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륜 (河崙 ; 1347~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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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륜 (河崙 ; 1347~1416)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용하지만, 지금까지도 주류를 이루는 정오행법(正五行法)을 하지 않고 홍범오행(종묘오행, 대오행)을 사용하여 혼란을 가중시킨다. 호순신은 송나라 때 현저한 이론의 발달을 보여주고 있는 사주학 이론을 풍수지리와 혼합시키고 있다.
따라서 호신신의 이론은 사주학에 대한 이론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산을 육안으로 보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산과 물의 형세 및 위치가 '선험적'으로 주어진 방위에 부합되어야 좋은 땅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풍수지리가 철저하게 관념화하는 것으로 그 후 이에 대해 아무런 비판적 이해 없이 수용되어 풍수지리 술수화의 근원이 되었다. 역시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성리학의 대가 주자(1130-1200)의 풍수이론과는 정반대의 것이 바로 호순신의 이론이다. 주자가 철저하게 비판하였던 것이 바로 호순신이 주장하였던 종류의 이기론이었다.
따라서 당시 조선의 일부 풍수학자나 대신들도 이 이론에 대해 회의적인 눈초리를 보낸 흔적이 여러 군데에서 드러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선조 임금 때의 학자 정구(1543-1620)가 선조의 왕비 장지 선정과 관련하여 올린 상소에서 호순신의 풍수이론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정구는 호순신의 풍수서적은 중국인들조차 참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 오랑캐 나라에 혼란을 야기하여 나라를 망하게 할 목적으로 쓰여진 멸만경(滅蠻經)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 책의 진위와 가치를 부정하였지만 그 이후에도 호순신은 이기론 풍수의 근거로서 풍수지리의 타락을 조장하는 이론서였다.
<계 속>
출전: 김두규, 조선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13-19면 축약

키워드

하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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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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