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르껭의 사상적 배경과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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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뒤르껭의 사상적 배경과 기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시대적 배경

Ⅲ. 뒤르껭의 생애
(1) 출생과 학창시절
(2) 사회학자로서의 활동
(3) 실천하는 지식으로서의 활동

Ⅳ. 맺음말

#1. 생각해볼 문제
#2. 참고문헌

본문내용

교육부분의 요직에 천거했다. 따라서 위의 사실들을 볼 때 당시 프랑스 교육체제의 변화를 지켜보던 이가 “뒤르껭은 소르본느의 섭정자였고, 최고의 권력을 지닌 주인”이라고 한 말이 그리 과장된 것이 아닐 정도로 뒤르껭이 프랑스 교육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7)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의 아들 앙드레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전선에 투입되자 뒤르껭 자신도 전쟁에 대한 연구와 기록들을 간행하는 위원회의 비서로서 활동한다.68)
그리고 이 때 범독일주의에 대항하는 『누가 전쟁을 요구하는가?』와 『모든 것 위에 있는 독일』과 같은 책자를 저술한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뒤르켕은 독일식 이름을 가진 유태인으로서 비난을 당하기도 하고69)
또한 국수주의자로부터는 독일 태생의 학자가 틀림없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70)
뒤르껭은 1915년 크리스마스 직전 사회학적 언어학자로서 뛰어났던 그의 아들 앙드레(Andre')가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1916년 말에는 발작을 일으키기고 했다. 결국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던 뒤르껭은 1917년 11월 15일 59세로 생을 마감한다.71)
Ⅳ. 맺음말
뒤르껭은 자유주의, 보수주의,72)
사회주의의 흐름에 프랑스 국내를 극단적으로 양분시키는 반유대주의가 혼재하는 혼란기에 사회학을 대학에서 강의되는 당당한 학문으로 정립하기위해 노력했다. 이것은 그의 뛰어난 어학 실력은 물론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적 성과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분명 그 혼자 이루어낸 성과는 아니었다. 『사회학연보』를 중심으로 그와 뜻을 같이 하던 일군의 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를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도록 후원한 루이 리아르가 있었기에 그의 의지가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상아탑에 갇힌 학자에서 머물지 않고 그 시대의 다양한 사건에 참여하는 지성인이었으며 당시 시대의 흐름을 가른 어느 편에도 완전히 치우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비록 드레퓌스 지지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한 그의 이력으로 인해 그가 인해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이 되지 못하고,73)
또 프랑스 국내에서 강렬하게 기승을 부리던 반유대주의로부터 계속해서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회과학은 엄격하고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 이외에도 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관여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을74)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즉 지식인으로서 그가 보여준 실천적 자세는 이론과 현실, 지식과 실천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만인에게 증명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서는 그가 개인의 인권과 존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사회의 질서나 통합을 강조해온 보수주의에 당당히 맞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그가 카톨릭적이고 현학적인 교육내용을 시민도덕과 과학적인 교육으로 대체하면서 동시에 하층민의 자녀들이 큰 부담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등 당시 프랑스 교육체계의 혁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당시 열풍을 일으키고 있던 연대주의나 사회주의가 완전한 사회구제책이 될 수 없다고 여긴 뒤르껭은 어느 한 쪽의 주장이나 입장에 치우치지 않게 신중히 행동하였고, 전시에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
결국 위의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지식인으로서의 뒤르껭은 단지 사회적 분위기나 흐름에 맞춰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거수기’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매 사안에 대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직면했던 문제들이 모두 단일한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차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제껏 설명한 뒤르껭 생존시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생애가 그가 전개하고 지향해간 사상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끝마치려 한다.
#1. 생각해볼 문제
하나. 뒤르껭은 맑스, 베버와 함께 사회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 이론가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르껭에 대한 이해나 비중이 맑스나 베버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그에 관한 평가가 교육학자 또는 보수주의적 고전 이론가로 편향되어 있는 것에 대해 논의해보자.
둘. 사상가로서의 맑스와 베버의 사회사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독자적인 사상가로서의 뒤르껭의 사상이 가지는 의의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2. 참고문헌
단 행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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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켐. 김충선 譯. 『자살론』. 서울: 청아출판사, 1994.
에밀 뒤르케임. 노치준민예숙 譯.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서울: 민영사, 1992.
A. 기든스. 임영일박노영 譯.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서울: 한길사, 1981.
A. 기든스. 김의순김자혜 譯. 『에일 뒤르껭 연구』. 서울: 한길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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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몽 아롱. 이종수 譯. 『사회사상의 흐름』. 서울: 홍성사, 1986.
앨런 스윈지우드. 박성수 譯. 『사회사상사』. 서울: 문예출판사, 1987.
조나단 터너 외. 김문조 외 譯. 『사회학이론의 형성』. 서울: 일신사, 1997.
니콜라스S. 티마셰프조지A. 테오도슨. 박채묵이정옥 譯. 『사회학사』. 서울: 풀빛, 1 985.
앙드레 모로아. 신용석 譯. 『프랑스사』. 서울: 기린원, 1991.
R. 니스벳/C.B. 맥퍼슨, 강정인김상우 譯. 『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7.
해롤드 J. 라스키. 김영국 譯. 『국가란 무엇인가』. 서울: 두레, 1983.
김학준 편저. 『라스키 - 현대국가에 있어서의 자유』.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87.
육영수, “19세기 말 유럽과 나: 변화, 지속, 그리고 반복,” 『열린지성』, 제8호 (2000 가 을겨울호), pp. 15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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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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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79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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