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메멘토모리 내용정리 및 느낀 점 _ 정구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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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의 메멘토모리 내용정리 및 느낀 점 _ 정구선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내용 정리 -
☆ 1장 - 왕실을 둘러싼 자살사건
☆ 2장 - 정치적 암투와 그 패자들의 죽음
☆ 3장 - 여인들의 한스러운 자결
☆ 4장 - 전쟁터에서의 의로운 결단
☆ 5장 - 민초들의 마지막 선택
☆ 6장 - 애도할 수만은 없는 죽음
- 느낀점 -

본문내용

치 되었다. 그는 거기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자살하였다. 폐세자 이지는 강화도에 위리안치될 만한 죄를 지은 것이 없다. 그는 단지 광해군을 아버지로 뒀다는 죄 아닌 죄로 강화도에 위리안치된 것이다. 이것은 연좌제의 일종으로써 가족에게까지 형벌을 가하는 가혹한 처벌이다. 현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근래에도 이것과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국회의원이 그 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기에서 광해군의 역할을 맡는다. 그는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독재정권을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이로 인해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사망한다. 김재규에서 총을 맞는 사건은 인조반정을 의미한다. 여기까지는 유사하지만 광해군 때와 큰 차이점은 폐세자 이지와 박근혜에 대한 처벌이다. 연좌제가 적용된 조선시대였다면 박근혜 국회의원 또한 위리안치와 같은 처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근래에 인물인 박근혜 국회의원은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현재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써 훌륭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박근혜 국회의원이 조선시대의 인물이였다면 우리는 훌륭한 정치인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나는 폐세자 이지와 박근혜 국회의원의 비교를 통하여 조선시대 연좌제의 불합리성과 끔찍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적 패자들의 자살 부분은 대부분의 사건이 당쟁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정치적 패자들의 자살부분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은 당쟁과 관련된 것이 아닌 박이창의 자살이다. 그는 일종의 사신으로써 명나라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하던 중 평안도에 이르러서 자살을 하였다. 그가 자살한 이유는 현대로 치면 뇌물을 받은 것이 들통 났기 때문이다. 박이창의 자살사건을 보면 그가 멍청할 정도로 명예를 중요시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그가 죄를 지은 것은 다른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며, 자살을 할 정도의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창피하다는 이유로 그는 자살을 선택하였다. 이것으로 봤을 때 당시 조선 사회가 명예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한 현대의 관점으로 이 사건을 봤을 때 그는 자살을 하지 말았어야 하며 임금 앞에서 무죄를 입증했어야 한다. 유교주의적인 조선사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일면의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자살 사건은 대부분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당시 절개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자결을 하게 된 여인들도 있다. 정난정과 장희빈이 그러한 인물이다. 정난정은 첩의 딸로 태어나 정경부인에 올랐다. 하지만 이러한 야망은 문정왕후가 죽음으로써 그녀의 남편 윤원형이 정계에서 쫓겨나면서 끝이 났고, 결국 그녀는 자결을 하였다. 그녀는 오로지 성공을 꿈꾸며 누구보다 독하게 살았다. 단적으로 윤원형의 적처가 되기 위해 본래 그의 적처인 김씨 부인을 쫓아내고 죽이기까지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가 불평등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성공하는 이 사회에 살았다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었을까? 조선시대에 여성으로써 신분상승은 불가능이라고 표현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그만큼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이 심하였는데 그러한 조선사회에서 정경부인에 까지 오른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이지 알 수 있다. 그녀가 존경스러우면서도 무섭게 느껴진다. 장희빈은 중전을 질투하고 몰래 모해할 마음을 먹고 신당을 궁궐 안팎에 설치하고는 밤낮으로 빌며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대궐에 묻었다. 이를 알게 된 숙종은 장희빈에게 자결을 명하였다. 장희빈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전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신당을 궁궐 안팎에 설치하고는 밤낮으로 빌며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대궐에 묻은 이유는 중전이 되기 위한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올바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 수 있다. 그녀가 올바른 목표를 세웠다면 그녀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더러운 노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꿈을 품고 실현시키고자 했던 불쌍하고 어리석은 장희빈이다.
전쟁터에서 자살한 사건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신립의 자살 사건이다. 신립은 선조가 믿던 인물로써 그가 내줄 수 있는 병력을 대부분 주어 왜군을 막으라고 보냈다. 하지만 신립은 왜군에게 대패하여 탄금대에서 몸을 던져 자결을 하였다. 초등학교 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위인전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위인전에서 신립장군은 잠깐 등장하는데 그 당시 신립장군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았기 때문에 신립이라는 이름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무능력한 인물로 인식되었던 신립 장군에 대한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본래 신립 장군은 함경도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던 야인들을 용맹하게 물리치며 임금에게 보검을 하사 받은 명장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나는 그동안 신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나에게 무능력한 인물이었던 신립 장군이 존경할 만한 인물로 바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권력에 저항한 약자(백성)들의 자살에서는 사민정책으로 인해 자살한 백성들이 기억에 남는다. 조선 초기에 국가에서는 북쪽 지역 즉 함경도 지방을 개발하기 위해 백성들을 회유와 강경책을 통하여 이주시켰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원망하며 자살을 하였다. 이 당시에 이주하는 백성들에게는 국가에서 많은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정책을 원망하며 자살을 택한 백성들의 선택이 아이러니하다. 사민 정책은 오늘날로 보면 재개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가에서 어느 지역을 재개발한다고 하면 구름처럼 인파가 몰리는 현상과 비교하면 자살을 한 조선 백성들의 선택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아무래도 조선시대의 백성들이 무지하였거나 국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자살을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여 본다.
나는 ‘조선의 메멘토모리’를 통하여 유교주위적인 조선사회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인식에 따른 자살 원인의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었다. 현재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 조선사회에 연민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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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1.28
  • 저작시기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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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2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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