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공교육훈련체계 및 정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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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파르타의 공교육훈련체계 및 정치제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스파르타의 공교육훈련체계
1. 서론
- 스파르타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
2. 본론
- 스파르타의 교육제도
- 소년들의 훈련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 소녀들의 훈련
3. 결론

스파르타의 정치제도
1. '군사적 귀족정치' 단어의 뜻
2. 배경
(1) 군사정치의 배경
(2) 귀족정치의 배경
3. 특징

-Reference

본문내용


이상으로, 스파르타 교육에 대한 훈련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소년들은 국가의 체계 안에서 국가를 지키는 강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었고, 소녀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소녀들도 소년들만큼의 그런 체계 속에서 훈련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폴리스 국가들과는 다르게 여성의 강함을 추구하였다.
소년들은 강한 병사를 양성하려는 육체단련, 군사교육에서도 어떠한 고통스러운 싸움터의 생활에서도 이겨낼 수 있도록 평소에도 엄격한 생활이 시행되었다. 그 때문에 스파르타인은 싸움터의 생활이 훨씬 즐거워서 전쟁이 나면 단련 과정의 휴식처럼 유유하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스파르타인은 교육과 훈련체계 아래에서 시민으로서 본분을 잃지 않고, 정말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자신의 자유를 체계 안에서 제한하고, 군사력이 바탕이 된 강한 나라가 된 스파르타!!,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너무나 그리스만을 치중하다보니, 이런 위대한 나라의 실상이 그저 싸움만을 강조한 야만족국가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닐까?
무를 숭상한 나라, 스파르타!! 조국을 위한 죽음은 기쁘고 아름답다고까지 표현한 그들의 애국심이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스파르타의 정치제도
1. '군사적 귀족정치' 단어의 뜻
스파르타 정치가 군사적 귀족정치였다는 것은 '사회의 모든 부분이 군사화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나 외교, 군사상의 중요한 결정이 소수의 지배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배경
(1) 군사정치의 배경
스파르타는 크게 세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계층은 스파르타인(호모이오이)이고 두 번째는 페리오이코이, 세 번째는 헤일로타이(영어식 발음으로는 헬롯)입니다.
페리오이코이는 반(半)자유민으로서 세 번째 계층인 헤일로타이와는 달리 불완전하게나마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지만 스파르타인들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반면 최하층의 헤일로타이는 국가에 예속된 노예로서 국가의 감독을 받았습니다.
스타르타가 군사정치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스파르타의 인적 구성에서 기인한 바가 큽니다. 피지배계층인 페리오이코이와 헤일로타이의 숫자가 스파르타 시민의 숫자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반란이 일어날 염려가 있었고, 실제로 헤일로타이들이 기원전 464년경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적은 숫자로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헤일로타이의 반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파르타 시민 전부가 군인이 되어야만 하였으며 이로부터 스파르타 사회는 군사화되어 국가 전체가 거대한 병영처럼 변하게 되었습니다.
(2) 귀족정치의 배경
고대 역사가들에 따르면 스파르타의 귀족정치체제는 전설적인 입법자인 리쿠르고스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리쿠르고스라는 인물은 이 실체가 매우 모호하여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가공의 인물인지를 두고 아직도 학자들간에 논쟁이 있습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는 2왕제, 5명의 감독관단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스파르타에 2명의 왕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는 고대 부족정치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즉, 유력한 두 개의 부족이 연합하여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타협책으로 두 명의 왕을 세우게 된 것이라는 가설이 유력합니다. (우리 나라의 고구려나 신라의 경우를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한편, 스파르타 귀족정치의 핵심을 이루는 5명의 감독관 제도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권한을 갖는 일종의 사제들이었다는 견해, 스파르타를 이루던 5부족의 족장들의 모임이 5명의 감독관단으로 변모하였다는 견해 등이 있으나 모두 가설일 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3. 특징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는 오늘날의 관점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그리스인들의 관점으로도 매우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정치체제로는 민주정, 과두정, 참주정이 있었는데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는 일반적으로 과두정(귀족정치)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 정치체제를 민주정과 과두정의 혼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참주정은 한 사람의 유력자가 지배하는 정치체제이고 과두정은 소수의 귀족들이 지배하는 체제, 민주정은 모든 시민이 정치적 권한을 갖는 체제를 말합니다.)
스파르타 정치체제는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면 끝이 없으므로 간단히 요점만 언급하겠습니다.
스파르타의 통치체제는 2명의 왕과 5명의 에포로이(에포로이는 감독관, 감시관, 감찰관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을 하나 이하에서는 '감독관'으로 칭하겠습니다.), 장로회, 민회로 구성되었습니다.
2명의 왕은 세습직으로서 아기아다이 가문과 에우로폰티다이 가문에서 각각 한 명씩 배출하였습니다. 왕의 권한은 상당히 미약하여 실제로는 5명의 감독관이 중요한 정치, 군사, 외교적 권한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스파르타의 귀족정치의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2명의 왕은 서로 대립 관계인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감독관단이 이 둘의 대립관계를 적절히 이용하기도 했으므로 왕들 상호간, 감독관들 상호간 뿐 아니라 왕과 감독관 사이의 관계에서도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 스파르타 특유의 귀족정치체제는 매우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존속하게 됩니다.
왕과는 달리 5명의 감독관은 선출직으로서 시민들의 선거로 결정됩니다. 감독관들의 권한은 상당히 강하여 입법, 행정, 사법, 군사에 걸쳐 권한을 행사하였으며 왕들까지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장로회는 60세 이상의 스파르타 시민 중 선출되어 입법과 사법의 일부 권한을 행사하였고 민회는 스파르타의 일반 시민으로 구성되었지만 그리 중요한 정치적 권한이 없었으므로 스파르타 정치체제는 민주정보다는 과두정(귀족정치)에 가깝습니다.
- Reference
허승일 저, "스파르타 교육과 시민 생활" 1998, 삼영사
조성을 편역, "에게海의 아침, 로마의 황혼" 1988, 집현전
윤진 옮김, "스파르타" 2000, 신서원, 험프리 미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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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0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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