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인문주의와 종교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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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 3 장 인문주의와 종교 개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으며, 본인도 점차적으로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복음 이해는 인문주의적인 합리적 요소가 끝까지 있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재세례파 사람들이 취리히를 중심으로 반기를 들면서 재세례를 베푸는 불상사가 일어 났었다. 그렇기 때문에 쯔빙글리는 과격 재세례파 사람들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 고통이 있었다.
츠빙글리의 개혁은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루터 보다 훨씬 강하였다. 그는 용병으로 벌여들이는 수입보다는 한 사람의 동족의 생명을 더욱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그의 개혁은 재정적 수입원의 차단이라는 고육책으로 모범을 보이는데서 인정을 받았다. 쯔빙글리는 루터만큼 많은 저술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개혁교회의 기초가 될수 있는 복음 이해와 성찬 이론을 확립 시켰다.
츠빙글리의 초기 사상은 대표적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에 의해 굉장한 영향을 받게 된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도의 모방’의 이념을 따르고 있었으며, 에라스무스가 중요시 여기는 제롬과 오리겐을 특별히 존중했다. 또한 츠빙글리는 교리보다는 주로 교회의 윤리와 생활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개혁은 신약 성서와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통찰에 근거한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과정이다. 여기서 보듯이 츠빙글리의 초기 사상은 인문주의 사상에 굉장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츠빙글리도 후에는 이러한 관념을 탈피하고, 종교개혁을 인간적 허약성을 제압하는 신적행위로 파악하는 관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이것은 인문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진짜 종교개혁을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된 건 아닌가 생각된다.
終焉
종교개혁에 있어서 인문주의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과 그리고 종교 개혁을 뒤에서 받쳐준 젊은 지식층들에게 인문주의는 그들의 사상의 밑받침이었다. 또한 이 인문주의가 종교개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 개혁이라기 보다는 교회 개혁을 뛰어넘어 사회 개혁, 그리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개혁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날을 생각해 보자.
분열된 교회, 대형교회의 문제점, 개교회주의, 교회의 세습화, 무너지고 있는 교회 윤리, 교양으로 변하는 믿음생활, 교회의 수도권 집중화 등등..현실의 교회는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의 종교개혁이 과거의 종교개혁처럼 혁명과도 같은 종교개혁을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과거의 종교개혁은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종교개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다양성이라는 것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장 큰 미덕인 이 다양성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허용하는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종교개혁이 일어난다면 과거와 같은 힘을 내기에는 힘들 것이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양성 속에서 자연히 응축된 힘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만약 오늘날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전체 교회의 개혁이 아닌 개교회의 개혁으로 그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것은 개혁의 힘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이 이유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오늘날의 종교개혁은 500여년 전의 종교개혁과도 같은 그런 혁명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는가?
이제는 밑에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종교개혁은 신학자, 목사들에 의해 개혁의 시작이 일어났으며, 그것이 평민들에게 전해지는 위에서부터 밑으로의 개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일반 신도에게서부터 개혁의 시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 스스로가 성숙해야 하며, 학습되고 습득된 신앙에서 좀더 나아가는, 고민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고 연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설교자의 말씀에만 의지하며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성경을 보며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목사의 설교가 성경이 되어버렸고 목사가 던져주는 걸 받아먹기만 하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일반 신도들이 좀 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연구한다면 교회는 반드시 개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할 문제들
1. 인문주의자들의 고전연구의 목적은 작문과 연설에 있어서 웅변술의 향상이었다(p.57). 그렇다면 어째서 인문주의자들은 웅변술의 향상에 관심을 두었을까?
2. 에라스무스의 사상들에 관하여 생각할 바
1) 에라스무스는 장차 기독교의 생명력이 평신도들에게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성직자들의 역할이 평신도의 이해수준을 자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것에 비추어 한국의 기독교, 특히 한국의 목회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 것인가? 만약 그들이 에라스무스의 의견에 동조한다고 말할지라도 실제로 그런 교육이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2) 에라스무스는 “내면적 종교”를 강조하였고 종교란 개인의 양심과 마음의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만약 종교가 단지 개인적인 문제라면 우리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성은 어찌되는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은 결국 공동체 생활이 중요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에라스무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왜 교회에 다니는가? 교회의 역할은 단순히 평신도의 교육적 역할 외에는 없다는 것인가?
3. 쯔빙글리는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아서 종교는 영적이고 내면적인 어떤 것으로 여기며 외적문제들은 본질적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종교, 다른 말로 기독교가 영적이고 내면적인 생활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추구한다면 기독교인들의 사회참여는 약화되지 않을까?
4. 쯔빙글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은 일차적으로는 도덕적 모범에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은 단지 ‘도덕교사’의 역할인가? 그의 중요성은 첫째로는 그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서 돌아가셨고 부활하신 것과 그가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 되심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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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11.14
  • 저작시기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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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86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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