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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환곡,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민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수취구조,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결혼관행,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 호적과 초혼연령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환곡

Ⅲ.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민란

Ⅳ.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수취구조

Ⅴ.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결혼관행

Ⅵ.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호적

Ⅶ.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단성면)의 초혼연령

참고문헌

본문내용

여성의 초혼연령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연속하는 두 개 式年의 호적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집갔다고 표시된, 즉 ‘出嫁’라고 표시된 여성의 연령은 해당 식년의 호적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집간 여성의 연령을 확인하려면 그 전 식년의 호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1828년 호적에서 ‘出嫁’라고 표시된 여성의 연령은 1825년 호적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 즉 1825년에서 1827년 사이에 결혼한 여성에 대해 1828년 호적에 ‘출가’라고 표기하고, 연령은 기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적의 기재양식이 이와 같기 때문에 개별 여성의 결혼연령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고, 대략적인 연령만 추정할 수 있다. 즉 1828년 호적에서 ‘출가’로 표시된 여성은 1825~1827년 사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정확한 결혼연령을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1825~1827년의 중간에 해당하는 1826년에 결혼했다는 전제하에 1825년 연령에다 1세를 더하여 그들의 초혼연령을 추정하였다. 이렇게 추정을 하더라도 사례가 많으면 초혼연령을 확인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19세기 단성호적에서 추출된 사례는 그 수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성을 획득하려면 새로운 자료를 통해 보강해야 된다고 여겨진다. 본고에서는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19세기 단성지역 여성의 초혼연령을 살펴보려고 하기 때문에 초혼연령을 만 나이로 계산했다. 이하 본고에서 말하는 여성과 남성의 연령은 모두 만 나이다.
19세기 단성호적에서 초혼연령이 확인되는 여성은 고작 22명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은 모두 19세기 전반 호적에 등재되어 있다. 그들의 초혼연령은 평균 19세로 18세기 단성지역 여성의 초혼연령 17.5세보다 늦다. 그런데 사례 수가 지나치게 적을 뿐만 아니라 시기도 19세기 전반에 한정되어 있어 일반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19세기 단성호적은 딸, 특히 15세 이하의 딸을 거의 기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 그러하다. 즉 18세기 경우를 보면 15세 이전에 결혼하는 여성도 적지 않았는데, 19세기에도 그러한 사례가 많았다면 19세기 단성지역 여성의 초혼연령은 19세보다 더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19세기 단성호지역 남성의 초혼연령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단성호적은 남성의 초혼연령과 직접 관련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호적을 이용해 남성의 초혼연령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즉 남성의 초혼연령은, 먼저 부부의 연령 차이를 구하고, 다음으로 그것을 여성의 초혼연령과 비교하는 방법을 택하면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19세기 단성지역 여성의 초혼연령을 19세로 확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시 말해 본고에서는 초혼부부의 연령 차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부부의 나이가 모두 30세 미만인 사례를 단성호적에서 추출하여 그들의 연령 차이를 확인하려고 한다. 이렇게 30세 미만으로 연령을 한정한 까닭은 재혼부부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30세 미만 부부라 할지라도 호적에서 재혼으로 확인되는 사례는 계산에서 제외시켰다.
19세기 단성호적에서 30세미만 부부는 2,037쌍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夫年上型이 43.5%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妻年上型으로 32.2%, 마지막으로 同甲型은 23.6%로 제일 적다. 그 결과 남성이 여성보다 0.7세 정도 많다. 18세기에 남성이 여성보다 0.4세 정도 많았던 사실과 비교하면 부부의 나이차가 더욱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동갑형이 23.6%나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18세기에 16.4%였던 동갑형이 19세기 들어 크게 증가한 셈이다. 이같이 19세기 들어 동갑형이 증가한 것은 19세기 단성호적의 연령기재가 혼란스러워진 점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김건태(2006), 19세기 단성지역의 결혼관행, 한국고문서학회
김건태(2004), 18세기 초혼과 재혼의 사회사 : 단성호적을 중심으로, 한국역사연구회
박광성(1969), 임술 민란의 연구, 경인교육대학교
송찬섭(2008), 조선후기 경상도지역 환곡제 리정의 방향 : 단성·진주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손병규(2005), 대한제국기의 호구정책 : 단성 배양리와 제주 덕수리의 사례,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차재은 외 1명(2011), 단성 호적 인명에 관한 사회 언어학적 고찰, 한민족문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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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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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5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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