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식문화 공통] 상대복식의 기본형과 특성을 설명하고 그 시대의 관모와 몸치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 : 상대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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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복식문화 공통] 상대복식의 기본형과 특성을 설명하고 그 시대의 관모와 몸치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 : 상대복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상대복식이란

2. 상대복식의 기본형
1) 저고리
2) 바지
3) 치마
4) 두루마기
5) 관모
6) 가죽신

3. 상대복식의 특성
1) 삼국시대 상대복식의 특성
2) 통일신라시대 상대복식의 특성
3) 고려시대 상대복식의 특성
4) 조선시대 상대복식의 특성

4. 각 시대의 관모에 대해
1) 삼국시대 관모
2) 통일신라시대 관모
3) 고려시대 관모
4) 조선시대 관모

5. 각 시대의 몸치레에 대해
1) 삼국시대 몸치레
2) 통일신라시대 몸치레
3) 고려시대 몸치레
4) 조선시대 몸치레

6.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전래하는 노리개를 자손대대로 물려주어 그 가풍을 전하고 애정을 나타내는 소중한 것이었다.
(2) 노리개
금, 은, 옥으로 몸체를 만들고 여기에 색색깔 줄이나 매듭을 달아서 만든 것으로 가장 호화롭고 큰 것은 주로 궁중에서 사용되었던 대삼작노리개, 궁중이나 상류계급에서 패용하였던 중삼작노리개, 젊은 부녀자나 어린이들이 패용하였던 소삼작노리개가 있으며, 단작노리개는 삼작노리개 중 한 개를 따로 패용할 경우 단작노리개가 되며 애초부터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노리개도 단작노리개라 한다 .
(3) 반지
고대에 있어서 세계 어느 민족이건 간에 즐겨 손가락에 사용하던 것으로 이는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의 증표로 쓰였던 장신구이며 우리 민족도 혼인할 때 서로 반지를 선물했다는 내용이 4천 년 전 중국 기록에 이미 보인다. 반지는 보통 하나로 된 것을 말하고, 쌍으로 된 것은 가락지라고 한다. 삼국 시대의 가락지는 신라의 것이 많은데 신라에서는 남녀구별 없이 모두 반지를 꼈다. 특징은 얇고 단순하며 조선의 가락지같이 완전히 통형이 아니고 누구나 낄 수 있게 뒤쪽을 벌릴 숭 있는 것으로 현대 아기 동 반지에 그 형태가 남아있다.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손의 아름다움을 매우 자랑했기 때문에 손을 아름답고 부드럽게 하기위하여 여러 종류의 액을 사용했으며 손의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하여 반지를 애용했다. 이 시대의 가락지는 2개를 쌍으로 끼는 것은 삼국시대와 같으나 결혼을 한 기혼 부인이 사용했으며, 반지는 기혼, 미혼에 관계없이 일반 여인들 간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계절에 맞추어 겨울에는 옥을 끼지 않고 여름에는 금을 끼지 않았으나 직금된 옷을 입을 때에는 낄 수 있었다. 그리고 춘추에는 옷에 따라 마음대로 끼었다. 이들 반지와 가락지는 기교면에 있어 상당히 단순하여 조선공예의 특징을 잘 나타내준다고 하겠다.
(4) 귀걸이
상대사회의 많은 장식물 중 제작기술 및 미적 효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발달되어 더없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삼국시대에는 남녀 구분 없이 널리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귀에 구멍을 뚫어 작은 환을 다는 풍습이 크게 유행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귀걸이 착용에 대한 금기령이 자주 내리고 호풍이라하여 일반 민가에서는 달기를 주저하고 싫어 하는 경향이 많았다. 또한 신체에 구멍을 뚫는 행위는 효에 어긋난다는 유교사상에 의해 선조까지 남녀를 막론하고 사용하다가 선조의 유시가 있을 후에는 일반 양반층의 부녀들보다 서민층의 부녀들과 기녀들이 즐겨 달게 되고 여인들의 귀고리는 형태를 달리하였다. 즉 귀고리가 귀걸이로 바뀌었으며 남자의 귀걸이는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일반여자들은 혼례같은 의식때만 귀걸이를 하되 귀를 뚫지 않고 귓볼에 거는 것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특히 신라에서 찬란했던 귀걸이는 조선시대에 와서는 삼국시대에 비할 만한 것이 못되는 빈약하고 간략한 것으로 쇠퇴되었다고 할 수 있다.
6. 시사점
원시인류부터 착용해온 의복은 고유한 주변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그들만의 복식문화를 만들었다. 주변국가와는 다른 우리만의 고유한 복식문화가 있고 전통성을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복식을 전통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복식문화로 한복과 장신구 등을 들 수 있다. 한복은 선, 형태 색상 재질면에서 디자인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첫째, 곧은 선과 은은히 흐르는 곡선으로 이루어지는 너그럽고 유연한 선의 흐름이다. 둘째, 단일민족의 청렴결백함과 전통성을 고수하는 배색은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색채의 조화라고 하였다.
서구문명의 도입으로 인해 입식생활을 하는 우리생활에 한복은 활동하기 불편한 복장이 되었고, 서서히 생활문화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특별한 의례적인 행사 때는 한복을 착용하며, 외국에 우리의 한복을 소개함으로 인해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복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복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전통한복에 옷감이나 디자인의 변형을 준 것을 ‘생활한복’, ‘개량한복’이라고 하는데 1996년 문화체육부에서 ‘한복입기’ 운동을 통하여 발전을 보였으나 계속 그 관심은 없어지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천연염색이나 조각보 같은 규방공예를 발전시키는 성향도 보이고 있다. 천연염색은 환경오염과 건강을 고려하여 옷감에 화학염료대신 자연의 원료를 사용한 염색을 하는데 이는 자연친화적인 의미를 갖게 한다. 규방공예는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양반집 규수들의 생활공간이 였던 규방에서 생성된 공예장르로서 바느질을 통해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만들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근 규방공예는 자신만의 것을 만드는 DIY(do-it-yourself)의 경향에 맞춰 박물관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활동이 행해지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 멀어진 전통복식문화를 TV사극, 연예프로그램, 인터넷 등에서 접할 뿐이고 전통복식문화체험을 하기에는 어려운 편이다. 우리의 전통복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이해와 인식을 통해 전통복식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상대복식의 기본형과 특성을 설명하고 그 시대의 관모와 몸치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보았다. 한국의 전통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의 한복은 이천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왔으며, 시대와 문화에 맞도록 그 형태가 변화되어 왔다. 한복의 저고리류의 일종인 배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널리 입혀진 실용성과 조형미를 갖춘 한국의 전통의상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다채로운 디자인과 형태를 지닌 배자의 현대적 감각을 매우 높게 평가하며 이를 현대 생활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노력을 시도하였다.
참고문헌
홍나영 외(2004). 아시아 전통복식. 교문사.
국립민속박물관 (1995). 한국복식 2천년. 신유.
김문자(1994). 한국복식문화의 원류. 민족문화사.
유희경 외(2000). 한국복식문화사. 敎文社.
유희경(2002). 한국 복식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임명미(1997). 한국의 복식문화Ⅰ. 경춘사.
단국대학교 (2006). 조선시대 우리 옷의 멋과 유행.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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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27
  • 저작시기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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