리개였다(I was a Rich Man's Plaything)>(도판34, 1947)에서 코카콜라 등과 같은 대중 상품에 대한 잡지의 광고를 차용하고 있다. 이러한 팝아트에서의 광고의 적극적인 차용은 페미니즘 작가들에게 자신들의 작업에 대중의 이목을 끄는 적당하고 유용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실제로 1967년과 68년 사이의 『코데 나스트(conde Nast Publication)』와 1968년 『마드무아젤(Mademoiselle』에서 광고와 사진 편집을 담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련의 광고게시판을 제작한다. 그 중 1981년 초에 전시된 <이미지의 약속: 광고, 슬로건, 그리고 중재의 전시(Pictures and Promises : A Display of Advertising Slogans, and Intervention)>(도판35, 1981)는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 시계의 광고, 미술작품, 텔레비전 상업광고, 회사로고, 공공표지 등에서 차용된 이미지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녀가 자신의 작업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팝아트에서의 대중매체 이미지 수용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희진, 「바바라 크루거 작품에 나타난 정치성」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3, p. 26.
1990년대 크루거의 <너는 너 자신이 아니다(You are not yourself)>(도판36, 1982), <우리는 움직이지 않도록 명령받았다(We have received orders not to move)>(도판37, 1982)등의 작품은 여성의 전형성, 즉 스테레오타입을 이미지화하고 고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강요되고 있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써의 재고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버스 정류소나 대형빌딩의 광고판 나아가 쇼핑백이나 티셔츠 등에까지 제작함으로써, 흔히 남성적 권위의 상징으로 비난받아오던 제도권 미술관을 뛰쳐나옴으로써, 팝아트가 예술 속에 일상성을 끌어 들였다면, 그녀는 자신의 예술을 일상 속으로 끌어냄으로써 페미니즘 미술을 운동차원에서 전개시켜 나아갔다.
4. 나오는 말
1960년대 당시 서구 미술계를 지배하던 추상 예술은 고대 희랍인들이 예찬해 마지않던 인간 이성의 발현으로서의 예술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린버그의 형식미학은 결국 인간의 이성이 추구하는 형식에 대한 집착이었으며, 이는 결국 예술에 있어서의 구상성을 배척하는 경향의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이성적, 합리적, 엘리트적인 것 등을 남성적 영역으로, 그리고 감성적, 신체적, 그리고 비합리적인 것을 여성적 특징으로 매김질하는 이중적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으며, 예술이 결국 대중을 외면하고 또 한편으로는 예술을 자신이 속한 사회 현상에서부터 유리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팝아트는 이러한 극단적 추상에의 도전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재현해내고자 하는 사실주의의 속성을 부활시킨다고 볼 수 있다. 팝아트가 수용하고 또 추구하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며, 또한 그의 반영이었다. 이것은 결국 흔히 예술의 영역에서 도외시 되어오던 소재나 기법들의 수용이었으며, 예술가로부터 소외된 사회 제 현상에 대한 재고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비록 팝아트가 성의 상품화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도 하에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남성의 가부장적 시선 아래 가둠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의 분노를 야기 시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팝아트의 키치적, 일상적 오브제의 수용과 민속예술의 계승, 대중매체 이미지 등은 여성이 처한 현실을 여과 없이 반영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으로도 이해될 수 있었다. 이는 팝아트가 ‘예술만을 위한 예술’의 종말을 선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예술 형태 중 하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페미니즘 미술이 팝아트의 이러한 사실주의적 속성을 취하는 것은 결국 소외된 여성에 대한 자각으로써, 그리고 한편으로는 백인남성중심의 이성적 세계관의 허구를 직시하는 방편으로써 수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페미니즘 미술이, 여성이 처한 현실을 여과 없이 반영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을 팝아트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극히 긍정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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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9.18
  • 저작시기2012.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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