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녀(貢女)와 환향녀(還鄕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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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녀(貢女)와 환향녀(還鄕女)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공 녀
 1-1 공녀란 ?

 1-2 공녀를 요구한 시대별 목적

 1-3 공녀의 시대별 헌납 상황

 1-4 공녀 선발과정

 1-5 공녀의 폐단 및 기피실태

 1-6 공녀의 운명( 기황후에 대해서... )
  1)기씨 일족의 횡포
  2)기씨 일족의 몰락

2. 환향녀
 2-1 환향녀의 의미와 어원

 2-2 조선 여성들의 수난

 2-3 일본에 의한 종군위안부

 2-4 버림받은 이라크판 ‘환향녀’

 2-5 이호길 - 미려의 독백 중에서.....

본문내용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 청년사, 1999, 233~234쪽
2-3 일본에 의한 종군위안부
이 작품들은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정신대 할머니들께서 손수 그리신 그림이다..

그당시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후 일본의 노리개로 이용되던

종군위안부 여인들이돌아오자 우리의 선조들은

돌을 던지며 환향년이라 했다고 한다..

환향년이란 비속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가?..

환향년의 어원은還鄕女(환향녀)이다.

우리나라 사대부집안의 여인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왜놈이나 되놈들에게 장난감이나 성적 노리개로 끌려간다..

그 후여인들중 몇몇은 속전을 물거나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강제로 끌려가 모르는 이의 손의 몸을 빼앗겼다가

죽을힘을 다해 고향으로 탈출한그 여인들을 향해

우리의 선조들은 환향년 이라며 돌팔매질을 함으로써

상처받은 영혼들의 정신마저 처참히 확인 사살한다.

때문에 왜적에게 손 한번 잡힌 일을 탓하며

스스로 몸을 던진 여성들도 숱하게 많았다고 한다.

이때 그 여인들은 혀를 깨물고 죽으면 가문을 위한 열녀로 추앙 받았고,

그녀들은 열녀의 대열에 올라서 집안의 명예를 드높였다.

반면에 살아 돌아온 환향녀들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남이 아닌 같은 가족과 이웃들이 환향년이란 죄를 물었다.

그런 아픈 역사 속에 탄생한 환향년이란 말은

아타깝게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난다.

위안부여인들은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라는 약소국에게 그들의 몸을유린당했으며,

수십 년간 묵인해온 정부와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그들의 정신까지 유린당한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은바로 우리시대의 還鄕女(환향녀)다.

일본에 의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반세기 동안이나

몸과 정신을 유린당한 아픈 역사적 산물이자 환향녀로 살아야만했던

할머니들의 고통과 살아남지 못하고 성적 노리개로 한을 품은 체 죽어간

위안부 희생자들의 넋이 역사 속에 기억되길 바란다.
2-4 이라크판 환향녀
버림받는 이라크판 ‘환향녀’
아부그라이브 감옥생활- 가족들 “수치” 추방·살해
정묘·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고초를 겪은 뒤 귀국한 조선시대 여성들은 위로 대신 ‘환향녀’로 불리며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미군에 붙잡혀 수감생활을 했던 이라크 여성들이 21세기 ‘환향녀’가 되고 있다.
이라크인 포로학대 파문으로 악명높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풀려난 이라크 남성들은 미군에 저항한 ‘영웅’ 대접을 받는 반면 여성들은 가족과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쫓겨나거나 또는 살해당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라크 사회가 이방인의 손에 잡혔다는 사실만으로 이 여성들을 집안 또는 부족의 ‘치욕’으로 여겨 이들 여성이 사라지거나 자살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또 숨어 지내는 여성들도 감옥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바그다드대학의 여성 교수 후다 알 누아미(43·정치학)는 “여성이 아부 그라이브에서 풀려났다는 것은 종말의 시작일 뿐”이라며 이들 여성의 수난사를 조사하려 했으나 모두 침묵하거나 조용히 흐느끼기만 했다고 증언했다. 아부 그라이브와 바그다드 공항의 크로퍼캠프, 바스라의 부카캠프 등 주요 감옥에 수감돼 있는 이라크인 2만2천명 중 여성은 겨우 92명에 지나지 않지만, 이는 공식적인 숫자일 뿐 주요 감옥 외에 이라크 안 14개 임시구금소에는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여성이 구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성학대와 관련한 미군 조사에서 적어도 한명 이상이 여성 구금자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하고, 또 여성 구금자를 발가벗긴 사진 등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아무도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현실도 이와 맥락이 닿아 있다. 이라크 여성해방과 민주화 등을 앞세우며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이 이라크 여성을 두번 죽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누아미 교수와 여성 인권변호사들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석방된 여성들이 가족에게 살해되거나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2-5 이호길 - 미려의 독백 중에서.....
환향녀
어디를 쏘대다 이제 왔느냐.
이방인과 생활이 얼마나 재미 있었으면 저고리 고름 손때로 반질하고
헤쳐진 머리칼에 이방인의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느냐
이러고도 사립 슬그머니 열고 타달 타달 들어 온 즉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네년의 몸에선 서방의 흔적은 간 곳 없고 이방인 발자국만 남았으니
차라리 그곳에서 뒈져야지, 왜 왔느냐.
네년이 아니면 누룽지 못먹고 두레박질 못 할 줄 아느냐
어찌 더러운 몸으로 조상을 뵈며 정한수 한 그릇 떠 기도할꼬
오지랍 눈물 떨구는 네년 모습 가련타마는 용서 할 수 없는구나.
돌아갈 곳 어디메뇨, 네 에미 있는 곳 아니냐
서방님 골이나 욱대기시는 말씀, 죄 많은 이년 어찌 모르리이까.
살아도 여기서 살고, 죽어도 여기서 죽을 것이오니
제발 외인이 된 이녁을 친정으로 가란 말씀 거두시고 한 말씀 들어 보소서.
타향에 있을 적에 서방님 그리워 몸부림 친 날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
밤마다 흘린 눈물, 저 달 속에 담았고
예까지 오다가 흘린 눈물, 피가 되어 땅을 적신즉
원하옵시면 가져다가 서방님 가슴에 얼룩이 되도록 뿌려 드리오리다.
고향 떠나 낯선 곳, 어두운 그늘에서도
어찌할 수 없어 이방인에게 몸을 버려 혀를 깨물고 싶었으나
모진 목숨 지탱하여 예까지 온 것은
서방님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온 데 하여도 너무하오
하지만,
이제, 꿈에도 그리운 서방님 뵈었으니 지금 이슬 되어 이 집 귀신이 되다한들 여한이 없음이여
부디, 분이 풀리지 않으시면 이녁 죽여 까마귀 밥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죽음이 다가와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 한들
서방님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으리오
2004년7월15일 한겨레신문 기사참고 http://www.hani.co.kr/section-007003000/2004/07/007003000200407151834113.html
김강아리기자

키워드

공녀,   환향녀,   여성,   고려,   조선,   ,   성매매,   공녀와 환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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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11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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