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景福宮)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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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景福宮) 탐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

Ⅱ. 주요사적
1. 광화문(光化門)
2. 흥례문(興禮門)
3. 근정전(勤政殿)
4. 사정전(思政殿)
5.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
6. 경회루(慶會樓)
7. 향원정(香遠亭)
8. 건청궁(乾淸宮)

Ⅲ. 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돌기둥 위에 의지하고 섰다. 누하의 마루 밑 우물반자는 같은 높이로 설치되었는데, 바닥은 바깥쪽 기둥 쪽이 낮고 안쪽 기둥 쪽을 한단 높게 하였다. 외진에는 높이 15.5자의 방주를 세웠다. 고주를 받는 내진의 돌기둥은 네모난 주초석 위에 둥근 원주로 세웠다. 원주와 방주들은 위가 좁고 아래가 굵도록 흘림을 두어 다듬어서 안정감이 매우 높다. 내주와 외주는 원주와 방주로 천원지방의 사상을 표현했다.
▶ 방지 내에 3섬
예전 중국사상에 보면 영주, 봉래, 방장의 세 섬은 신선사상의 불로장생 을 나타낸다고 한다. 경회루 역시 경회루가 안치되어있는 섬까지 포함 방 지형 3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또한 왕의 불로장생을 기원한 듯하다.
7. 향원정(香遠亭)
향원정 또한 경회루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경회루 같이 크고 웅장하며 화려한 맛은 없지만 단아하고 우아한 멋이 깃들어 있다. 특히 향원정으로 이어지는 취향교는 그 운치를 한껏 자랑한다.
함화당과 집경당 북쪽 후원 영역에는 향원지라는 네모난 연못이 조성돼 있고, 그 가운데 향원정이 있다.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이라면 향원정은 아늑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원래는 북쪽 건청궁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후 지금처럼 남쪽으로 놓았다. 향원정은 세조 때 세운 취로정 터에 건청궁을 지으면서 조성한 것이다. 향원정 북쪽, 경복궁 가장 깊숙한 뒤쪽에 건청궁이 자리하고 있다. 고종은 1873년(고종 10)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 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을 세웠다.
▶ 열상진원
향원정의 물은 향원정 북서쪽 열상진원(洌上眞源)에서 흘러 들어와 남쪽으로 빠져나도록 되어있다. 즉 열상진원에서 솟아난 물이 홈을 만나 한 바퀴 돌아 다시 꺾여 향원지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이는 샘에서 솟아난 차가운 물이 격하지 않고, 차갑지 않게 향원지로 입수하게끔 마련된 장치인 것이다. 조상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8. 건청궁(乾淸宮)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한동안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기분 나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고 치욕적인 역사의 사건을 잊지 말고 우리 문화재를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건청궁은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 왕의 처소인 장안당, 서재인 관문각으로 이루어졌으며, 1895년 을비사변 때 명성황후가 암살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1909년에 헐린 후 1939년에는 이 자리에 미술관이 들어섰고, 해방 이후 민속박물관으로 쓰이다가 헐렸다. 2007년에 관문각을 제외한 전각들을 복원했다. 향원정은 보물 제1761호로 지정되어 있다.
Ⅲ. 結
서울에 거주하면서 가까운 곳에 문화 유적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가본 적이 없었다. 과제라는 핑계로 직접 답사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우리문화를 알아가고 또한 보존 및 발전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경복궁에 대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조선 최대의 정궁이라는 경복궁 임에도 생각보다 작고 볼품없는 건축물들은 실망스러웠었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한 경복궁은 부모님과 손잡고 갔던 경복궁이 아니었다. 돌조각 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담겨 있었고, 작고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궁궐 안의 모든 건물들은 예전에 임금이 살던 화려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다시 비춰졌다.
특히나 사정전을 빠져나와 경회루로 가는 길목에서 넓은 잔디를 발견하고는 “궁궐 안이라 조경을 잘해 놓았구나.” 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고유의 조경 법에는 사람이 사는 집의 울타리 안에는 잔디를 심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의 잔디가 있던 자리는 옛날에는 모두 건물이 있었던 것이다. 계획적인 일제의 경복궁 훼손의 과정에서 사라진 그 많은 건물들을 대신해서 지금은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잔디가 심어져 있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던 잔디밭이 마치 건물들의 무덤인 것처럼 느껴지면서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백문이 불어일견이란 말이 있듯이 보고 배운 것은 듣는 것보다 훨씬 가슴속에 오래 그리고 깊이 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 같다.
다음에는 사전 공부도 더 하고 여유롭게 경복궁을 둘러볼 계획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경복궁에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해주고 싶다.
Ⅳ. 참고문헌
경복궁 안내 책자
홍순민, ‘우리궁궐이야기’, 청년사
종로구청 : http://www.jongno.go.kr
문화재청 : http://o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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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1.25
  • 저작시기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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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0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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