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몽고)의 기본정보, 몽골(몽고)의 역사, 몽골(몽고)의 발전과정, 몽골(몽고)의 경제, 몽골(몽고)의 고비사막, 몽골(몽고)의 티베트불교(라마교, 티벳불교), 몽골(몽고)의 한몽관계(한국과 몽고의 관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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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몽골(몽고)의 기본정보, 몽골(몽고)의 역사, 몽골(몽고)의 발전과정, 몽골(몽고)의 경제, 몽골(몽고)의 고비사막, 몽골(몽고)의 티베트불교(라마교, 티벳불교), 몽골(몽고)의 한몽관계(한국과 몽고의 관계)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몽골(몽고)의 기본정보
1. 수도
2. 인구
3. 기후
4. 면적
5. 주요민족
6. 주요언어
7. 종교

Ⅲ. 몽골(몽고)의 역사

Ⅳ. 몽골(몽고)의 발전과정
1. 쿠빌라이의 즉위와 몽골제국의 분열
2. 원의 중국 통치
3. 마르코 폴로와 동방견문록

Ⅴ. 몽골(몽고)의 경제

Ⅵ. 몽골(몽고)의 고비사막

Ⅶ. 몽골(몽고)의 티베트불교(라마교, 티벳불교)

Ⅷ. 몽골(몽고)의 한몽관계(한국과 몽고의 관계)
1. 외교관계
2. 교역현황
3. 대몽골 투자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었으며 1990년 6월에 주몽골 한국대사관, 1991년 2월에 주한 몽골대사권이 설치되었다. 우리나라와 무역투자보장, 항공협정 및 관용여권에 대한 사증면제헙정, 이중과제방지협정, 형사사법공조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였고 각각 몽골 총리와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
2. 교역현황
우리나라와 몽골의 교역은 매년 두 자리 수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대몽골 직접투자의 증가에 따른 수출유발효과로 몽골에 대해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몽골의 경제여건이 취약하여 양국간에 정상적인 교역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몽골수출은 9천9백만 달러, 수입은 약 4백만 달러로서 우리나라가 약 9천5백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시현하였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은 무선통신기기, 자동차, 자동차 부품, 기호식품 등이고, 주요 수입품목은 금은 및 백금, 의류, 축산부산물, 가죽 등이다.
3. 대몽골 투자
투자환경 미비, 국내시장 협소, 기술인력의 부족 등으로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증가추세에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대몽골 투자는 건수에 44건, 금액에서는 19,274,000 달러로 건당 투자금액은 438,000 달러이다. 그러나 몽골투자청에 등록된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 실적은 80,860,000달러로서 중국(379,010,000 달러), 캐나다(132,520,000달러), 미국(114,900,000 달러)에 이어서 제 4위이다.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투자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몽고정부에 등록된 우리나라 기업은 416개이다.
투자업종이 다양화되어 있는데, 정보통신, 경공업, 요식업, 도소매업, 자동차정비업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광업, 건설, 운송업 부분으로의 투자가 새로이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법인 수에서는 제조업, 도소매업, 무역업, 기타서비스업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액투자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통신업 분야에 이루어진 1건의 투자가 전체 투자금액의 18.5%를 차지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권고하고 있는 투자유망분야로는 소규모의 생필품과 일상생활에 관련된 분야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으로는 몽골통신에 40% 지분으로 참여한 한국통신, 에드데넷동관으로부터 동정광(copper concentrate)을 구매한 삼성물산, 대한항공, 몽골의 제2휴대용 사업자로 선정된 대한전선 및 SK텔레콤 등이 몽골에 투자한 주요 대기업이다.
Ⅸ. 결론
원나라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었더니 고기를 놓고 서로 다투어 먹어 승부를 겨루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은 고기를 즐겨 먹는 몽고인의 육식전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몽고의 식생활에 관해서는 남송 말기에 몽고의 사신으로 갔던 팽대아(彭大雅)의 흑달사략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몽고인은 알곡으로 밥을 해먹지 않고 산에서 잡은 토끼사슴멧돼지족제비염소황양야생마 등과 물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기르는 짐승으로 양이 제일 많았고 소가 그 다음이었으며, 말을 귀하게 여겨 웬만큼 큰 잔치가 아니면 잡지 않았다고 한다. 마시는 것은 말 젖과 소양의 유제품이었고, 요리법은 굽는 것이 주를 이루어 열에 여덟아홉은 굽는 것이었고 삶는 것을 열에 두셋 정도를 차지하였으며 맛을 내는 것은 소금 한 가지였다고 한다.
고기뿐만 아니라 동물의 혈액도 귀중한 식량자원이었다. 몽고의 전사들은 하루에 160㎞를 쉽게 진군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강행군을 하게 되면 한 곳에 쉬면서 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면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타고 다니던 말의 피를 마시며 시장기를 면했다. 전사들은 별도의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다만 각자 18마리 정도의 수말들과 암말들을 끈으로 꿰어서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행군 도중 각자 자신이 지닌 말의 정맥에 구멍을 내어 그 혈액을 마셨는데 열흘 간격으로 돌아가며 다른 말의 정맥에 구멍을 내어 혈액을 마시면 말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보조를 맞추어 걸을 수 없게 된 말은 잡아서 그 고기를 먹었다.
목초지를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건조시킨 고기를 이용하였다. 몽고인들은 건조시킨 고기를 분말로 만들어 동물체내의 주머니나 건조시킨 장(腸)에 넣어 보존하였다. 통통한 한 마리의 양고기를 건조시켜서 분말형태로 부순 것은 그 양의 심장에 담고 쇠고기는 그 소의 방광에 담았다. 건조육에 포함된 습기는 5~7%를 넘지 않아서 2년간 보존할 수가 있었다.
몽고의 지배하에 1세기를 지낸 고려는 이러한 몽고의 식육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 특히 원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왕세자는 이러한 식생활을 자연스럽게 접하였을 것이고, 그의 부인으로 이 땅에 들어온 몽고의 공주들은 수행원들과 함께 이러한 식문화를 고려의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전파하게 된다.
“낭장 서오(徐敖)가 양가의 자녀를 유인하여 데리고 와서 세력 있는 집에 의탁하고 있으면서 내가 있는데 찾아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제 어미의 부고를 받고도 분상(奔喪)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그를 잡아 보내니 진변소에 잡아 두고 영원히 등용시키지 말 것이다.”
는 충선왕 때의 기사는 고려인의 식육관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부모의 상중에 육식을 한다는 것은 불교의 교리나 유교적인 관점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패륜의 행위이다. 역대의 왕들도 상중에는 육식을 절제하였는데, 나라의 봉록을 먹는 관리가 모친상을 당하여 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몽고의 침략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고, 육식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대구MBC HD특별기획10부작제작팀(2008), 몽골, 이른아침
대외경제정책연구원(2011), 몽골 터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태일(2010), 몽골에서 보낸 네철, 경진
안정산(2011), 몽골 초원의 푸른꿈, 고요아침
어럴저뜨 저, 김성철 역(2008), 몽골 인 몽골리아, 두르가
이정순, 양용열(2011), 몽골 이야기, 디자인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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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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