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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등장배경, 유래와 분포,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분류,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연희,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교육, 탈놀이(탈춤, 가면극) 분포현황, 탈놀이(탈춤, 가면극)와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등장배경

Ⅲ.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유래와 분포

Ⅳ.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분류
1. 서낭제 탈놀이
2. 산대도감계통극
1) 경기지방의 산대놀이
2) 해서지방의 탈놀이

Ⅴ.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연희

Ⅵ.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교육

Ⅶ.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분포현황

Ⅷ. 탈놀이(탈춤, 가면극)와 통일신라시대

참고문헌

본문내용

다스리는 내용이므로, 나례의 일종이거나 나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등장인물이 쓰는 탈은 황금색인데, ‘대면’(大面)이라는 어의 그대로 큰 탈을 쓰고 나왔을 것이다. 이는 중국과 한국의 옛 나례인 고나(古儺)에서 구나(驅儺)의 중심인물인 방상시가 황금사목(黃金四目) 즉 네 눈을 황금색으로 칠한 모습이었으며 탈이 매우 컸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대면은 바로 나례의 방상시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방상시의 네 눈이 황금색이었다는 것은 탈의 대부분이 황금색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최치원 시의 대면은 방상시였거나 그 영향을 받은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황금사목의 방상시, 푸른 유리 눈알을 금환(金環)으로 테를 돌린 눈을 가진 신라 호우총 출토의 목심칠면, 대면의 탈이 모두 황금색을 썼는데, 황금색은 붉은색과 함께 벽사색이다.
그리고 대면에서는 탈을 쓴 인물이 채찍을 들고 등장하여 귀신을 쫓는 또는 귀신을 부리는(役鬼神) 동작을 한다. 나례에서는 12지신이 탈을 쓰고 채찍을 들고 나와 역귀를 쫓는다. 여기에서 대부분의 한국 탈놀이에 등장하는 말뚝이가 왜 채찍을 들고 나오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야류와 오광대 탈놀이에 등장하는 말뚝이의 탈이 유난히 크다는 점도 말뚝이를 대면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이다.
즉 <향악잡영>의 대면에서 등장인물이, 나례에서 12지신이 탈을 쓰고 나와서 채찍을 휘두르며 귀신을 쫓는 모습은 탈놀이의 양반과장에서 말뚝이가 탈을 쓰고 나와서 채찍을 휘두르며 양반들을 함부로 다루다가 쫓아내는 내용과 통한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탈놀이에 등장하는 양반들은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대상이며 사회적 재앙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인물들로서 역귀와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양반들이 쌍언청이(대부분의 탈놀이)째기(서흥탈놀이, 한 다리 한 팔을 잘 못 쓰는 반신불수의 병신)삐뚜루미탈(대부분의 탈놀이의 종가집도령, 얼굴이 삐뚤어진 모습)홍백가(고성과 통영오광대, 얼굴의 반쪽은 홍색이고 반쪽은 흰색)손님탈(통영오광대, 곰보양반)흑탈(고성과 통영오광대, 검은색의 탈)조리중(통영오광대, 방정맞은 모습, 보살첩에게서 난 양반) 등 한결같이 병신 모습을 하고 있다. 구파발본산대놀이의 샌님은 쌍언청이에 왼쪽 눈과 왼쪽 눈썹이 위로 찢겨 올라간 흉한 모습이다. 이들은 부정적이고 적대적이며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에 탈놀이에서 쫓아내야 할 인물들이다. 그래서 가산오광대에서는 말뚝이가 “옛끼놈, 돼지새끼들” 하면서 채찍으로 양반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두우 두우”하고 돼지 모는 시늉을 하면서 양반들을 몬다. 야류와 오광대에서는 영노라는 상상의 동물이 나타나서 양반의 권위와 체통을 무너뜨리는 대화를 주고받다가 양반을 잡아먹는다. 이러한 내용에 유의하면, 대면과 귀신의 관계는 바로 탈놀이에서 말뚝이와 양반의 관계와 대응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산예, 즉 사자춤은 후대의 여러 문헌자료에서 자주 발견되며, 현재까지도 여러 탈놀이에서 연행된다. 고려 말 이색의 <구나행>은 나례에서 사자무가 연행된 사실을 전해 준다. 이 시의 후반부의 첫 구절인 15구에서 “무오방귀용백택”(舞五方鬼踊白澤)이라는 내용을 통하여 구나의식이 끝난 후 거행되는 나희의 첫 순서로 오방귀무와 백택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택은 신수(神獸), 또는 사자(獅子)의 별칭(別稱)인데, 여기서는 사자의 별칭으로 생각된다. 왜냐 하면 신수(神獸)도 사자(獅子)의 별칭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중국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나례에 등장하는 벽사적인 동물은 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나례에서 흔히 사자무가 연행되었듯이,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 말에 이미 나례에서 사자무가 연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조선시대 성종(成宗) 19년 우리 나라에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이 자신을 영접하는 산대희를 보고 지은 <조선부>(朝鮮賦)에 사자가 나온다. 산대희의 연희 내용이 나례의 연희 내용과 일치하는 점이 많은 점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나례에서도 사자춤이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송만재(宋晩載)가 1843년에 지은 <관우희>(觀優戱)에도 사자춤이 보인다. 그리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 1745~ ?)가 그린 평안감사환영도(平安監司歡迎圖)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낙성연도(落成宴圖)에도 사자춤이 보인다.
이상과 같이 사자춤은 신라시대 이후 꾸준히 전승되어 왔다. 현존하는 탈놀이 가운데 사자춤은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수영야류통영오광대북청사자놀이하회별신굿탈놀이 등에서 발견된다. 이 탈놀이들의 사자춤은 대부분 벽사(邪)적인 성격을 보이므로 나례와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함경남도 북청 지방의 사자놀이가 나례의 사자무와 가장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북청사자놀이는 극적인 요소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나례의 매귀(埋鬼)행사와 동일한 모습도 보인다. 북청 지방에서는 음력 정월 15일 밤, 마을마다 독자적으로 사자놀이를 꾸며서 밤새도록 놀았다. 그리고 16일 새벽 사자놀이가 끝나면 마을의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방문하면서 나례의 매귀, 즉 지신밟기와 유사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사자는 머리 부분에 왕방울을 많이 달고 있는데, 이는 방울소리를 통하여 잡귀를 쫓으려는 것이다. 우선 사자는 집안에 들어서서 방울소리를 울리면서 마당을 빙빙돌며 기세를 보이다가 안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딱딱’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귀신을 잡아먹는 시늉을 하다가, 부엌으로 들어가서도 그와 같이 한 후 바가지를 하나 물고 나와서 마당에 던져 깨뜨렸다. 이는 귀신을 쫓는 의식이다.
참고문헌
○ 김신효(2010), 굿놀이와 탈놀이의 공통성과 독자성, 한국무속학회
○ 박진태(2002), 굿과 탈놀이의 관련 양상, 한국공연문화학회
○ 이지혜(2011), 초등국어교육에서의 탈놀이 교재화 방안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 이미원(2004), 한국 전통극의 공간 : 탈놀이 연극공간의 층위를 중심으로, 한국연극학회
○ 정남선(2004), 공동체 의례로서의 탈놀이에 관한 연구, 경성대학교
○ 한귀은(2005), 지역 놀이문화로서의 탈놀이 교육, 배달말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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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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