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운수 좋은 날) 과 윤홍길 (장마) 속의 환상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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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진건 (운수 좋은 날) 과 윤홍길 (장마) 속의 환상서사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운수 좋은 날>
2.1. 작가소개
2.2. 줄거리
2.3. 작품분석
3. <장마>
3.1. 작가소개
3.2. 줄거리
3.3. 작품분석
4. 결론

본문내용

만을 탓혀서는 못쓴다. 그날 저녁에 내가 아녔드라도 느네 삼춘은 오던 질을 되짚어서 도로 떠날 사람이었어. 팔자를 그렇게 타고난 거여.”
삼촌이 집에 찾아왔던 날, 외할머니가 문틈을 들여다보는 기척에 삼촌이 자수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그만 달아나 버린다. 그 일에 대해서 외할머니는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삼촌은 원래 그럴 팔자였다고 말한다. 자기가 훼방 놓지 않았더라도 삼촌은 자수하지 않은 채 다시 집을 떠났을 거라는 것이다.
한편 작품 속에서 그들은 합리적 대응이 불가능한 상징계의 균열 지점에서 환상적인 무속적 상상력을 발동시키고 있다.
돌멩이가 날아와 푹 꽂히는 땅바닥에서 나는 끝내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꿈틀꿈틀 기어오는 기다란 것이 거기에 있었다. 눈어림으로만도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한 마리의 구렁이였다. … 째지는 듯한 비명이 등 뒤에서 들렸다.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그렇게 마루 위로 고꾸라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목격했다. 난데없는 구렁이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우리 집은 삽시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그 북새 속에서도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는 사람은 애오라지 외할머니 혼자뿐이었다. 미리 정해 놓은 순서라도 밟듯 외할머니는 놀라우리만큼 침착한 태도로 하나씩하나씩 혼란을 수습해 나갔다. … 외할머니는 천천히 감나무 아래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의 몸이 구렁이가 친친 감긴 늙은 감나무 바로 밑에 똑바로 서 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때까지 숨을 죽여가며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에구 이 사람아, 집안 일이 못 잊어서 이렇게 먼 질을 찾어 왔능가?」… 외할머니는 꼭 산 사람을 대하듯 위를 올려다보면서 조용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곡한 말씨로 거듭 타 일러봐도 구렁이는 좀처럼 움직일 기척을 안 보였다.
… 외할머니는 불씨가 담긴 그릇을 헤집었다. 그 위에 할머니의 흰 머리를 올려놓자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백질을 태우는 노린내가 멀리까지 진동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희한한 광경에 놀라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올렸다. 외할머니가 아무리 타일러도 그때까지 움쩍도 하지 않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버티던 그것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고맙소」 「사분도 별시런 말씀을 다……」 「고맙소, 참말로 고맙구랴」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외할머니가 그 손을 잡았다. 손을 맞잡은 채 두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할머니는 삼촌이 집에 돌아온다던 ‘아무 날 아무 시’에 집을 찾아온 구렁이를 죽은 삼촌의 넋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허황된 상상에 불과한 두 할머니들의 무속적 환상은 현실의 균열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무능력한 근대적 합리성을 대신해 발현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적인 무속적 환상이 리얼리티를 얻는 것은 두 할머니들의 내면에 잔존하는 무속적 코드를 상징계에서 그대로 용인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는 무속적 상상력에 포함된 화해의 힘을 수용하고 긍정하지만 여전히 근대적 합리성의 세계를 떠날 수는 없다. 이는 화자인 ‘나’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속적 환상이 리얼리티를 얻기 위해서는 근대적 합리성의 영역과 무속적 세계가 중첩되는 혼성성의 틈새를 생성시켜야 한다. ‘나’의 시각에서 할머니들의 샤머니즘적 환상을 바라보도록 만듦으로써 그러한 혼성성이 생성된다. ‘나’는 사건 내내 침묵하고 있지만 합리성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사건을 바라봄으로써 근대적 합리성의 세계와 화해를 소망하는 샤머니즘의 세계를 혼성시키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건은 리얼리티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혼성성이 생성되는 동안 ‘나’가 할머니들의 샤머니즘적 세계에 빨려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근대적 합리성의 세계에 속한 채 그 장면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한순간 분단모순의 균열을 넘어 화해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제시하게 된다. 따라서 두 할머니의 화해 장면은 실제 현실에서의 균열을 해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무속적 코드로 포장된 무의식 속의 화해의 소망의 강렬한 표현인 것이다. 즉 외할머니가 구렁이를 상대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감탄 속에서 지켜보는 장면은 우리가 상처의 치유를 위해 샤머니즘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그러한 화해의 욕망을 환상적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우리가 두 할머니의 내면으로부터 빌려온 코드로 선택된 것이 바로 무속적 세계인 것이다. 비합리적인 무속적 상상력이 순간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이렇게 리얼리즘을 위반한 듯한 환상성이 우리에게 용인되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도 탈합리적인 무속적 상상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또 다른 코드에 의거해 사건과 장면을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환상적 리얼리즘이 나타나게 된다.
<장마>에서 합리적 세계와 무속적 세계가 혼성되며 드러나는 실재계적 차원이란 그 같은 이데올로기로 봉합할 수 없는 상처와 그것을 치유하려는 화해의 욕망을 말한다.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진정한 화해의 욕망은 합리적 세계나 무속적 세계 어느 한쪽의 코드만으로는 결코 제대로 표현될 수 없다. 그 상징계 너머의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두 세계의 혼성적 교섭으로 열리는 틈새의 공간에서만 가까스로 표현될 수 있다. 환상적 리얼리즘은 그처럼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혼성적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실재계적 리얼리티를 암시한다.
4.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윤흥길의 <장마>를 통해 각각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의 회귀에 의한 아이러니와 순수한 어린아이의 시선 속에 나타나는 아이러니, 이데올로기적 환상으로서 나타나는 대립의 이데올로기, 혼성성과 환상적 리얼리즘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환상서사적 요소들을 통해 상징계에 의해 억압받고 배제당한 실재계적 요소와 무의식적 욕망이 어떻게 현실에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환상서사에 근거한 작품 분석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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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3.05.03
  • 저작시기2013.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42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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