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金永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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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영랑(金永郞)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김영랑(金永郞)연보

강진에서의 출생

휘문의숙 재학ㆍ동경 유학 시절

동경 유학 이후

시문학파 활동기

일제말 암흑기

사회참여기 (해방 이후)

김영랑의 시세계

김영랑의 시문학사적 의의

※ 참고문헌

본문내용

자」(1947)에서 해방의 감격을 노래하였고, 이어서 「겨레의 새해」와 「감격 815」(이상 1949)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이고 희마에 찬 영랑의 자세는 「천리를 올라온다」(1950)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1948년 11월 여순반란사건의 현장을 취재하고 쓴 2편의 시작품 「새벽의 처형장」과 「절망」에서 영랑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이 초래한 동족상잔의 비극적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추락하게 된다. 밝은 미래에 대한 영랑의 벅찬 기대가 무참하게 깨어지는 아픔이 「절망」에 잘 나타나 있다.
김영랑의 시문학사적 의의
(1)시문학파의 대표시인
김영랑은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를 통하여 우리 문단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인이다. 그가 등단한 <시문학>지는 우리 현대시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준 시 동인지로 평가 된다. 김영랑, 정지용, 박용철, 이하윤, 변영로, 김현구, 허보, 신석정이 참여한 <시문학>지는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순수 서정시를 의식하고 실천한 시 전문 잡지이고, 그 중 단연 김영랑이 대표적인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시작품의 발표량에 있어 김영랑은 다른 시인들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시문학>창간호에 13편의 시를 한꺼번에 발표하며 시단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나온 <시문학>2호에 9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20편이 넘는 작품을 한꺼번에 발표했던 것이다. 이것은 박용철, 정지용 등이 발표한 시작품의 수를 크게 앞지른다. 발표된 작품의 수는 당시<시문학>지 동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학적 열정에 대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시문학파에서 김영랑과 견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증거이다. 물론 질적 수준에 있어서도 영랑을 능가할 만한 시인은 발견되지 않는다.
김영랑의 시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카프를 중심으로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의식을 주로 드러냈기 때문에 당시의 시단은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주는 김영랑의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였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적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창간호),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제2호), ‘내 마음 아실 이’(제3호) 등을 <시문학>의 주옥같은 대표적인 서정시로 꼽을 수 있다. 위 작품들은 제목에서 드러나 있듯, 주로 내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자아의 내밀한 정서를 부드러운 운율로 노래하는데 몰두하였다. 당시 외적인 풍경을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객관적으로 제시하고자 노력한 당대의 대표시인 정지용과는 달리, 자아의 내밀한 정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표현하였다.
김영랑의 시작품들은 시문학파 시인들 중에서 가장 음악적이다. 시에서 음악성을 창출하기위해 율격적 틀과 운율적 결(缺) 缺, 빠져서 부족함.
을 적절하게 결합하였다. 그리고 그는 작품에서 방언이나 신조어는 물론, 시행의 반복과 변형, 압운법, 유포니 활음조. 듣기에 좋은 음질. 인접한 음소들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로, 모음조화나 자음 동화, 모음 충돌을 피하기 위한 매개 자음의 삽입.
현상 등 다양한 운율적 요소들을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현대시문학사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시인이고 시문학파가 추구하는 순수시 세계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을 말 할 수 있다.
(2)최고의 순수 서정시인
1920년대 전반기의 김소월에서 1930년대 중반기의 서정주에 이르는 우리 서정시의 전통을 이어 준 시인이 바로 김영랑이었다. 1930년대, 사회문화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형성된 시문학파는 시에서 순수 서정을 노래하고, 지적인 요소를 가능한 한 배제 하며, 여성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가 하면, 시의 언어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언어의 감각성을 추구함으로써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해 나가게 된다. 이 시문학파의 중심부에 김영랑의 순수 서정시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데뷔작 1930), ‘모란이 피기까지는’(1934), ‘오월’(1939)에 이르기까지 등단 초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순수 서정시를 창간하여 발표하였다. 1939년 이후에는 ‘거문고’, ‘독을 차고’(1939)등 일제 식민지하의 어두운 시대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발표하였다. 시세계의 이러한 변모에도 불구하고 김영랑에게 있어서 초기의 순수서정시 세계가 지속되었다는 것은 그의 말년에 쓰여 진 ‘오월 아침’(1949), ‘오월 한’(1950)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식민지하 당대적 상황을 무시한 채 순수시 세계로 일관한 그의 시정신은 간혹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만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듯 한 자연에 대한 상상도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며, 새로운 비유와 표현의 구사도 언어사용의 폭을 넓힘으로써 실제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와 절묘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영랑의 시는 그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시문학사에서 김영랑의 순수 서정시 세계는 어느 시인도 따를 수 없는 독자성이 인정된다.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리에 우리가 설 경우, 자신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지조 있게 고수해 나간 시인 김영랑의 정신세계는 적절하게 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김영랑은 우리 현대시문학사에서 순수 서정시 영역을 개척한 시인이자 그 본령에 육박해 간 최고의 순수 서정 시인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 참고문헌
1. 박노균, 김영랑,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3
2. 김윤식 외, 해방공간의 문학운동과 문학의 현실인식, 한울, 1989
3. 정숙희, 김영랑 문학 연구, 인하대학교, 1987
4. 박훈하, 전통과 근대의 간극과 님의 부재 시학, 1999
5. 김재홍, 영랑, 시인의 가슴, 지사의 혼,
제2회 영랑문학제 학술 심포지엄, 강진군ㆍ영랑기념사업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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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1.09
  • 저작시기2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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