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1880년대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사 고찰 :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중심으로 - 19C,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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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대사] 1880년대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사 고찰 :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중심으로 - 19C,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2~3p

Ⅱ. 19C 말 국제 정세………………………………………………3~5P

Ⅲ.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치 1 : 임오군란……………………5~10p

 1. 임오군란의 전사(前史)
 2. 원인과 전개과정
 3. 임오군란의 사후처리

Ⅳ.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치 2 : 갑신정변……………………10~15p

 1. 갑신정변의 전사(前史)
 2. 갑신정변과 개화파의 좌절
 3. 갑신정변의 사후처리①- 한성조약(1885. 1. 9)
 4. 갑신정변의 사후처리②- 톈진조약(1885. 4. 18)

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이후 조선과 국제 정세…………………15~17p

Ⅵ. 결론을 대신하여……………………………………………17~18p

 ※ 參考文獻…………………………………………………………19p

본문내용

).
조선에서 영국과 러시아간의 대립이 첨예하게 현재화하는 것처럼 보이자, 일본의 조야에서는 조선을 무대로 하여 제국주의적 식민지 획득 경쟁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田保橋, 近代日鮮關係の硏究下(조선총독부, 1940), 제20장, 참조- 강창일,『동학농민전쟁과 국제정세-특히, 일본의 대응을 중심으로』, 1998,에서 재인용
山縣有朋, 川上操六 등 육군 군벌의 군비 확장파는 조작된 위기의식과 긴장 분위기속에서 松方正義, 井上馨 등의 재정 긴축파를 누르고 대대적인 증세를 통한 군비 확장을 추진하였다. 아울러서 조선에 대한 소극적 간섭정책과 대 청 협조노선을 취하였다. 주 2)의 高橋秀直 책, 참조
이것은 조선 문제를 방기하였다거나 불간섭 정책을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기득권의 유지 및 이권획득에 주력하면서 군비확장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90년대의 대조선정책의 전개가 이를 입증하여 준다.
Ⅵ. 결론을 대신하여
이상에서 19C 말, 특히 1880s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중심으로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보았다. 1880년대 조선은 내적으로 정치적 혼란을 거치게 되고 대외적으로 위기적 상황에 직면하였다.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구미열강과의 불평등조약 체결, 한로밀약(1885), 영국의 거문도 점령사건(1885년) 등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논의에서 다른 것들은 차지하고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흐름이 되었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임오군란은 앞에서 확인하였듯이 조선 청 일본 3국의 국제관계를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藤間生大, 壬午軍亂と近代東アジア世界の成立 (東京, 春秋社, 1987), 참조-강창일,『동학농민전쟁과 국제정세-특히, 일본의 대응을 중심으로』, 1998,에서 재인용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청국은「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시켰다. 이것을 계기로 청은「속방」임을 재차 확인하면서 의례적인 종속관계를 실질적인 종속관계로 전환시키고 노골적인 간섭정책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즉 근대적 식민지화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청은 종래의 전통적인 종속관계를 폐기하고 근대적인 종속관계로 변질시켜 나갔고 강창일, 초기개화파의 근대화 구상-갑신정변에 대한 비판적 검토-,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한국문화』 제15집(1994) : 김정기, 淸의 朝鮮政策(1876-1984)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박사학위논문. 1994), 참조.
, 이는 곧 전통적 중화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조선은 갑신정변 이후 강화된 청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하여 러시아에 접근하려는 정책을 시도한다. 이는 1880년대 이후부터 구미열강들이 전 세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세계정치가 영국과 러시아 간의 대립으로 첨예화되고 있던 세계의 정치적인 대립에 한반도가 끼어들게 된 것을 의미 한다 이는 갑신정변 이후 계속된 한아밀약 사건이나 거문도 사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 즉, 이로써 한반도는 스스로 구미열강의 세계정치 ‘틀’에 완전히 편입되게 되었던 것이다 김용구, 『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p328
.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결과적으로 당시 조선이 취했던 거의 모든 정책은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외정책 변화-특히 淸과 日-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거듭된 실패와 좌절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의 근대화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 천하질서 속에서 예의지국을 문명의 표준으로 삼고 있던 19세기 한국은 근대국민국가의 부국강병이라는 새로운 구미 중심의 문명표준 앞에서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의 생긴 상처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잔재해 있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문명사적 변화의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19세기의 역사적 대응과 흡사하게 21세기형 위정척사, 동도서기, 문명개화의 대응양식이 다시 한 번 혼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우리는 북한의 위정척사론, 구미의 지구화론(세계화론 최근 들어 계속되어 추진되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은 형태를 달리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침투’와 일정 정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우리 학교(성균관대)를 비롯한 각 대학의 학생들이 세계화와 WTO에 극렬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세계화의 이러한 ‘속성’ 때문일 것이다.
)과 함께 21C ‘동도서기’론으로서의 한국적 세계화론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가 오늘 당면하고 있는 21세기의 국난이 ‘國亡’이 아닌 ‘國興’으로 풀려나가기 위해서는 19세기의 역사적 교훈을 명심하고 21세기적 해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서 19세기 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고찰한 이번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參考文獻
강창일,『동학농민전쟁과 국제정세-특히, 일본의 대응을 중심으로』, 1998
강창일, 근대일본의 사상흐름과 조선침략론, 역사학연구소,『일본에 본 친일 문제와 일본의 조선침략론』 (1993)
최덕수, 개항이후 일본의 조선정책,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 연구3』 , 역사비평사, 1993
강제언,『서양과 조선』, 학고재, 1998
강창일, 초기개화파의 근대화 구상-갑신정변에 대한 비판적 검토-,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김정기, 淸의 朝鮮政策(1876-1984)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박사학위논문. 1994, 『한국문화』 제15집, 1994
安南이 프랑스와 和議하다, 『漢城旬報』제1호, 1883. 10. 31.
김용구, 『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박준규,『한반도국제정치사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6
森山茂德, 日淸戰爭における日本軍部の對韓政策,『淸日戰爭(1894-95)의 역사적 재평가』,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94, 청일전쟁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연구발표회 논문집
A. 말로제모프, 『러시아의 동아시아 정책』, 석화정 역, 서울 지식산업사, 2002
하영선외, [19C 배우는 21C 국난해법], <주간조선>, 200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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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2.02
  • 저작시기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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