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수도회를 중심으로 알아보는 중세의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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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탁발수도회를 중심으로 알아보는 중세의 수도원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수도원의 기원과 베네딕트 수도원
 (1) 수도원의 기원
 (2) 베네딕트 수도원
3. 13세기 탁발 수도회 운동과 그 영향
 (1) 탁발수도회의 생성
 (2) 대표적 수도회
  ① 씨토회
  ② 갈멜산 수도회
  ③ 어거스틴 수도회
  ④ 프란체스코 수도회
  ⑤ 도미니코 수도회
4. 중세유럽에서 수도원이 수행한 역할과 기여
5. 관련인물
 (1) Benedictus von Nursia
 (2) Francesco d'Assisi
 (3) Dominicus
6. 중세 수도원 건축
 (1) 성 브리지트 수도원
 (2) 머크로스 대수도원
 (3) 산타클라라 수도원
 (4) 성 프란체스코 성당
 (5) 프란체스코수도회
7. 관련영화 장미의 이름 역사적 배경
8. 잠깐 상식 - 카푸치노 (Cappuccino)
9. 그 밖의 사진들

본문내용

프란체스코》도 있다. 하당(下堂)은 상당보다 더 어둡고 간결한 형식인데, 예배당도 더 작다. 하지만 화가들의 장인정식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 성당의 프레스코 그림들은 지오토(Giotto)와 시몬 마티니(Simon Martini), 피에뜨로 로렌제티(Pietro Lorenzetti)의 작품들이다.
성프란체스코 성당 천정 성프란체스코 성당 벽화
성프란체스코의 무덤 성프란체스코 성당 내부
5, 프란체스코수도회 (The Franciscan Monastery)
구시가지의 스투라둔(Stradun)의 초입인 파일 게이트(Pile Gae) 왼편에 위치한다. 웅장한 크기의 수도원은 시티월(City Walls)을 따라 북쪽으로 길게 들어서있다. 초기수도원은 14세기에 건설되었는데 그 당시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1667년 대지진으로 인해 많이 파괴 되었다. 수도원은 오래된 프레스코 기법으로 장식되었고 섬세한 기둥 장식이 정원을 감싸고 있다. 수도원 남쪽의 커다란 현관은 고딕 스타일로 건축되었고 조각 장식은 이 지역에서 최고가는 페트로비츠형제가 일일이 조각한 것이다.
현관의 웅장한 규모를 보아 이는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수도원은 예부터 약을 제조하는 것으로도 유명했고 지금은 제약박물관으로 사용하고있다. 박물관에서는 중세시대의 약 제조에 관한 역사는 물론 기구나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이 외에 도서관이 유명한데 이곳에는 고대의 원고와 귀중한 단행본과 손으로 일일이 쓴 원고 그리고 보물급의 공예품들이 방대하게 수집되어 있다. 특히 수많은 작가들과 역사가들의 작품들이 있다.
6. 호프 교회
루체른의 중심이 되는 곳이자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교회이다. 베네딕트파 수도원에 의해 8세기에 이곳에 처음 건설되었다. 1633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5년에 다시 건축되었다.
7. 관련영화 - 장미의 이름 역사적 배경
영화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트 에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은 14세기 이탈리아의 베네딕트파 수도원이다.
당시는 아비뇽 유수라고 해서 로마 교황청이 아비뇽에 옮겨가 있던 시기로서 이때의 교황은 요한 22세였다. 때문에 교황청은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프랑스 왕과 경쟁 관계에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자연히 교황과도 대립하는 형태가 되어버린다. 13세기에 성 프란체스코가 청빈 사상을 중심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설립한 이후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서 정식으로 인가를 받게 된다. 지만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내세우는 청빈 사상은 재력과 권위를 통해 세속에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황청과 기존의 수도회들에게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자에서 소집되게 되고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한 프란체스코 파의 입장을 정리하여 선언하게 되는데 이것을 페루자 헌장이라고 한다.
페루자 헌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물건을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할 수도사들 역시 재물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교황으로서 황제의 임명권까지도 교황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요한 22세는 이 헌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1323년에 회칙을 발표하여 프란체스코파의 선언을 묵살해버린다.
요한 22세는 청빈을 지지하며 교황권에 도전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몇몇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몰았고 이로 인해 이미 교황과 크게 대립하여 파문당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드비히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간에 연대가 이루어져서 황제파가 형성된다.
거기에 프란체스코 수도회 내부에는 청빈을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엄격주의파'도 있었다.(소설에 등장하는 우베르티노는 엄격주의파이다.) 이러한 교황파와 황제파의 대립을 역사적으로 구엘프와 기벨린의 투쟁이라고 한다.
8. 잠깐 상식 - 카푸치노 (Cappuccino)
카푸치노(Cappuccino)를 이탈리아 사전에서 살펴보면
① 카톨릭의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
② 카푸치노
위와 같이 두 가지의 해석이 나온다. 또한 근접어 Capp***를 보면 유난히 모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많다. 그럼 지금까지 전해오는 카푸치노는 이슬람 터번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꼭 이슬람이라는 말은 조금 다른 것을 발견하였는데 터번은 이슬람교 여러 나라에서 애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도나 그리스교도 사이에서도 사용된다라는 말이 백과사건에 나온다.
유래를 살펴보면 이미 BC 2000∼BC 1000년에 바빌로니아나 아시리아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고대 페르시아를 거쳐서 14세기경에 터키를 중심으로 착용되었고. 본래는 남자 전용이었으나 18세기 말 이후에는 여성용 모자에도 이 형식이 채택되어, 천을 부드럽게 주름을 잡으며 감아 올리는 모양의 모자의 총칭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 카푸친회 [ 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아시시의 성시프란체스코가 만든 수도회인 프란체스코회의 3독립 분파 중 한 파로 1525년 이탈리아의 사제 마테오 다 바시오(Matteo da Bascio)가 창립하였고, 17세기에 들어와 완전히 독립한 수도회이다. 프란체스코가 정한 회칙을 엄수하며 기도와 선교에 힘쓰는데, 그 생활태도가 매우 엄격하고 성당도 매우 소박하다. 수염을 기르고 긴 카푸친(두건)을 쓴 풍모 때문에 카푸친사제라고 부른다.
9. 그 밖의 사진들
The pope approving the Franciscan order The meeting of St. Francis and
St. Dominic
▶ 참고문헌 및 출처
1. 클라우디아 메르틀 저, 배진아 역, 『누구나 읽어야 할 서양 중세 101가지 이야기』
2. 브렌다 볼튼 저, 홍성표 역, 『중세의 종교개혁』
3. 로베르 들로르 저, 김동섭 역,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
인터넷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엔사이버 세계문화탐방
http://images.search.yahoo.com/
cafe.naver.com/histor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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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6.10
  • 저작시기2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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