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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결국 당시 1차 세계대전 이후 서서히 대두 되던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한 작품 이해 또한 필요하다. 물론 <황무지>의 현실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거침없는 사실적인 표현은 전적으로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이는 작품 내부의 분석에만 치중한 것이 다. 시에 나와 있는 치밀한 묘사 는 그것이 마치 현실을 자세하게 담아내려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 묘사 는 현실 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해체하려 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전통적인 시의형식을 탈피한 점 역시, 엘리엇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향점에 대해 확실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의미를 살펴보면, 이성중심주의를 배격한다는 점이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이성중심주의, 합리주의가 모든 원리를 이분법화하고(이성과 감성, 백 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등), 이를 통해 적대적인 관계를 고의적으로 형성시켰다는 주장 하에, 올바른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타자를 인식하고, 기존의 가치관에서의 일탈을 통한 새로운 가치 확인을 주장하였다. 실제 로 <황무지>에서는 이성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짐과 동시에 감정에 편향함으로써 사실의 세계로부터 일탈하려는 엘리엇의 의도를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분법적인 세계에서 찾아 헤매는 대상과 실현 가능한 대상 간의 괴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 (욕망은 범람하지만 결심은 할 수 없는 현대인의 상황)이 불모의 땅 자체임을 강조하는 엘리엇의 해석을 이해할 수 있다.
The Waste Land에 대한 현대적 이해
황무지는 1922년 에 발표된 시이므로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은 지금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때가 물질적이고 이성중심적인 문화코드가 다른 텍스트를 억압하는 시대였다면, 현재도 그와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주류 문화코드가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이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것에서, 미시적이고 욕망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는 엘리엇이 쓴 황무지와 같은 시를 통해 무의식에까지 미시권력이 침투하여 새로운 서사텍스트를 지향해야 하 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허 탈해하는 모습은 현대인이 무의식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에서 느끼는 허탈감과 비슷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치 원하는 모든 것 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미시권력의 장치는 우리 의 무의식을 조종하고 있지만, 현대인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자본을 얻을 수 있는 것 은 소수의 사람들뿐이며, 욕망을 낭비하면 할수록 현대인은 점점 더 허무에 빠지는 것이다. 낭비의 욕망은 양적으로는 우리를 만족시키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결핍을 느끼게 한다.
현대인이 그러한 허무감을 극복하고, 이성과 과학에 의해 억눌린 마음을 해방시키려면 엘리엇의 시 의 형식과내용 파괴를 통해 시도했듯이, 무의식이 미시권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타성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 니라, 그것을 알고 또 다른 상징계를 상정하거나 기존의 상징계를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향점에 대해 확실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의미를 살펴보면, 이성중심주의를 배격한다는 점이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이성중심주의, 합리주의가 모든 원리를 이분법화하고(이성과 감성, 백 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등), 이를 통해 적대적인 관계를 고의적으로 형성시켰다는 주장 하에, 올바른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타자를 인식하고, 기존의 가치관에서의 일탈을 통한 새로운 가치 확인을 주장하였다. 실제 로 <황무지>에서는 이성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짐과 동시에 감정에 편향함으로써 사실의 세계로부터 일탈하려는 엘리엇의 의도를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분법적인 세계에서 찾아 헤매는 대상과 실현 가능한 대상 간의 괴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 (욕망은 범람하지만 결심은 할 수 없는 현대인의 상황)이 불모의 땅 자체임을 강조하는 엘리엇의 해석을 이해할 수 있다.
The Waste Land에 대한 현대적 이해
황무지는 1922년 에 발표된 시이므로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은 지금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때가 물질적이고 이성중심적인 문화코드가 다른 텍스트를 억압하는 시대였다면, 현재도 그와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주류 문화코드가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이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것에서, 미시적이고 욕망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는 엘리엇이 쓴 황무지와 같은 시를 통해 무의식에까지 미시권력이 침투하여 새로운 서사텍스트를 지향해야 하 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허 탈해하는 모습은 현대인이 무의식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에서 느끼는 허탈감과 비슷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치 원하는 모든 것 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미시권력의 장치는 우리 의 무의식을 조종하고 있지만, 현대인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자본을 얻을 수 있는 것 은 소수의 사람들뿐이며, 욕망을 낭비하면 할수록 현대인은 점점 더 허무에 빠지는 것이다. 낭비의 욕망은 양적으로는 우리를 만족시키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결핍을 느끼게 한다.
현대인이 그러한 허무감을 극복하고, 이성과 과학에 의해 억눌린 마음을 해방시키려면 엘리엇의 시 의 형식과내용 파괴를 통해 시도했듯이, 무의식이 미시권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타성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 니라, 그것을 알고 또 다른 상징계를 상정하거나 기존의 상징계를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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