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생애와 사상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정약용 생애와 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없음

본문내용

를 보내 위태로운 말로 포의로 내쫓는가.
磨刀入房血滿席, 自恨生兒遭窘厄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蠶室淫刑豈有辜, 去勢良亦慽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 음형 당했던가.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生生之理天所予, 乾道成男坤道女    자식 낳고 사는 이치 하늘이 준 바이고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馬豕猶云悲, 況乃生民恩繼序    불깐 말 불깐 돼지 그도 서럽다 할 것인데
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뭣하리오.
豪家終歲奏管弦, 粒米寸帛無所捐    부호들은 한평생 풍류나 즐기면서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均吾赤子何厚薄, 客窓重誦鳩篇    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 구편을 외워보네.
다산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시는 가경 계해 가을 내가 강진에서 지은 것이다. 그때 노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보에 올라 있어 이정이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가니 남편은 칼을 뽑아 자신의 양경을 잘라 버리면서 '나는 이 물건 때문에 이런 곤액을 받는구나' 하였다. 그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양경을 가지고 관가에 가서 울면서 호소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이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이 시기는 나라의 기강과 정책이 흐트러져 부정부패가 문란했던 시기였다. 자기의 생식기를 자르는 일이 물론 당시의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아지나 절굿공이 이름까지 군안에 올려 세금을 착취하는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시가 현실의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군정의 문란을 집약적으로 나타낸 소위 ‘황구첨정, 백골징포’의 실상을, 갈밭에 사는 한 농민의 비극적인 삶을 통하여 훌륭히 형상화한 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탐진촌요(耽津村謠)’15수 중 관리들의 횡포에 대한 내용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7수를 살펴보자.
棉布新治雪樣鮮   새로 짜낸 무명이 눈결같이 고왔는데
黃頭來博吏房錢   이방 줄 돈이라고 황두가 뺏어가네
漏田督稅如星火   누전 세금 독촉이 성화같이 급하구나.
三月中旬道發船   삼월 중순 세곡선(稅穀船)이 서울로 떠난다고. 김상홍, 「다산의 정약용 문학연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5
이 시는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눈물겨운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새로 짜낸 무명을 희고 곱게 만들어 내놓자마자 이방보다도 낮은 황두에게 빼앗겨 이방 돈벌이에 보태고, 삼월 중순에 조정으로 보낸다면서 장부에 누락되어 세금 매길 근거도 없는 누전에서 세금 독촉을 성화같이 하니 농민들의 고달픈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산은 이렇듯 농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관리들의 수탈을 고발하면서 백성을 위한 참된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촉구한 것이다.
이처럼 다산은 그가 보고, 느낀 백성들의 애환을 서사형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으며, 그 표현은 위의 시들에서 볼 수 있듯이 지극히 사실적이다. 따라서 그는 그의 시에서 당대 지배계층에게는 그들의 무능함과 부패함을 비판하면서 반성을 촉구하고 있으며, 당대의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애환을 절절하게 그려 그들을 위로하고자 했다. 결국 이러한 그의 작가의식은 그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Ⅳ 다산의 사상
저서 : 경세유표, 목민심서
1. 실학 집대성 - 성리학적 학문 풍토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학문 태도 몰두
=> 경세 치용학파 - 세상을 다스리는 데 실익이 되는 학문 강조, 유학의 주관적 경향 반대
- (전:221) 중농 학파 농업혁신을 통해 민생안정과 사회발전 등 현실문제 해결책 모색
-> 빈농층 입장에서 토지제도 개혁 시도
- 유형원:(균전론) /이익:(한전론) /정약용:(여전제->정전제)
2. 성기호설(性嗜好設)
- 인간의 심성이란 선이나 악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구체적 실천을 통하여 결단을 촉구하는 자유 의지이다.
- 인간의 덕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실천하면서 형성된다
- (전:82) 인의예지(4덕)는 후천적 덕성이다. (성리학의 선천적, 자연적 본성 부정)
=> 정통적인 성리학의 심성론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재를 현실성과 개체적 자율성에 근거하여 파악하려는 새로운 사상을 전개함
3. 민본주의사상 : 목민심서(전:216)
-> 수령의 덕목 : 자애 청렴 절약 절용(節用)은 수령의 으뜸되는 임무이다./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다
4. 인간 중심적 경제사상 (전:230)
-> 토지제도 : 여전제 - 토지공동소유 + 공동경작 + 노동능력에 따른 생산물 분배
-> 토지 국유제 주장/ 지주제도 폐지 주장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 병농일치(兵農一致)
->화폐제도의 정비와 시행 : 동철,금,은 화폐 주조
- 국가재산의 국외유출 방지 / 화폐통용으로 인한 소비억제 / 보호무역 정책
Ⅴ 현대적 의의
다산은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그의 독자적인 교육사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그의 교육관은 현대적인 시각에서 고찰하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재고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학문을 통해서 사회의 구조를 개편하려고 했다. 다시말해서 실용성에 입각해서 직업의식을 개조하려고 했으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둘째, 이러한 경향에 부합되는 교육제도를 확립함과 동시에 사회윤리를 쇄신하려고 했다. 또한 과거제도의 모순점을 개선하고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교육과 학문과의 관련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였다.
세째, 새로운 인간관, 즉 평등사상에 기초한 근대적인 민권의식을 토대로 교육의 효과를 높이려고 했다.
네째, 합리적인 사고의 틀 위에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자아의식을 심어주고자 했다.
이상과 같은 다산의 교육사상은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학문연구의 방향을 시사하는 것이었으며, 민족주체사상, 평등사상, 민권의식, 진취성, 개방성, 과학기술의 정신강조, 사회윤리관 등은 현대교육에까지 그 정신이 계승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정약용,   생애,   사상
  • 가격2,3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3.10.25
  • 저작시기201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802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