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미국 관계, 한국과 중국 관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대만 관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일본 관계, 향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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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미국 관계, 한국과 중국 관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대만 관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일본 관계, 향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과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미국 관계(한미관계)

Ⅲ.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중국 관계(한중관계)

Ⅳ.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대만 관계(한대관계)
1. 항일전쟁의 혈맹
2. 반공전선의 혈맹
3. 노태우 정부의 배신

Ⅴ.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한국과 일본 관계(한일관계)

Ⅵ. 향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과제

참고문헌

본문내용

원칙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5개 원칙은 한국정부에 미리 충분한 설명을 해줄 것, 남북대화의 의미 있는 진전과 연계해 이루어질 것, 북한의 핵 안전협정 가입을 위해 일본이 설득을 할 것,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는 방향을 추진할 것, 북한에 대한 일본의 배상과 경제협력은 수교 이전에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수교 이후라도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압력도 교섭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91년부터 시작된 한일 수교 본회담에서 일본은 미국의 제의에 의해 수교교섭 초기에는 전제로 제기하지 않았던 핵 문제를 국교수립의 실질적 전제로 제시하였으며 이 면에서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바로 이 핵사찰문제가 결국에는 8차 회담이 중단된 실질적 원인으로 된 것이다. 이 역시 한국이 국제전략을 미국과의 단독협상으로 바꾸게 된 하나의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고리라는 전제 아래 그 후 일본의 호소가와 내각의 수교교섭재개 노력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한일 회담의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던 핵 문제가 해소되고 한반도에너지개발구기(KEDO)가 설립됨에 따라 한일 간의 본격적인 접촉이 이루어지지만 회담재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역시 얽히고설킨 복합적 원인이 작용을 했지만 1994년 후의 동북아 정세를 보면 역시 국제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선 한국의 장래에 대한 한, 미, 일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서거 후 미국, 한국, 일본은 많은 면에서 한국이 곧 붕괴하리라는 시나리오 속에서 대북 정책을 제정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극심한 식량난을 타개하는 것이 선차적인 과제로 나섰으며 대외 정책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기본 고리로 국제적인 고립상태와 국내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일본이 수교교섭의 의향을 내비친 1995년의 양국 교섭은 한국의 쌀 지원 요청에 의해 식량지원교섭으로 이어지면 정상화회담의 재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술(上述)한 바와 같이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일본과의 수교교섭이 국제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듯이 한일 관계 역시 단순한 양국간의 관계를 벗어나 늘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전개되면서 국제정치의 영향과 한국반도 남북관계의 영향을 어느 나라보다 많이 받아왔다. 한일 수교교섭이 동북아의 어느 나라보다 늦게 시작되고 더욱 진통을 겪는 것은 물론 역사적인 문제, 양국국내정체의 내적 원인 등이 있지만 이 외적원인이 보다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이 국제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는 것은 역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동북아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본다.
Ⅵ. 향후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과제
동북아 국제사회에 있어서 황화(黃禍)의 공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침략근성의 중국 공산정권이 꾸준히 주변국에 위협을 주면서, 무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중공정권의 침략적 패권주의 정책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 피해의식을 느낄 나라는 우선적으로 대만공화국이다. 그러나 다음으로 한국이 목표가 되겠고, 대만과 한국이 무너진다면 제3의 공격처는 일본이 됨이 분명하다.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로 미국을 정점으로 한 자유진영의 방위체제를 확고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현재로서도 황화를 막을 대표적 국가는 미국 외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없다면 중공의 폭력근성은 이미 대만을 점령했을 것이고, 국제적 견제가 없다면 이미 한국을 점령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만 없다면 일본과 정면으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6·25전쟁으로 한국을 점령하려던 모택동의 전략을 막은 미국이 지금도 얼마나 중공의 눈에는 가시로 보일 것인가?
둘째로 러시아와의 거시적 친선 외교를 펼치도록 많은 노력을 쌓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소련공화국이 해체되면서 초거대 강국의 자리에서 밀려 났고, 한편으로는 기나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공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 되어도 있다. 따라서 동북아연합국을 만듦에 있어서는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고, 크게는 러시아까지 포괄하는 동북아 연합체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나 필리핀,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같이 중국공산세력의 침략을 경계함에 공통적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들과의 외교관계의 강화에도 깊은 관심이 쏟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그르 독립운동 단체와 공통의 회교문화권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연결성에도 유의한 외교대응이 요망된다. 그리고 몽골공화국와의 외교관계 확립은 물론이고 내몽골지역의 독립운동이나 인권문제에도 큰 관심이 있어야 하겠다. 또한 티베트의 인권문제와 독립달성은 세계적인 관심사이며, 우리 민족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에도 큰 연결점이 있음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한일연합국의 달성에 의해 중공정권의 팽창정책을 확실히 막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겠는데, 본 논문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대만도 국제적 이해관계가 커다란 흐름에서는 한일연합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을 유의한 외교노력이 확고히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국, 일본, 대만의 3각연합국이 만들어져야 하겠고, 미국과 확고한 우방관계를 만들면서 러시아와 친선관계를 유지해야 하겠다. 이렇게 된다면 동북아시아의 황화창궐은 확고히 봉쇄될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보장될 것이다.
참고문헌
○ 김영기(2001),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변화와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역할, 국방대학교
○ 서보혁(2011), 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국의 외교전략 재검토, 민주정책연구원
○ 성오경(2011), 동북아 안보위협과 한국의 위기관리체계 정비방안, 충남대학교
○ 소치형(1990), 동북아 정세와 한국의 역할, 총신대학교
○ 이수훈(2006), 동북아와 한국의 미래, 한국사회발전시민실천협의회
○ 이광훈 외 1명(2011), 동북아 정세불안과 한국사회 안보의식의 현주소, 민족통일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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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4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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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6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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