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Who am I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최진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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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학강의 Who am I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최진석 교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들어가는 말
1.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모습

Ⅱ.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한 발견
1. 타인의 기준 / 수동적인 우리
2. 보편적 기준 앞에 초라한 나
3. ‘장자’를 통해 살펴본 주인으로 산다는 것
4. 이론에 빠져 발견하지 못한 ‘주체력’
5. 천하와 대비되는 자신의 가치
6. 경계에 서서 운동하라
7. 나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

Ⅲ. 맺는 말
1.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내가 생산한 기준으로 관계 하는가, 아니면 이미 학습된 기준으로 관계 하는가? 또 다른 질문으로 하자면 언제 나는 내 기준에 생산자로 등장하는가 하는 것이 언제 내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기가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윤리적이고 주체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보편적 이념이 내면화된 것을 자기 기준으로 착각하는 때가 많다. 진정한 주체는 세계 운동과 일체하는 주체이고 이는 경계를 포용하는 주체이다. 경계를 포용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많은 책을 읽는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읽는 것은 누군가가 쓴 것이다. 책을 읽는 상황 속에 읽기와 쓰기가 교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 자신도 언젠가 쓰는 행위를 할 때를 위해서이다. 반드시 무엇인가 글로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쓴다는 것은 곧 자기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말을 듣는가? 그것은 바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표현하기 위해 상대방의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 또한 누군가가 가르치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기에 이는 나 또한 가르치는 입장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을 위해 읽고, 듣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나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한 것을 정해보기 위해, 표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령에 접어든 한 예술가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는 60이 넘은 나이에 배우는 재미에 빠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최교수는 또 한마디를 던진다. “선생님은 앞으로도 창의적으로 되기 어렵겠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배우는 재미가 그렇게 좋다면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만 배우시고 지금은 자기를 표현하세요.” 라고 말이다. 배우는 것은 아름답지만 습관이 되면 결국 자기표현에는 장애를 가지게 된다. 배우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이 표현한 것을 습득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수용하는 행위를 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할 것인가? 배우는 것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은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야 한다. 표현의 동력을 못 만드는 배움은 경계를 모두 품는 것이 아니다. 배움에는 표현의 동력이 있어야 하고, 읽음에는 쓰는 동력이 있어야 하고, 들음에는 말하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자기활동은 읽기와 말하기 사이에, 배우기와 표현하기의 사이에, 듣기와 말하기의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이 사이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순수함을 벗어나 점잖음을 벗어나 거칠어지고 짐승의 눈빛을 가지게 된다.
삶 전체를 배우는데 바치고, 정리하는데 바치고, 듣는데 바친다면 자기 자신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기 자신은 언제나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순간 자기 안에는 경계성을 회복하는 야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경계에 있다는 것은 한 쪽에 수동적으로 갇힌 게 아니라 자기가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은 이성에 제어되지 않고 욕망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욕망의 실현자가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삶의 궁극적 동력의 출처는 바로 나를 표현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 나를 침해하는 그 어떤 것에도 도전해 나가고, 나의 주체성ㆍ존재성ㆍ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충고하지 않기와 충고 듣지 않기이다. 나 자신이 주인이 되기 위해 나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보는 것이다. 다름 사람의 충고에 나의 기준을 바꿔서도 안 되고, 나 자신의 충고로 다른 사람이 스스로의 기준을 바꾸도록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무한 사랑을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나를 나 자신의 주인으로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집 안의 가구가 아닌 이삿짐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의 가치는 무시한 채 그저 남들의 눈과 기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는 결과 밖에 만들지 못한다.
Ⅲ. 맺는 말
1.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보편적인 이념이나 기준은 술찌꺼기와 같은 것일 뿐이다. 거기에 빗대어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우리를 지배하는 보편적 이념과 기준은 이미 시간이 지나버린 가공물일 뿐이다. 이를 벗어나 욕망의 담당자로 경계에 서 있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자유롭다. 이렇게 강하고 빛나고 아름다운 자신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제 그러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 새로운 자기는 나 자신에게 가장 존엄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존엄한 존재는 또한 존엄한 활동을 하게 된다.
뇌물이 와도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다. 남들의 기준이나 윤리적인 외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뇌물을 받는 행위가 나 자신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이념과 기준 아래에서는 뇌물을 받을 수도 있지만 존엄한 자기를 내세울 때는 자신의 존엄성을 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뇌물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윤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윤리의 힘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고 강한 존재인지, 또한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 확인의 시점이 바로 모든 창조적 동력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Ⅳ. 참고문헌
최진석 교수 강의영상,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인문학강의 Who am I, 2013.11.11
이재준 기자, 『애주가들이 가장 사랑했던 肝 박사' 김정룡 교수』, 벤쿠버 조선일보, 2013.10.10
박영선 (pysun1234), 『http://blog.naver.com/pysun1234/70182231』, 네이버블로그, 2009.06.18
함석헌 저, 김진 역, 『너 자신을 혁명하라』, 오늘의책, 200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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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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